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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읽는 건축

고대 그리스 신전과 배가 닮았다고요?

'텍톤'의 어원에서 발견하는 형태의 의미론적 연관성

by 이민정
“그 집은 알렉산드로스가 기름진 트로이아에서도 솜씨가 가장 뛰어난 목수들을 데리고 손수 지은 것으로...”

<<일리아스>> 제6권 315~316행


‘건축(architecture)’의 언어적 기원을 이야기할 때 늘 등장하는 ‘텍톤(tekton)’. 텍톤은 고대 그리스어에서 한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시와 예술의 경지로 만들어내는 솜씨 좋은 ‘장인’을 의미합니다. 이후 시간의 흐르면서 ‘기술자’라는 의미로 좁혀졌다가 19세기 독일에서 다시 개념적으로 주목받으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텍톤의 의미 변화와 관련한 상세 논의는 별도로 다루도록 하고, 오늘은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고대 그리스 ‘텍톤’에 주목해 봅니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텍톤은 넓은 의미에서 장인을 뜻하기에 여러 공예 분야에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텍톤으로는 목수가 있는데요. 나무를 다루는 목수들에는 집을 만드는 이들도 있고 배를 만드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재밌는 점은 건축역사학계에 당시 ‘집’과 ‘배’가 비슷한 구조로 다루어졌다는 주장이 있다는 점입니다.


조나스 홀스트(Jonas Holst)라는 건축역사학자가 건축기술의 그리스 어원에 대해 연구한 2017년 논문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 배의 평면은 고대 그리스 신전의 평면 형태와 의미론적으로 연관이 있습니다.


홀스트는 맥이완(McEwan)과 오니안스(Onians)의 연구를 인용하는데요. 연구에 따르면, 먼저 성소, 즉 신전내실을 뜻하는 ‘naos’라는 말은 선박을 의미하는 ‘naus’라는 단어와 흡사합니다. 배와 신전 모두 초기에는 목재로 만들어졌으며, ‘뱃머리(prow)-용골(keel)-선미(stern)’로 이어지는 선박 디자인은 ‘주랑현관(프로나오스 pronaos)-신전내실(나오스 naos)-신전후실(오피스토도모스 ophistodomos)’로 이어지는 구조와 유사합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사용된 컵 안에 그려진 배 그림, 기원전 520년

신전의 기단은 높게 하여 마치 배에 올라타는 것과 같이 건물에 오르게 되어 있고요. 둘레가 한 줄의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는 고대 그리스 신전의 건축 양식 ‘페립테로스’의 평면 형태는 ‘날개들’(ptera)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배와 닮아 있습니다.


배가 출발하여 배 양쪽에서 사람들이 노를 젓고 있는 모습을 하늘에서 바라본다고 상상해 볼까요? 그럼 마치 배가 날개를 달고 바다 위를 날아오르는 장면을 그려볼 수 있는데요. 이 모습이 고대 그리스 신전의 직사각형 형태의 길쭉한 평면을 둘러싼 공간 열주랑과 닮았고 생각한 겁니다.


고대 그리스 신전의 건축 양식 페립테로스. 둘레가 한 줄의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을 포함한 고고유적지 도면. 페립테로스로 지어진 아폴로 신전을 확인할 수 있다.


열주랑에 길게 줄을 맞춰선 사람들이 밖으로 손을 뻗는 모양을 그려보면,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가는 배처럼, 신전도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며 신에게 닿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거예요.


고대 그리스 시대에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항해를 한다는 것은 다른 도시의 사람들을 만나고, 교역과 교류를 한다는 의미로 문명화된 삶을 의미했습니다. 이 부분은 호메로스의 또 다른 서사시 <<오뒷세이아>> 제5권 250행부터 잘 나와 있어요.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가 버려둔 섬과는 달리, 새로운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목공 기술을 갖추고 가꾸어 열매 맺는 삶을 묘사합니다.


"그런데 포구 밖으로 퀴클롭스들의 나라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 숲이 우거진 야트막한 섬이 하나 펼쳐져 있는데, 그곳에는 야생 염소들이 셀 수 없이 많아요.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그것들을 쫓아버리지 않고 산골짝을 돌아다니느라 숲 속에서 고생하는
사냥꾼들도 그 섬에는 들어가지 않으니까요.
목초지도 농경지도 없고 씨 뿌려지거나 경작된 적도 없는 그 섬은 무인도로 매매 우는 염소들만 먹인다오.
퀴클롭스들에게는 이물에 주홍색을 칠한 배들이 없을뿐더러, 그들 사이에는 훌륭한 갑판이 덮인 함선을 공들여 만들어줄 선박 목수도 없어요. 그랬다면 남자들이 흔히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 서로 만나듯, 배들이 인간들의 도시로 가서 그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이뤄주었겠지요. 그리고 선박목수가 그들을 위해 그 섬을 훌륭한 경작지로 만들어주었겠지요. 그 섬은 쓸모없는 곳이 아니라 철 따라 안나는 것이 없었으니까요."

<<오뒷세이아>> 제5권 250행


고대 그리스 신전을 설계한 건축가 혹은 텍톤들이 이런 효과를 의도했다는 주장-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럴싸한가요?

텍톤의 어원을 탐구하는 과정 가운데 나온 흥미로운 이론 중 하나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논문 원문을 읽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를 눌러주세요.

Holst, J., 2017. The Fall of the Tektōn and The Rise of the Architect: On The Greek Origins of Architectural Craftsmanship. Architectural Histories, 5(1), p.5. DOI: http://doi.org/10.5334/ah.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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