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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인하트 Jan 11. 2019

8. 좋은 선배 엔지니어들의 몇 가지 실수

   좋은 선배는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전문 기술력을 바탕으로 좋은 엔지니어를 양성하는 사람들입니다. 좋은 선배는 쉽게 드러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야 알 수도 있습니다. 아쉽게도 신입 사원들이 겪어보면서 좋은 선배를 알게 되므로 오해를 갖기도 합니다. 좋은 선배들이 의도치 않게 후배들로부터 험담을 덜 들을 수 있도록 자주 실수하는 몇 가지를 공유합니다. 



소크라테스의 "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가 즐겨 인용한 " 너 자신을 알라"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라"입니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 지를 끊임없이 반문해야 진정한 배움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엔지니어가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생각해 봅시다. 신입 엔지니어는 모든 것이 새롭고 배움의 연속으로 자신의 무지가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중급 엔지니어는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많지만 선배들로부터 배움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급 엔지니어는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많고 배우기보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더 많이 합니다. 이들은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잘 인정하지 못하고, 겉으로는 모른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런 성향은 엔지니어들 간의 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에서 문제를 드러냅니다. 엔지니어들은 언변이 뛰어난 사람이 아닌 정보를 많이 가지고 다각적으로 분석하는 사람들이 토론을 주도하고 정확한 답을 제시할 확률이 높습니다. 문제에 대한 비슷한 경험을 가진 배테랑들이 토론의 우위를 점유하고 초중급 엔지니어의 의견이 무시됩니다. 간혹 초중급 엔지니어들의 의견에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합지만, 고급 엔지니어들이 채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급 엔지니어들은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선배 엔지니어들은 '내가 모르는 것이 많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틀릴 수도 있다'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기서 토론이 가능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 열린 토론이 시작됩니다. 후배들의 험담의 시작은 항상 "잘 알지도 못하면서~~ "로 시작해서 "공부를 안 해"로 끝납니다. 좋은 선배 엔지니어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쿨하게 인정합시다. 




지식의 저주 - 지식의 테두리에 갇히다

   지식의 저주 (The Curse of Knowledge)는 누군가가 어떤 것을 알게 되면 그것을 알지 못했던 때를 잊어버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방을 탓하는 것을 말합니다. 1990년대 엘리자베스 뉴턴이 진행한 실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실험은 한 사람은 모두가 알고 있는 음악을 헤드폰으로 들으면서 탁자를 박자에 맞추어 두들기면, 나머지 사람들이 노래의 제목을 맞추는 방식입니다.  헤드폰을 끼고 탁자를 두드린 사람은 120곡 중 절반 이상을 맞추었을 것이라 기대하였지만, 실제로 제목을 맞춘 노래는 단 3곡뿐이었습니다.


   지식의 저주는 선배 엔지니어와 후배 엔지니어의 지식과 경험을 전수하는 과정을 잘 설명해 줍니다. 후배 엔지니어는 선배 엔지니어가 설명하는 전문 용어와 배경 지식을 이해 못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러나, 선배 엔지니어들은 자신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후배를 탓합니다. 후배 엔지니어의 부족한 지식을 탓하기보다는 지식의 저주에 갇힌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후배 엔지니어들도 선배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배 엔지니어들의 "A부터 Z까지 어떻게 설명하냐"라는 표현은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쉽게 표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좋은 선배가 좋은 강사일 확률이 매우 낮습니다. 선배들로부터 좋은 교육과정이나 책을 소개받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좋은 선배는 아무리 설명해도 후배가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선배 엔지니어는 후배에게 잘 설명하는 것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노력은 한발 더 나아가 기술을 알지 못하는 경영진이나 고객을 설득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됩니다. 후배 엔지니어를 설득하고 가르치는 노력에서 고객과 경영진을 설득하는 능력을 배웁니다. 

선배의 친절한 가르침으로
후배 엔지니어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지식의 저주 실험으로 증명되었습니다. 




맨땅에 헤딩 - 바보스러운 경험론을 강요하지 말라 

   많은 선배 엔지니어들이 술자리에서 어처구니없는 맨 땅에 헤딩하던 경험담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맨땅에 헤딩'은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IT 인력이 부족한 시절에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습니다. 주어진 업무량은 많고 일손은 부족하다 보니 신입 사원을 프로젝트 리더로 투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배 엔지니어들은 동시에 진행되는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느라 지쳐 있으니 , 아무도 프로젝트 시작 전에 구축 방법과 고객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후배 엔지니어에게 설명해 주지 못합니다.


   결국, 회사의 모든 직원들이 열심히 일만 하고 있으면 발생하는 것이 "맨땅에 헤딩"입니다. 선배 엔지니어들이 좀 더 여유 있게 일할 수 있는 풍토만 조성되어도 후배 엔지니어들의 맨 땅에 헤딩은 사라질 것입니다. 좋은 선배 엔지니어들은 문서를 관리하고 경험을 체계적으로 전수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지식은 쌓이고 쌓여서 어느 순간에 상호 시너지를 일으키며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는 맨땅에 헤딩은 좋은 선배 엔지니어들의 술자리 경험담으로 끝내야 합니다. 프로의 자세를 보여주어야 할 고객들에게 시간을 벌기 위해 신입 사원을 홀로 보내는 일은 사라져야 합니다. 



지식의 유통기한  

   모든 지식은 유통 기한이 있습니다. 어떤 지식은 천년이 지나도 유용하지만, 어떤 지식은 몇 개월만 되어도 쓸모가 없어집니다. IT 업계의 제품이나 솔루션에 관한 지식의 유통기한이 얼마나 될까요? 새로운 펌웨어나 업그레이드 패치가 발표되면 과거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팁이나 워크어라운드(Workaround)는 쓸모가 없어집니다. 제품의 수명 주기도 점점 짧아지고, 사용되는 기술들도 점점 새로운 것으로 진화합니다. IT 업계에서 지식의 유통 기한은 6개월에서부터 길면 몇 년까지 다양합니다. 


   좋은 선배 엔지니어는 새 제품에 대해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제품의 설계 사상과 기본 프로토콜에 대한 지식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후배 엔지니어들에게 유통기한이 짧은 지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력의 밑거름이 되는 유통 기한이 긴 지식을 가르지고 배우게 합니다. 예를 들면, SIP는 20년, TCP/IP는 40년 넘게 통용되는 지식입니다. 이런 프로토콜들도 H.323, X.25와 같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 모르지만, 엔지니어라면 알고 있어야 하는 필수 기술입니다. 


   좋은 선배 엔지니어는 유통기한이 긴 지식을 갖기 위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후배 엔지니가 겉으로는 화려한 설정 팁이나 워크어라운드에 집착하지 못하게 합니다. 화려한 기술들은 많이 해보면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지식이지만, 유통 기한이 긴 지식은 열심히 공부해야 얻어집니다. 2-3년 정도 업계를 떠나 있더라도 기본 지식이 뛰어난 엔지니어는 금방 따라잡지만, 제품 설치 매뉴얼과 장애처리만 하던 엔지니어는 다시 돌아오지 못합니다. 


좋은 후배를 알아보는 안목 

   좋은 선배 엔지니어들은 업무에 임하는 열정과 태도가 좋은 후배 엔지니어를 한눈에 알아봅니다. 싹수가 보이는 후배 엔지니어들을 적극적으로 키워주고 밀어 주어 자신을 대신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IT 업계는 경력 위주로 움직이는 시장입니다. 선배가 후배를 이끌어주고 후배가 선배를 이끌어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좋은 선배 엔지니어들은 좋은 후배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후배를 보는 안목이 없기도 합니다. 가끔 선배 엔지니어의 지식과 기술에 관심 없는 후배를 이끌거나 싹수가 없는 후배를 가르치느라 고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후배도 힘들고 좋은 선배도 성격을 버립니다. 좋은 선배는 좋은 후배를 알아보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마치며

   좋은 선배가 경계해야 하는 실수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필자도 다 지킨다거나 모두 잘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마음속에 새겨 두고 지키려고 노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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