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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중 Jan 18. 2021

아이는 라면을 끓일 수 없다.

코로나 시대의 맞벌이 자녀

초등학생인 딸아이가 집에 혼자 있는 날이 많았다. 부모는 출근하고 아이 혼자 원격학습을 하는 맞벌이 부부의 코로나 풍경이다. 처음에 아이 엄마는 아이의 점심을 걱정했다. 아침은 일어나서 함께 먹고 출근하면 되니까 문제가 없는데 아이 혼자 먹을 점심이 문제였다. 아내는 보온 도시락을 샀고 날마다 거기에 밥을 담아 두었다. 혼자 먹는 밥이 무슨 맛이 있겠는가 아이가 밥을 남기는 날이 늘었다. 덩달아 엄마의 걱정도 늘었다.

“애가 밥을 잘 안 먹어서 걱정이네.”

“혼자 먹는 밥이 당연히 질리겠지. 가끔은 라면이라도 끓여 먹으라고 하면 안 될까?”


아내는 뜨악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정신이 있느냐는 막말도 같이 날아왔다. 아이 혼자 가스레인지 쓰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초등학생 때 나 혼자 라면을 끓였는데. 방학 때 세 아이를 돌보기가 버거웠던 엄마는 자주 나를 지척의 외가에 보냈고 외가에서도 할머니가 마실을 가시는 시간에는 '나 홀로 집에'가 되어 신나서 부르스터를 꺼내고 혼자만의 라면 타임을 즐겼다. 할머니는 다른 거 먹지 왜 라면이냐만 가끔 걱정하셨을 뿐, 불을 썼다고 혼나지는 않았다. 내 경험을 대입시키면 안 되는 것일까, 조금 과보호 같았지만 아내를 이길 수는 없었다. 도끼눈의 아내에게 꼬리를 내려야 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인천에서 라면 형제 사건이 터졌다. 원격수업을 하며 집에서 부모 없이 라면을 끓이다 불이 나서 안타까운 일을 겪은 초등학생 형제. 세상은 난리가 났다. 맞벌이 부모는 절대로 아이에게 불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역시 아내는 선견지명이 있다. 그런 일이 우리에게도 충분히 있을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아이들은 라면을 끓일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쫄쫄 굶어서 괴로워도 인스턴트로 때워 애처로워도 적어도 화재보다는 낫지 않은가. 내 어릴 때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 사실은 그때도 지금 생각하면 뭔가 아찔한 순간도 있었겠지, 기억이 다 나지 않는 것뿐.



길고 긴 원격수업의 날들에 보온 도시락에 지겨워진 아이는 가끔 생라면을 먹었다. 그 또한 나의 유년시절이 겹쳐 긍정적이었다. 권하지는 않았지만 별로 제지하지 않았다. 뜻하지 않게 코로나가 왔고 등교를 못 하게 되었고 학교는 다니는 것이고 그렇게 아이는 커 가는 것이다. 어쩔 수 없잖은가, 세상의 모든 맞벌이 부모가 원격수업 때문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저녁을 영양 있고 풍성하게 먹으면 되지, 아침식사를 좀 좋게 차려주면 되지, 점심 한 끼가 세상의 모든 것은 아니잖은가.



아직은 등교가 어려울 수도 있다. 올해도 아이 혼자 두는 날이 있을 것이다. 인천 라면 형제를 보면서 가스레인지 근처에도 못 가게 하고, 절대로 현관문을 열어주지 말고, 선생님과 부모 외에는 아무와도 통화하지 말라는 신신당부로 불안하지만 필수적인 하루를 쌓아간다. 코로나는 지나갈 것이고 아이는 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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