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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정 Jan 26. 2024

그날이 오면


엄마랑
이번에 출간된 내 책

엄마한텐 특별한 이유 없이도 가끔 가긴 하지만, 얼마 전 출간된 책을 들고 보여드리러 다녀왔다. 엄마 묘비에는 집사라고 적혀있다. 엄마는 젊은 시절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았다가 후에 개신교로 옮기셨다. 나는 마리아라는 천주교 세례명으로 불리는 엄마와 집사라는 교회 직책으로 불리는 엄마를 둘 다 기억한다. 엄마는 마지막에 집사로 남고 싶어 했기에 묘비에는 집사라고 넣어드렸다.


집사.


묘비를 읽는다. 엄마가 누구였는지 설명해 주는 명찰 같은 것- 자신에 관한 정보. 관계에 대한 정보가 있다. 집사는 읽을 때마다 뭔지 잘 모르겠다. 어색하다.


어릴 적 산소에 가끔 따라가서 본 것 말고는 예를 몰라서 갈 때마다 앉아서 엄마한테 두런두런 중얼중얼 얘기만 하다 오곤 했는데, 어머님 아버님께서 지난번에 가르쳐주셔서 그대로 할 수 있었다.


8년 전.


엄마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지 1년 반 만에 세상을 떠났다.


...'떠났다.'


'떠났다.'


떠났다가 맞겠지...


엄마가 세상을 떠난 건 맞는데, 엄마가 나를 떠났다고 생각하면... 아직도 싫다. 엄마가 떠난 세상에 나는 없다고 믿고 싶다. 돌아가시기 전 언젠가 그러셨다. "민정아. 내가 너를 오래 봐야 하는데 미안해." 그런 말을 했던 엄마니까 엄마는 나를 떠난 게 아닐 거다.


엄마는 내가 유학하던 시절, 마치 옆집에 들여보내듯 이것저것 손수 만든 마른반찬들을 보내주셨다. 우편으로 3일 정도 걸렸으니 엄마도 나도 괜찮다 생각했던 것 같다. 한여름엔 어렵지만 봄가을 겨울로는 그렇게 두어 달에 한 번 받았던 기억이 있다.


엄마가 보낸 물건들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건 오뚜기 3분 카레였다. 난 요리를 못한다. 그때도 못했고 지금도 못한다. 이거 저거 계획하고 시간을 맞추고 조리법을 달리하는 게 머리가 지끈거리게 골치가 아프다. 먹는 건 밥, 김만 있어도 행복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날이라도 먹는 건 대충 먹고 그냥 찌그러져 있는 게 좋다. 3분 카레는 데우기만 하면 되니까. 비상용으로 보내주시는 것이었지만 15개 정도를 왕창 보내주시면 이틀에 한 번 꼴로 먹으면서 한 달은 괜찮게 보낸 것 같다.


엄마 마지막 쇼핑 품목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병실에 누운 채 어떤 홈쇼핑 채널에서 주문한 커다란 여행 트렁크 세트였던 걸 알고 얼마나 울었는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세계를 가득 채우던 엄마의 우아함이, 쇼호스트의 높은 목소리에 1초에 수백 개가 팔리는 물건으로 치환되었던 그날의 기억.


가끔 그러셨다. 병이 낫고, 내가 영국에 다시 돌아가면, 동생이 사는 대전과 영국을 몇 달에 한 번씩 왔다 갔다 하며 살고 싶다고. 여행을 가고 싶어 했던 엄마였단 걸 알았을 때 마음이 무너졌다. 내가 살던, 열네 시간쯤 떨어진 바다 옆, 어둡고 바람 많이 부는 동네에 와보고 싶어 했던 엄마. 8년이 지나도 여전히 매일 엄마를 생각한다.


딱히 탐구정신이 있었던 것도, 예술철학에 심취하거나 탐미했던 것도 아닌 내가, 돈 벌기도 힘들고 강의 자리 찾기도 어려운 건축역사이론을 놓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미련인가.. 난 학위가 여럿이다. 영국에서 공부하고 무슨 끈이라도 잡아볼까 싶어 한국에 돌아와서 또 학위를 땄다. 그건 가끔 까먹는다. 비겁했으니까. 학교에 자리 잡는 건 참 쉽지 않고, 난 정신 없이 마구 흔들렸다.


공부를 계속 한 건 사실 공간의 축조나 그 과정에 큰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 가정. '홈 스윗 홈'에 대한 결핍 혹은 그리움 때문인 것 같다. 집에서의 삶. 사람의 삶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엔 사람을 둘러싼 공간을 보는 게 꽤 도움이 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그렇다. 건축이론을 공부했다고 하면 그럴싸하게 들리는 것 같으니까. 여기저기서 공부를 하고 어디서 그걸로 강의라도 한다 하면 내 결핍이 포장되는 느낌이 든다. 공간을 이야기하면 내 진짜 속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도 적당히 품위 유지하며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이게 내 방패이자 도구인 것이다. 결국 공간 이야기는 곧 사람 이야기니까. 건축과 도시, 공간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은 언제나 속터지는 내 이야기를 해 온 나이다.


책 군데군데 아빠 이야기를 더러 했다. 사실 쓰면서 늘 엄마 생각을 했는데, 정작 글에 나온 건 아빠가 들려준 이야기다. 생각해 보면 엄마랑 직접적으로 공간 이야기를 딱히 한 적은 없긴 하다. 아빠가 가끔 해주는 이야기가 남아 있는 건 사실이다. 엄마는 내 모든 문장에 녹아 있다. 드러나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내가 다닌 모든 장소. 내가 보고 느낀 모든 건물. 내가 한 모든 생각. 내 몸과 사고가 지나간 모든 흔적. 그 모든 것에 녹아 있다.


내가 힘들 때, 엄마는 아빠한테 가서 이렇게 이야기해 봐, 저렇게 이야기해 봐, 말씀해주시곤 했다. 물론 엄마 말대로 한 적은 거의 없다. 자존심이 상해서. 그냥 엄마 이야기를 듣는 걸로 충분했다. 이야기하는 걸로 충분했다.


이번에 갔을 땐 엄마가 집에서 자주 연주하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1번을 함께 들었다. 엄마는 피아노 전공으로 클래식 연주를 했다. 대학원을 다녔다고 하셨나, 준비했다고 하셨나- 하여간 내가 나고 나서는 뭘 더 하진 않았다고 들은 기억이 난다. 엄마 어릴 때 약사였던 외할머니가, 늘 약국에 매여 엄마를 못 돌봐주니 피아노를 시켰다고 한다. 자라는 내내 엄마랑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당신 자녀는 늘 곁에 있어줘야지 생각하셨단다. 진짜인지, 또 다른 어떤 상황에 포장된 말인지 나는 알 수 없지만, 그게 진짜건 거짓이건 별 상관없다. 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릴 때 엄마가 살았다는 대구 옛 종로 거리를 상상하고, 그 단층 주택을 상상하고, 피아노 치는 어릴 적 엄마를 상상한다. 진짜가 어디 있나. 다 기억 혹은 상상이 만드는 서사 아닐까. 어느 쪽이든 뭐든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엄마는 딱히 밖에서 연주 경력을 이어가진 않으셨지만 집에선 자주 피아노를 치셨다. 어렸을 때부터 지겹도록(?) 많이 들어 나도 뚱다당 땅땅 도입부 어느 정도 칠 줄 아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1번. 뜸하게 3악장 들어 가끔 '삑사리'가 날 때면 나는 졸아서 쥐 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 실수하는 부분이 나오면 같은 구간을 앉은자리에서 수백 번 연습하는 엄마 심기를 불편하게 할까 봐.


기억이 지워질까 두려운 걸까. 돌려보고 또 돌려보던 어릴 적 어떤 비디오처럼 난 지난 장면들을 돌려보고 돌려본다. 거기서 엄마를 보고, 함께 살았던 집을 보고, 집안 한구석 어느 시간대쯤 어디에 앉아 있는 엄마를 보고, 같지만 다른 공간에 함께 있는 나를 본다. 이걸 그리움이라 하는 게 맞는 걸까. 이름을 모르겠다. 이것이 그리움이라면, 이 모든 그리움이 해소되는 날, 그날이 아마 기쁜 탈건의 날. 건축으로부터 해방되는 날일 것 같다. 몸과 기억으로부터 분리된 객관적 실체. 대상으로서 역사의 존재는 아무래도 믿을 수 없다. 유동하는 액체. 흐르는 내러티브가 있을 뿐. 그때까진 계속 적고 이야기할 것 같다. 내가 보고 느끼는 공간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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