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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인하트 Jun 21. 2021

사카린에 얽힌 세 가지 사건들

연구 윤리 위반 - 사카린 특허 논란 

   1879년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교(Johns Hipkins University)의 화학과 교수 아이러 렘슨는 그의 제자 콘스탄틴 팔베르크에게 유기화학반응에 관한 연구를 시켰습니다. 팔베르크는 연구의 부산물로 벤조산 설피나이드를 우연히 발명합니다. 벤조산 설피나이드는 훗날 단맛을 내는 사카린으로 알려집니다.  사카린은 설탕보다 300 배 이상의 단맛을 내면서도 가격은 40배나 싸고 영양학적으로 제로 칼로리를 내는 기적의 식품입니다. 


아이러 렘슨과 팔베르크


   팔베르크는 사카린의 미래 가능성을 보고 아이러 렘슨을 제외하고 독자적으로 특허를 신청합니다. 1901년 콘스탄틴 팔베르크는  사카린을 제조하는 몬산토(Monsanto)를 설립하고 인공 감미료 사카린을 생산합니다. 아이러 렘슨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심한 분노와 함께 팔베르크를 악당이라고 부릅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가 원수지간이 된 것입니다. 


  팔베르크가 아이러 램슨을 제외하고 독자적으로 특허를 신청한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팔베르크는 주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므로 연구와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러 렘슨은 공동 연구 과정에서 만들어진 모든 결과물은 공동의 소유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것이 맞을까요?


과학의 영역에서 진실 - 사카린 안정성 논란

   1907년 미국 농무성은 사카린이 '순수 식품 의약품법'을 위반하는지를 조사합니다. 미국 농무성은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농부의 이익을 보전하려는 조치였으나 루스벨트 대통령의 반대합니다.  미국 농무성은 1909년 사카린은 안전하다고 공식 보고하고, 1911년  불순물질로 규정하여 식품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1차 세계 대전 기간 설탕 공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식품 첨가물로 인정하고, 1950년대부터 저칼로리 다이어트 식품으로 인정합니다. 다시 사카린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1972년 미국 식품의약국  FDA는 쥐실험에서 사카린이 방광염을 일으킬 위험이 높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안전한 식품 첨가물 목록에서 사카린을 삭제합니다. 1977년 과량의 사카린이 쥐에게 암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사카린 사용 금지를 요구합니다. 결국,  사카린을 사용한 제품에는 '동물에게 암을 유발할 수 있는 감미료"라는 경고 라벨을 부착합니다. 1981년 NTP 미국 독성 물질 프로그램은 사카린은 인간 발암 의심 물질로 규정합니다. 다시 사카린의 암흑시대입니다. 


   20년이 지난 2000년  미국 독성 프로그램은 발암 의심 물질 목록에서 사카린을 삭제하고, 미국 클린턴 대통령은 경고 라벨도 제거합니다. 2001년 미국 식품의약국은 사카린을 안전한 식품 첨가물로 발표합니다. 다시 사카린의 시대입니다. 오늘날 사카린은 항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사카린은 과학적으로 인체에 유해할까요? 무해할까요? 사카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사카린과 설탕의 관계에 대한 정치적 목적에 따라 과학적 연구 결과를 잘못 판단합니다. 또 20년이 지나면 사카린은 발암 물질로 선언될지도 모릅니다. 참고로 당뇨병 환자들에게 사카린은 기적의 식품입니다. 




밀수품 - 사카린이 바꾼 삼성 그룹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은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에게 비료 공장을 세울 것을 지시합니다. 이병철 회장은 일본 미쓰이 그룹으로부터 기술과 기계를 납품받아 비료 공장을 세웁니다. 일본은 구매의 대가로 리베이트를 주는 관행에 따라 미쓰이 그룹은 이병철 회장에게 리베이트를 주었습니다. 1966년 5월 24일 이병철 회장은 돈 대신에 약 55톤의 사카린과 각종 가전제품을 수입합니다. 당시 사카린을 한국에 정식 수입을 하려면 가격차이로 인해 엄청난 관세를 물어야 합니다. 사카린은 일본에서 저렴하지만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쌉니다.  


   경향 신문이 사카린 밀수를 터트리면서 삼성은 경영 위기에 처합니다. 이병철 회장은 비료공장과 대구대학(현 영남대)을 정부에 헌납하고 회장직을 내려놓고 장남인 이맹희에게 승계합니다. 사카린 밀수의 책임은 둘째 이창희에게 돌아가고  1년간 감옥생활을 합니다. 2년 후 이병철 회장은 복귀하고 2년간의 경영실적을 핑계로 이맹희를 내치고, 아버지를 치려고 했던 이창희도 버림받습니다. 


   결국, 이병철 회장은 삼성을 셋째 이건희에게 승계합니다. 삼성은 제일제당으로 시작하여 반도체로 성장한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입니다. 사카린은 한국에서 삼성 전자의 역사를 바꿉니다. 설탕으로 시작한 삼성이 사카린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카린 밀수로 촉발된 경영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건희는 경영권을 확보하고 삼성을 전세계의 반도체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기업으로 키웁니다. 


   사카린은 몸에 해롭지 않고 값싼 당으로 오늘날 청량음료에 들어가는 대표적인 다이어트 식품입니다. 한국의 현대사에 사카린은 삼성과 밀수라는 키워드로 반드시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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