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엔지니어의 길을 묻다
2000년에 CCNP 자격증을 취득 후 수월하게 외국계 IT기업에 취업하였습니다. 당시 IT 버블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시기였으므로 신입사원도 현장에 투입되었습니다. CCNP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다져진 이론에 현장 실무가 가미되어 빠르게 성장하였습니다.
BMT (벤치마크 테스트, BenchMark Test)라 불리는 품질 및 성능평가 테스트는 장비의 많은 기능을 하나하나 점검하다 보니 짧은 시간에 실력이 크게 증가되었습니다. BMT는 폭풍성장이라는 열매가 있지만, 엔지니어들의 체력과 심리적 압박으로 인해 기피합니다. 특히, ISP (Internet Service Provider)에서 진행하는 BMT가 가장 힘들게 진행됩니다. 필자도 여러 번의 BMT를 거치고, 실무 경험이 쌓이면서 중급 엔지니어로 성장했습니다.
처음 컴퓨터를 샀을 때부터 생각했던 IT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었습니다. 중급 엔지니어로 실력과 경험을 인정받으면서 세상이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송곳이라는 만화에서 나왔던 대사가 그렇듯이 사람이 성장하면서 가치관도 바뀌었습니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무거운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엔지니어가 멋지기보다는 불쌍하게 보였습니다. 아침에 지하철에서 노트북을 무릎 위에 놓고 졸고 있는 엔지니어를 바라보면서 어제 야간작업을 마치고 집에서 겨우 샤워만 하고 다시 출근하는 모습이 연상되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노트북은 점점 작아졌지만, 고성능 장비가 필요한 엔지니어의 노트북은 가벼워지지 못했습니다. 3년마다 노트북이 바뀌면서 어느 순간 노트북은 멋진 친구에서 공구가 되었습니다. 목수가 아침마다 톱과 망치를 챙겨 일터를 나가듯이 IT 엔지니어는 노트북을 챙겨 일터로 나가는 것뿐이었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가 낡은 가방에 공구들을 챙겨 새벽에 지친 모습으로 일터로 향했듯이 IT 엔지니어 들는 낡은 가방에 노트북을 챙겨 새벽에 지친 모습으로 일터로 향했습니다.
노트북이 공구가 되면서 최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에 관심 많던 청년은 사라졌습니다.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업무용 소프트웨어 사용법을 익히는 것이 귀찮아졌고, 자잘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보다는 전화를 걸어 컴퓨터 담당자에게 해결을 요청하였습니다. 좋은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 법이지만, 업무에 지친 IT 엔지니어는 자신의 업무와 관련 없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기 되었습니다.
좋은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지만,
IT 엔지니어의 노트북은 너무 빨리 쓸모 없어진다.
IT 기업의 중급 엔지니어는 BMT, 장비 설치, Project Management, 신입 사원 교육, 신 기술 전파 등 많은 일을 합니다. 2000년 대 중반 중급 엔지니어들이 힘들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되어 나갔습니다. 과중한 업무의 많은 원인들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었습니다. 후배 엔지니어들이 계속 입사하였으므로 업무를 나눠가지게 될 것이었고, 제품들은 빠르게 안정화되어 갔으므로 장애는 줄어들 것이었습니다.
중급 엔지니어는 대학생이나 신입사원 시절 때 가졌던 IT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IT 산업의 미래와 엔지니어로써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급 엔지니어는 기업의 손발이면서 가장 바쁘게 움직입니다.
오늘도 IT 엔지니어의 길을 걷는다
신입 사원은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립니다만, 중급 엔지니어는 앞만 보고 달릴 수 없는 순간이 있습니다. 필자도 그런 순간이 있었습니다. 이 길을 계속 걸어가도 되는지 아니면 지금 갈아타야 하는 지를 고민하는 시기입니다. 중급 엔지니어가 고민을 하는 순간은 과거도 현재도 아닌 미래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