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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인하트 Apr 01. 2019

장례식장 앞에 핀 밤의 목련

삶은 그렇게 회귀하며 이어진다

   지난주는 정말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엄청난 업무량과 MBA School의 Business Project를 위한 인터뷰도 정리해야 했습니다. 특히, 지난주 목요일은 아침부터 중요한 발표를 위한 자료와 데모도 준비해야 했습니다. 금요일까지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하지만, 목요일 오전 스마트폰을 울리는 한 통의 문자가 일의 우선순위를 송두리째 바꾸었습니다.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카카오톡으로 들어왔습니다. 친구들은 서로를 카톡 단톡 방에 초대하면서 친구들과 일정을 조율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요일 내려가는 친구들과 금요일 내려가는 친구들 사이에서 필자는 머릿속이 아득해졌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상심이 클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기 전에 너무 많은 업무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되었습니다. 오후 내내 판단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오늘 반드시 마무리 져야 하는 일들이 무겁게 제 몸을 짓눌렀고, 금요일과 토요일은 MBA 수업 때문에 학교를 가야 합니다. 금요일까지 일을 해도 마무리하기 힘든 업무량을 보며 긴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포기하자. 포기가 빠르면 모든 것이 편하다. 오후에 출발하는 친구들에게 같이 가자고 카톡을 보냈습니다. 힘들어할 친구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웃어주고 어깨를 토닥여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친구의 마음도 어루만지고 제 자신의 마음도 편할 것입니다. 자동차는 하남 만남의 광장에 세워두고, 친구들과 만나 강릉으로 출발했습니다. MBA 공부한다는 핑계로 거의 만나지 못한 친구들입니다. 강릉 가는 차 안에서 세명의 친구들은 서로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장례식장 근처에 핀 목련

   강릉 장례식장 근처의 벚꽃이 피기 시작했고 한편에 목련도 같이 피었습니다. 밤에 핀 목련을 바라보니 죽음이 생각합니다. 목련은 흰 빛만 하늘로 오르고 바람에 한 잎씩 찢겨 흙으로 갑니다. 대학 때 김지하 시인의 시를 노래로 만든 김광석의 '회귀'를 처음 들었습니다. 목련은 무엇이 그리 급한지 피자마자 지기 시작합니다. 마치 영원할 것 같은 젊음이 짧은 눈부심만 남기고 하늘로 외로이 오르는 것 같습니다.

젊은 날  빛을 뿜던 이들은 모두
짧은 눈부심 뒤에 남기고
하나둘씩 혹은 감옥으로 혹은 저승으로 가데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목련은 이미 지나간 젊음과 죽음을 떠올립니다. 목련이 봄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듯 생명은 삶과 죽음을 회귀하는 듯합니다. 이렇게 떠나보내고 흙으로 돌아가면 다시 어딘가에 새로운 생명으로 꽃 피울지도 모릅니다.  




   장례식장에서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매일매일 앞만 보고 바쁘게 지내는 일상에서 잠시 멈추어 뒤를 바라보았습니다. 오랫동안 병상에서 고생하시던 아버지를 보낸 친구의 시원섭섭한 얼굴. 몇 년 만에 만난 친구의 반가운 얼굴. 요즘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들을 편하게 털어놓는 친구의 입술. 따라준 술잔을 부딪히려는 나에게 상갓집은 혼자 먹는 거라는 꼰대 같은 친구의 말. 자리에 앉을 새도 없이 계속 들어오는 손님을 맞이하는 친구의 분주함. 육개장 대신 미역국을 후루룩 먹으며 허기를 채우는 친구의 먹는 소리.


   어느새 친구들과 좋은 일보다는 슬픈 일로 만나는 시간이 더  많아졌습니다. 젊을 때는 친구들의 결혼식과 아이들의 돌잔치를 찾아다니다가 지금은 장례식장을 찾아다닙니다. 그렇게 더 이상 찾아다닐 장례식장이 없을 때 즈음 나의 마지막 시간도 찾아올 것입니다. 삶은 그렇게 순환합니다. 나의 아버지처럼 나도 살아갈 것이고, 나처럼 내 아들도 살아갈 것입니다. 매년 흰 빛만 하늘로 오르고 바람에 찢겨 한 잎 씩 흙으로 가는 목련을 바라봅니다. 아들의 삶도, 나의 삶도, 아버지의 삶도, 희미한 할아버지의 삶도 회귀합니다.  


흰 빛만 하늘로 오르고 바람에 찢겨 한 잎 씩 흙으로 가는 목련처럼
아들의 삶도, 나의 삶도, 아버지의 삶도 그렇게 회귀한다



회귀

                      김지하


목련은 피어

흰 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

바람에 찢겨 한 잎씩

꽃은 돌아

흙으로 가데


가데

젊은 날

빛을 뿜던 친구들 모두

짧은 눈부심 뒤에 남기고

이리로 혹은 저리로

아메리카로 혹은 유럽으로

하나둘씩 혹은 감옥으로 혹은 저승으로


가데

검은 등걸 속

애틋했던 그리움 움트던

겨울날 그리움만 남기고

무성한 잎새 시절

기인 긴 기다림만 남기고


봄날은 가데

목련은 피어

흰 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

바람에 찢겨 한 잎씩

꽃은 돌아

흙으로 가데


가데

젊은 날

빛을 뿜던

아 저 모든 꽃들 가데.






회귀

             김광석


목련은 피어

흰 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

바람에 찢겨

한 잎 씩 꽃은 흙으로 가네


검은 등걸 속

애틋한 그리움 움트던 겨울날

그리움만 남기고

저 꽃들은 가네


젊은 날 빛을 뿜던 친구들 모두

짧은 눈부심만 뒤에 남기고

긴 기다림만 여기 남기고

젊은 날..


목련은 피어

흰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

바람에 찢겨

한 잎씩 꽃은 흙으로 가네


봄날은 가네

그 빛만 하늘로 오르고


빛을 뿜 던 저 꽃들은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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