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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중 May 02. 2021

일기 쓰기의 부활을 바라며

강제적 글쓰기가 실력을 키운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들의 일기가 사라졌다. 복잡다단한 사정으로 일기가 사생활 침해 논란에 엮이고 무슨 위원회인가가 인권을 들어 일기검사를 하지 않도록 권고하면서 사실상 일기가 사라졌다. 동시에 성장기 어린이의 글쓰기가 소멸되었다. 완전히 끝났다. 그리고 아이들의 글은 급전직하했고 맞춤법은 쓰레기장에 버려졌다. 한글 파괴가 일상이다. 일기 소멸도 큰 원인이 되었다.


사생활 침해의 어떤 사정인지를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 사정없는 곳은 없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부작용이 있다. 구조 늦게 했다고 해경을 해체하듯이 사생활 침해받은 몇 명의 학생 민원으로 일기가 해체되었다. 많은 아이들이 자의로 즐겁게 스스로를 위해 써오던 일기마저 공중분해되었다. 아이는 시키지 않는 것은 게으른 것 말고는 하지 않는다. 공부를 스스로 좋아서 하는 아이가 몇이나 될까, 일기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쓰기 싫은, 쥐어짜내는, 지어내는 거짓의 일기를 쓰면서 글쓰기가 느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따지고 보면 글쓰기의 본질은 거짓이다. 말을 그대로 글로 만드는 것은 녹음 말고는 불가능하다. 글은 말에 양념을 치고 더해서 만든다. 더하는 것은 대부분 생각이다. 그 잘나신 사고 과정이 글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일기를 없앴으니 누가 일상을 사고하겠는가. 유튜브 시대에 누가 일기를 쓰겠냐만 가만 놔뒀으면 그래도 몇몇은 썼을 것이고 위원회가 권고를 내리지만 않았어도 최소한 일기는 유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없다. 이제 학생의 일상에서 창작은 사라졌다. 오늘 하루에 더해지는 양념은 사라졌다. 밋밋한 일상이 기억에서 지워져 갈 뿐이다. 기록이 없는 기억은 약하다.


딸아이가 어느 날부터인가 빈 공책에 자기만의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뭘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오늘 잘한 일, 좋았던 일, 혼난 일, 장래희망 등 날짜와 주제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결론은 스스로 쓴다는 것이다. 기특했다. 거기에 홀딱 반해 칭찬만 하고 더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아빠는 예전에 일기를 매일 썼단다. 하는 소리만 보태면서


일기를 매일 몇 줄씩 강제로 쓰게 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 개선해야 할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몇십 년을 이어오면서 부작용은 자연스레 개선되고 있었다. 일기의 강제성도 줄어들었고 검사의 융통성도 확대되고 있었다. 지난 일이지만 검사를 하지 말라는 권고는 진실로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일기가 사라지면서 독후감 대회가 사라지면서 세상에 이제 학생들의 글이 남지 않게 되었다. 허울 좋은 책쓰기 이런 것만 대두되어 소수를 위한 글쓰기만 유지된다. (나 책쓰기로 먹고사는 사람인데.) 국민 대부분을 글에서 멀어지게 했다. 그래도 희한하게 딸아이처럼 스스로 저렇게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저항분자가 있겠지만 과연 몇이나 될까.


일기 쓰기의 부활을 바란다. 일기 쓰기의 방법도 검사 과정도 형식도 내용도 뭐든 좋으니 어쨌든 세상이 SNS만 하라고 하지 말고 일기를 쓰는 것이 좋다는 쪽으로 몰아가기 바란다. 이제 우리 후대에는 난중일기 같은 것은 다시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슬프다. 


반론을 제기할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여전히 일기 쓰지 않냐고? 누가? 과연 몇 명이나? 댁들은 검사 안 하는데 그 일기 쓰고 싶겠어요? 일기 검사는 사생활 침해 맞지 않냐고? 검사 안 한다니까요. 그냥 쓰게만 해달라고. 


강조한다. 아이들은 검사하지 않는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 숙제도 마음대로 못 내는 세상, 일기마저 없는,  이게 무슨 학교인가. 일기도 한 줄 안 쓰는, 자기의 하루도 돌아보지 않는 아이가 무슨 창의성을 가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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