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리마인드 웨딩 동영상 만들기
2018년 9월 1일 아버지의 칠순을 맞아 부모님의 리마인드 웨딩을 하였습니다. 부모님의 리마인드 웨딩을 시간 순서에 따라 준비과정에서 마무리까지 차례차례 정리하기보다는 남아 있는 기억의 편린들을 중심으로 전개합니다.
고희연을 기념하여 부모님 라마인드 웨딩을 계획하면서 웨딩을 마치고 동영상을 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필자 : 형은 아버지의 어록을 담은 '몽근록'을 만들고, 둘째는 개발로써 아버지는 '쿠웨이트 우'의 삶을 동영상을 만들어라. 막내는 단란한 가족에 대한 동영상을 만들어.
둘째 : 내가 개발자인 거랑 동영상이랑 상관없는 데.
필자 : 부모님 리마인드 웨딩 때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거야. 뭐라도 해야지. 막내랑 같이 있는 사진들 모아 보면 되겠지
막내 : 사진이 없어서 '쿠웨이트 우'는 어려워. 아버지 젊은 시절 사진이 10장도 안 되는 데 어떻게 만들어. 태풍 매미 때 다 사라졌어.
둘째가 아버지의 삶과 단란한 가족이라는 이미지의 동영상을 만들었으며, '쿠웨이트 우'는 사진이 없어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2003년 9월 12일 한반도에 상륙해 경상도와 강원도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슈퍼 태풍입니다. 나무 위키에 따르면, 인명 피해 132명에 재산 피해액만 4조 7천여 원에 이르렀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시던 강릉집도 물에 잠겼습니다. 모든 가재도구와 자잘한 것들은 홍수에 쓸려 내려갔습니다.
동네 최초의 슬래브 집이라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옥상이 있었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장독대를 옥상에 마련하여 수시로 다녔습니다. 하지만, 이 물난리에는 집에 옥상이 있는 것도 모르시고 창문에 꼭 붙어 계셨습니다. 지금도 술 한잔 드실 때면 태풍 매미 때 이야기를 하십니다.
태풍 매미에 쓸려간 가구들은 다시 사면되었지만, 돌아오지 못했던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가족사진입니다. 수십 년을 함께한 사진들이 모두 물에 떠내려 갔고, 현재 남아 있는 사진들은 벽에 걸어 둔 액자에 꼽아둔 사진 몇 장뿐입니다. 또 하나는 필자가 대학시절부터 헌책방을 다니며 사모았던 책들입니다.
우리 가족의 추억은 몇 장의 사진과 짧은 기억뿐이 없지만, 앞으로도 함께 할 많은 시간들이 있으므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필자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은 이렇게 몇 장의 사진으로만 남았습니다.
할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 아버지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습니다.
필자 : 할머니, 아버지 이야기 좀 해주세요.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에요?
할머니 : 네 아버지는 정말 부지런하고 착했다. 한 번은 콩을 타작해서 리어카에 싣고 가는 데 콩이 조금씩 땅에 떨어졌지. 네 아버지는 그걸 모두 주워서 들고 왔다. 항상 배고팠기에 콩 한 알도 버리지를 못했단다.
아버지는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공부를 계속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젊은 시절의 배고픈 삶을 벗어나던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습니다.
필자 : 아버지, 할머니가 말씀하시길 늘 배가 고팠다고 하던데. 어떻게 살았어요?
아버지 : 그때는 정말 배고팠지. 겨울이 되면 먹을 것이 부족해서 쌀을 빌려다 먹으면 이자가 붙어서 추수를 하고 나면 또 먹을 것이 없는 거야. 그래서 겨울에 추수하고 난 후에 보리를 심었지. 봄에 보리를 거둬서 먹으니 더 이상 쌀을 빌리지 않아도 되니 좀 살만했지.
그는 젊은 시절 가난을 극복하려고 2년간 쿠웨이트 공사 현장에 지원하였습니다. 이때 모은 돈으로 당신 이름의 땅도 구입하였고, '우리 동네 최초의 슬래브 집'을 지었습니다. 필자는 아버지와 형제들끼리 술 한잔 기울일 때면 '쿠웨이트 우'라 부릅니다. 그가 쿠웨이트를 다녀왔기에 우리가 가난을 벗어날 수 있었고, 필자와 형제들이 공부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필자는 몇 년 전 읽은 조정래 님의 '한강'이라는 소설을 통해 쿠웨이트와 사우디에서 일한 해외 건설 노동자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형제들에게 아버지의 젊은 시절은 한 마디로 표현하는 쿠웨이트 우'는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필자와 형제들의 아버지였기에 얼굴에 패인 주름살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도 샤워 후 거울을 보면 하나 둘 늘어가는 주름살이 낯설 것입니다. 세월은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낯설게 다가옵니다.
그는 거울을 보면서 주름살이 낯설겠지
우리 가족은 부모님의 리마인드 웨딩으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뿐만 아니라 우리 형제들에게도. 특히, 둘째는 동영상을 만들면서 아버지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면서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둘째는 아버지를 가장 닮았으면서도 아버지 속을 많이도 썩었습니다. 아버지의 주름살은 세월이 지나간 흔적일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의 삶의 흔적입니다.
김필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손 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 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나를 두고 간 님은 용서하겠지만
날 버리고 가는 세월이야
정 둘 곳 없어라 허전한 마음은
정답던 옛 동산 찾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