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를 다닐 때 '수맥'이라는 문학동아리가 있었습니다. 동아리에서 사람들끼리 매주 자작시나 유명 시인들의 작품을 나누었습니다. 어느 날 한 선배가 박노해 시인의 시를 가사로 만든 노래마을의 '그리움'을 들려주었습니다. 박노해 시인이 개나리의 샛노란 꽃을 '노란 작은 손'이라 말한 것이 필자에게는 일찍 세상살이에 뛰어든 철부지의 고단한 손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매년 봄이 다시 돌아오면 동부간선도로에 샛노란 개나리 꽃이 흐드러지게 핍니다. 개나리꽃을 볼 때면, 언제나 박노해 시인의 '그리움'을 흥얼거립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고향에 남겨둔 것도 누군가를 멀리 떠나보낸 것도 아니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도는 삶을 고스란히 드러낸 듯합니다. 이 노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시작한 자신을 떠올리게 합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핀 개나리 꽃은 눈부시게 빛나던 20대 초반의 대학생 시절을 기억하게 합니다. 술잔을 기울이며 친구들과 나누던 수많은 이야기들은 기억나지 않지만, 술자리에서 함께 웃고 떠들던 풍경은 기억납니다. 도서관에서 공부했던 책들은 기억나지 않지만,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창가 자리는 기억납니다. 좋아했던 그녀들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풋풋한 사랑의 설렘은 기억납니다. 그녀의 이야기들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의 따스한 손은 기억납니다. 그때의 느낌은 사라지고 이제는 희미한 추억만이 남았습니다. 곧 개나리가 지고 나면 하얀 목련이 그 자리를 대신하겠지만 오늘은 따사론 봄볕 아래 바람에 춤추는 개나리 꽃을 바라봅니다. 개나리는 마음 한 켠에 숨겨둔 기억을 꺼내게 합니다.
개나리 꽃은 눈부신 청춘의 기억을 부릅니다.
저마다 눈부신 청춘을 기억하는 매개체가 있습니다. 필자에게는 개나리가 눈부신 청춘을 기억하게 합니다. 필자의 둘째 동생은 90년대 구닥다리 노래에서 청춘을 느낍니다. 젊은 시절 불렀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청춘을 불러오는 매개체가 개나리 꽃인지, 시인지, 아니면 노래인지.... 구분할수는 없지만, 저마다 우리를 과거로 돌려보내는 매개체가 있습니다.
또다시 봄입니다. 개나리 꽃을 보며 잠시 추억에 잠겨봅니다.
누구에게나 눈부신 청춘의 기억을
불러오는 매개체가 있다.
그리움
박노해 / 노래마을
공장 뜨락에 따사론 봄볕 내리면
휴일이라 생기도는 얼굴들위로
개나리 봄눈이 춤추네
바람 드세도 모락모락 아지랑이로 피어
온 가슴을 적셔오는 그리움이여
내 젊은 청춘이여
하늘하늘 그리움으로 노란 작은 손 내밀어
꽃바람 자락에 날려 보내도
더 그리워 그리워서 온몸 흔들다
한 방울 눈물로 떨어지네
가난에 울며 떠나던
아프도록 그리운 사람아
하늘하늘 그리움으로 노란 작은 손 내밀어
꽃바람 자락에 날려 보내도
더 그리워 그리워서 온몸 흔들다
한 방울 눈물로 떨어지네
가난에 울며 떠나던
아프도록 그리운 사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