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백분토론은 하나의 주제에 대해 상반된 의견을 가진 두 그룹이 백 분간 토론을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토론 초반에는 서로의 상반된 주장을 확인합니다. 중반에는 자신의 주장에 강력한 근거들을 제시하거나 상대방의 주장에 논리적 허점을 찾아냅니다. 후반에는 좀 더 논리적 타당성을 갖춘 주장이 나오지만, 상대방은 새로운 주장을 하거나 계속되는 논리적 허점을 지적합니다. 마지막에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토론을 마무리합니다. 백분토론에서 사람들은 상반된 주장을 하는 그룹들의 논리적 사고 구조를 알 수 있을 뿐입니다. 토론 당사자들은 상대방을 설득하지 못합니다. 백분토론을 보고 입장을 바꿀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공개된 자리에서 자신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쉽게 인정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회는 여당과 야당으로 나뉘어 연일 새로운 뉴스를 생산합니다. 여당과 야당은 국회에서 토론을 통해 합의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논리적이던 비논리적이던 상관없이 각자 주장을 하고 상대방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여당과 야당은 토론을 해서 같은 결과를 도출할 생각이 없습니다. 합의는 각 당의 합리적 주장에 비합리적인 요소를 끌어들이는 형국입니다. 야당은 여당의 활동을 발목 잡아야 하고 여당은 혁신과 변화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국회는 태생적으로 토론으로 결과를 도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수결로 표결을 합니다
토론은 상대방을 설득하는 과정이 아니라 차이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주장이 팽팽하게 맞설 때 토론은 각자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일 뿐입니다.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토론은 상대방을 설득하는 과정이 아니라
상대방과의 차이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설득이란 의사 결정을 가진 사람들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타인을 논리적으로 설득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니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고자 사람들은 설득에 관한 많은 책들을 읽고 공부합니다. 설득에 관한 책들이 끊임없이 팔리는 이유는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타인을 자신의 목적대로 움직이도록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중고등학교에서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상대방을 진정으로 설득하기 위해서는 논리가 아닌 감성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심지어 이성적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을 경멸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결혼이나 연애의 상대를 이성적으로 선택할 때입니다.
상반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없습니다. 양 극단에 있는 주장은 서로를 설득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주장에 논리적 허점이 많다면 새로운 논리를 찾거나 허점을 메우려고 노력합니다. 절대로 상대방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설득한 사람들은 이미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뿐입니다. 같은 주장과 비슷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차분히 들어주고 격려합니다.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끼리 논리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설득할 뿐입니다. 처음부터 논리적으로 힘들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을 설득할 뿐입니다. 또한, 주장이 없는 사람들은 논리적 타당성을 갖춘 의견에 손을 들어주지만, 보통은 양쪽 모두에 손을 들어줍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의사결정을 해야 합니다. 많은 의사결정들이 지연하거나 심사숙고만 할 수 없습니다. 백분토론은 의사 결정을 시청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국회는 다수결의 원칙을 적용합니다. 행정부는 많은 의사결정 사항을 국무회의에 올려 대통령이 결정합니다. 모든 조직의 의사결정은 토론이 아니라 권한을 위임받은 대표자가 하거나 권한을 위임받은 대표회의에서 다수결로 처리합니다.
역사 이래 모든 조직은 조직에 맞는 의사 결정 구조가 있습니다. 민주적인 절차가 도입되기 전에는 집중된 권력을 가진 왕이나 제사장이 의사 결정을 합니다. 신의 대리인인 왕이나 제사장이 내린 결정은 완전무결하기 때문에 시시비비를 더 이상 가리지 않습니다. 민주적인 절차가 도입된 현대에는 권력을 분산시키면서 다수결로 의사결정을 합니다. 다수결의 단점은 완전 무결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시시비비가 끊이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기업이나 조직들은 민주적 의사 결정 구조의 탈을 쓰고 권력을 가진 자가 의사 결정을 합니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인물이 의사결정을 주도합니다. 민주적 절차의 단점을 막강한 권력의 힘으로 누르고 조직의 의사 결정을 이끕니다. 사실, 이런 카리스마가 넘치는 인물이 의사 결정을 하는 상황에 놓인 안건은 아래에서부터 충분히 심사숙고를 거쳐 위험요인을 최대한 제거한 것들입니다.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어차피 결정을 해야 하는 안건들입니다. 어쨌든, 미래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늘 있는 일입니다. 제대로 된 조직은 그 충격을 버틸 수 있습니다.
주장이나 생각의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주장과 상반된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참기 어렵습니다.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있는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같은 내용의 근거와 주장을 두세 번 강조하면서 토론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하지만, 토론에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상반된 주장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설득할 수 없습니다. 역사 이래로 토론을 통해 상반된 주장을 하는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할 뿐 설득을 할 수 없습니다. 토론에서 자신의 주장에 대한 논리적 타당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토론에서 주장에 대한 논리적 타당성을 보여줄 뿐.
각각의 주장이 논리적 타당성을 얼마나 있는 지를 봅니다. 상대방의 주장에 허점이 있듯이 자신의 주장에도 허점이 있습니다. 허점을 공격할 것이 아니라 허점을 알려주고 대책을 마련한다는 생각으로 토론을 합니다. 상대방은 절대로 설득되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순간 망합니다.
토론에서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순간 망합니다.
최종 의사 결정에 놓인 주장들은 모두 논리적 타당성과 개연성을 갖춥니다. 토론이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어도 최종 의사 결정의 장이 아닙니다. 상대방과 상대방의 주장을 공격하는 것은 손해가 클 뿐입니다. 예를 들면, 토론장에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면 그들이 기분 나쁘지 않게 논리적 타당성을 전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토론장에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면 논리적 타당성만을 갖추고 허점을 강화하면 그만입니다. 상대 주장의 허점을 공격해 무너질 수 있는 주장은 애초에 토론장에 오지도 못합니다.
조직에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강하게 주장도 하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고 우기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상반된 주장을 하는 사람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논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기분이 나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반드시 설득해야 한다면, 토론장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상대의 마음이 열려있지 않다면, 그 어떤 것도 거부할 것입니다. 논리가 시작이 아니라 논리는 마지막입니다. 상대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작은 논리를 풀어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