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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인하트 Mar 31. 2020

29. 재택근무, 집이라는 감옥에 갇히다

집은 감옥이 아니다 

재택근무도 적응이 필요하다 

   신입 사원 시절 첫 출근 날이 떠오릅니다. 사무실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사람들이 바삐 일하지만, 신입사원은 할 일 없이 책상만 멍하니 바라봅니다. 점심시간에 선배들이 밥 한 끼를 사주며 사회생활에 대해 훈수합니다. 다시 책상에 멍하니 앉아 있거나 잔심부름을 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퇴근시간이 지나도 선배들이 퇴근하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선배들이 갑자기 신입사원 환영회라고 저녁 겸 술자리를 열어줍니다. 술잔을 기울이며 사회생활에 적응합니다. 대학 시절 양복을 입고 사무실에 출근하고 싶었지만, 사무실은 너무나 어섹한 공간입니다. 선배들은 바빠서 신입사원을 챙겨주지도 못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사무실에 출근하는 것이 익숙해질 즈음 겨우 간단한 업무부터 시작합니다. 


   사람들과 새로운 사무실로 이사했던 때가 떠오릅니다. 새로운 사무실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깨끗한 책상과 의자를 가지는 것뿐만 아니라 상쾌한 기분도 함께 합니다. 책상을 정리하고 물건들을 재배치하는 동안 하루가 지나갑니다. 해야 할 업무는 산더미지만 어수선한 사무실에서는 쉽지 않습니다.  화장실의 위치와 점심을 할 수 있는 식당의 위치를 익힙니다. 새로운 사무실의 어수선함이 사라지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코로나 19 (COVID 19) 사태로 많은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어떤 업무를 할 수 있고 어떤 업무를 할 수 없는지에 대한 고민도 없이 사무실에 나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직원들은 스마트폰과 노트북만 들고 집으로 추방당했습니다. 경영진들은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일하듯이 집에서 일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처하면 누구나 적응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재택도 마찬가지입니다. 


재택근무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집이라는 감옥에 갇히다 

   어느 날 갑자기 재택근무를 시작하는 직원들은 당황합니다. 출근을 하거나 퇴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도 잠시입니다. 노트북을 꺼내놓고 업무를 시작하려고 하지만, 막상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참조해야 할 자료는 회사 서버에 있고, 함께 논의할 동료는 옆에 없습니다. 결국, 인터넷을 뒤져가면서 자료를 찾아보지만  쉽지 않습니다. 사내 메신저에는 같은 상황에 처한 동료들의 푸념과 한숨 소리가 넘쳐납니다. 업무를 하기엔 집이라는 공간은 낯설기만 합니다.  마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감옥에 갇힌 듯합니다.


   집에는 가족이라는 간수가 있습니다. 휴교령으로 아이들도 집에 있습니다. 맞벌이를 하는 배우자도 집에 있습니다. 모두가 집에 있습니다. 하루 세끼 누군가 밥을 차리고 누군가는 설거지를 합니다. 평상시처럼 식당을 자주 갈 수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집안을 어지르고 누군가는 치웁니다. 하루 24시간 서로가 눈치를 보다가 지쳐갑니다. 이제는 집에서 탈출하고 싶습니다. 쇼생크 탈출처럼. 




재택근무의 근무 장소는 집만이 아니다 

   어떤 회사는 재택근무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집에서 일하는 것으로 규정합니다. 노트북의 사내 메신저에 "자리 비움(Away)"가 뜨면 근무공간 이탈로 간주합니다. 재택근무를 회사는 '재택'이라는 단어에 직원들은 '근무'라는 단어에 무게를 둡니다. 그 역도 다르지 않습니다. 재택근무는 단순한 근무형태가 아닙니다.  재택근무는 근로자가 사무실이 아닌 집이나 그 주변에서 랩탑, 스마트폰 등을 활용하여 공간의 제약 없이 언제 어디서나 근무하는 업무형태입니다. 재택근무자의 근로 공간은 집과 주변, 그리고 어디라도 상관없습니다. 재택근무의 넓은 의미는 사무실이 아닌 공간에서 업무가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재택근무가 집에서만 근무를 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재택근무는 직원을 집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사무실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일하게 하는 거이다 


   쇼생크 탈출을 꿈꾸는 직원은 집에서 벗어나 가까운 카페에서 일할 수도 있고, 조용한 도서관에 일할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 19 사태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는 어디에서나 근무해도 상관없습니다. 단지 연결만 되면 됩니다. 동료나 고객이 찾을 때 반드시 전화가 연결되고, 정해진 회의에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으로 참석합니다. 문제는 연결되지 않는 것이지 장소가 아닙니다.  


문제는 연결되지 않는 것이지 장소가 아닙니다. 


   어리석은 회사는 재택근무를 일차원적으로 해석하고 행동합니다. 한국에 진출한 많은 외국계 기업들은 재택근무가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어떤 직원도 재택근무를 '집에서만'으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재택근무는 사무실 이외의 공간에서도 사무실과 동일한 업무가 가능한 것입니다. 코로나 19 사태가 지나가면 기업들이 상시 재택근무 환경을 제대로 설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재택근무가 뭔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회사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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