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가을은 온다
---- 9월에 써두었던 글이다.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를 2020년이 어느덧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반년을 넘겨 이제 9월입니다. 그것도 9월 하순, 늦은 추석을 앞두고 있습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학기가 뒤틀려 여름방학을 마치고도 한동안 1학기가 끝나지 않았기에 더더욱 가을이 실감 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이주일 전만 해도 늦더위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 밤에도 지독한 열대야에 시달렸습니다. 온 가족이 전기세를 아끼겠다고 거실에 모여 에어컨 한 대로 불면의 밤을 보낸 게 진짜 겨우 보름 전이 될까 말까인데, 오늘은 새벽에 너무 싸늘해 전기장판을 꺼내야 하나 싶습니다. 그렇게 처절하게 잔인하던 여름이 이토록 허무하게 물러날 줄이야. 정말 9월 초만 해도 태풍이 불어도 여전히 더웠고 교실의 에어컨은 꺼질 시간이 없었거든요. 아이들에게도 열대야에 잠 설치지 말라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을이군요.
이쯤 되니 직장인들의 월급처럼 가을도 계절을 스쳐가지 않을까 우려되며 불안함이 커집니다. 물론 여름에는 한낮 더위가 최고조에 이르는 시간에 마스크 쓰기가 너무 고역이라 빨리 이 여름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는데 강렬한 늦여름을 보내자마자 이제는 곧바로 독감 걱정입니다.
올해 독감은 여느 때와 다르죠. 독감 자체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독감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가 다른 것이지요. 예년에는 독감이면 그냥 독감인가 보다 하고 약 먹고 쉬면 그뿐, 학교만 안 가면 아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독감에 걸렸다 하면 그게 독감인지 코로나인지 잘 구별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건 정말 엄청난 일이며 무시무시한 현상입니다. 누군가 독감에 걸렸는데, 아니 독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코로나19라면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학생들에게 서둘러 독감 예방 주사를 맞으라고 부지런히 홍보했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 또한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방 주사약을 잘못 보관한 탓에 접종이 잠정 중단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또 접종이 중지되었으니 병원에 헛걸음하지 말라고 부랴부랴 또 문자를 보냈습니다.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가을이라 가을바람 불어오는 나들이에 너무도 좋은 날들입니다. 우리 학생들도 민족 대명절인 추석을 맞아 충효의 정신을 되새기고자 지조와 절개의 상징인 육신사에서 영양가 많은 현장체험학습을 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는데... 8.15 광화문을 비롯한 수도권발 재확산이 퍼지고 다시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처럼 김밥 좀 싸나 싶었는데 역시나 다시 덮고 말았지요. 김밥이 무슨 죄가 있나요.
현장체험의 아쉬움을 달래고자 미술 체험의 날을 만들어 각종 만들기와 미술 활동으로 답답함을 좀 풀어주고자 했지만 그게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가득한 육신사의 새소리에 비할 수나 있겠습니까. 입이 댓 발로 튀어나와서도 그래도 마스크 걸이나 거울 만들기, 점토 공예, 문화제 모형 만들기 등에 재미를 붙여주니 그저 부족한 담임은 고마울 따름입니다. 무엇으로도 우리들의 가을 나들이를 대신할 수 없겠지만,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지면 육신사나 도동서원 등 우리 고장 달성군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가족들과 함께 찾아보기를 바란다고 알림장에 적어 주며 아쉬움을 달랠 뿐입니다.
그래도 방역에 최선을 다한 ‘모두들 덕분에’의 덕분에 우리는 주 3회 정도 등교를 안전하게 유지하여 학교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작년 겨울에 와서 가을이 되도록 사계절을 꽉꽉 채워 우리를 괴롭히는 지긋지긋한 바이러스가 소멸되길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손 씻고 마스크 쓰고 거리 두기를 지킵니다.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하는 와중에 오히려 가장 제대로 본질적인 교육활동을 충실히 한다고 느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