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읽는 건축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속 짧은 건축이야기

"뮈케네의 튼튼한 성채"에 관하여

by 이민정

어떠한 것에도 쫓기지 않고 충분히 안전한 상태. 나른한 몸과 마음에 적당히 스며드는 햇살이 평화로운 주말 아침,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기로 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과 지명, 분노와 절망을 표현하는 예스러운 말투와 비유는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소화할 수 있기에 오늘 같은 날이 딱 좋다 생각합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유럽 문학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긴 서사시 <<일리아스>>는 10년 동안 이어진 트로이 전쟁의 마지막 약 50일 동안의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신과 영웅들이 등장하는데, 평소 관심사 때문인지 저는 시에 등장하는 도시와 건축에 관심이 갑니다.

beauty_1697948543179.JPG
beauty_1697942351650.JPG


시 초반부에는

“뮈케네의 튼튼한 성채와 풍요로운 코린토스와
잘 지은 클레오나이를 차지한 자들과...”

라는 구절이 나오는데요.

오늘 이 구절을 읽은 김에 “뮈케네의 튼튼한 성채”를 짧게 살펴볼까 합니다.


뮈케네 혹은 미케네는 호메로스가 노래한 대로 고대 성채도시입니다.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아르골리스에 위치하며, 오늘날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남서쪽으로 약 90km 떨어져 있습니다. 미케네 문명의 바탕이 된 곳이지요.


고대 그리스의 미케네 문명은 기원전 2000년경에 시작합니다. 그리스 본토 남단에 있던 도시국가 미케네에서 유래한 문명으로, 북부 산지에서 남하한 아카이아인들이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구축했습니다. 이 문명은 기원전 1600년경부터 크레타 문명의 영향을 받으면서 활발한 해상 활동을 전개합니다. 기원전 1500년경부터는 지중해 동부의 해상 지역과 교역 지역을 모두 지배합니다. <<일리아스>>에도 수많은 함선들이 등장하고 시시각각 다른 바다의 풍경과 해전이 펼쳐집니다.

IMG_6124.JPG


미케네 문명 유적지로는 미케네와 티린스 고고유적이 있는데요. 미케네 성벽은 거대한 석회암 덩어리들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바위 크기가 매우 커서 고대인들은 이 큰 바위를 사람이 옮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이 문을 만든 사람이 신화 속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라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벽이 '키클롭스의 벽'(Cyclopean Walls)으로 명명된 이유입니다.


Tiryns_-_Cyclopean_masonry.jpg


주목할 만한 점은 이 벽을 만드는 데 망치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벽이 매우 대략적으로 맞춰졌다는 것입니다. 바위 사이의 균열이나 틈은 더 작은 석회암으로 채워졌습니다. 큰 돌을 쌓으면서 개구부를 내기 위해 돌을 살짝씩 앞으로 빼내며 쌓는 고대 석조 방식인 '코벨링 기법'이 눈에 띕니다. 이 방식이 좀 더 발전하면 아치가 됩니다.


Tiryns-in-Nafplio-Peloponnese-Greece-1.jpg


사자문(Lion Gate)이라고 하는 성문도 대표입니다. 문의 구조는 양측 기둥에 인방(보)을 얹은 형태이며, 인방 위에 두 마리 사자를 부조한 삼각형의 커다란 석판이 얹혀 있습니다. 기둥에 인방을 얹는 구조는 선사시대부터 공간에 개구부를 만드는 기초 방식입니다. 스톤헨지나 고인돌과 같은 기본구조에 벽을 만들면 열린 공간이 생기는 거죠.


2560px-Lion_Gate_-_Mycenae_by_Joy_of_Museums.jpg


기원전 천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거대 성벽은 미케네 건축물의 특징입니다. 실제를 바탕으로 신화와 전쟁 영웅들의 이야기가 호메로스의 상상력으로 완성된 <<일리아스>>에서 건축을 발견하며 고전 읽기에 소소한 재미를 더해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세상을 보는 눈, 오쿨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