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국 출산기 7

대망의 그날 2, 식욕이 통증을 이기다.

by 링고빙고 LingoBingo

분만실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무통주사였다.

너무 아파 무통 주사(epidural)을 맞고 싶다고 말했더니, 미드와이프는 무통주사를 맞으면 그 이후로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고 했다.

영국에서는 에피듀럴을 투여하면 의식 소실에 대비한 안전 문제 때문에 금식이 원칙이라서, 물이나 얼음 정도만 허용된다.

미역국 이후 진통 때문에 아무것도 못 먹은 상태라, 진통을 하는 와중에도 배가 고팠다.
뭔가 먹으면 힘이나서 진통을 견디기 쉽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에 무통주사를 포기했다.

대신 선택할 수 있었던 건 laughing gas였다.
통증이 올 때 호흡구를 입과 코에 대고 숨을 들이마시면 약간 몽롱해지면서 통증에 필터를 씌운 느낌이다.


진통은 꾸준히 강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배고픔이 완전히 사라졌다.
입을 벌리고 호흡을 반복하다 보니 목이 바짝 말라 물만 겨우 마실 수 있었다.

'미련하게 먹을 생각 때문에 무통을 포기했나' 싶은 억울함도 들었지만, 그 당시에는 배가 진짜로 고팠고 진통은 이 모든 감정을 잊게 만들 만큼 강렬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덤프트럭이 배를 깔고 지나가는 듯한 고통”을 겪었다고들 하지만, 나는 모든 통증이 허리로 왔다.

미드와이프는 내 척추와 아기의 척추가 일직선으로 겹쳐져 있어서 그렇다고 설명해주었다.
허리가 너무 아파 레고 인간처럼 상반신과 하반신이 "똑"하고 분리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는데, 아기는 모니터에서 여전히 아주 해피하다고 했다.


점심 무렵 병원에 도착했지만, 진통을 버티고 버티다 보니 어느새 밤 9시가 훌쩍 지나 있었다.

미드와이프가 내진을 한 후 자궁문이 다 열렸으니 힘을 줘야 한다고 했다.

있는 힘껏 힘을 주었지만 진통이 너무 길어 체력이 떨어지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미드와이프들이 상의 끝에 산부인과 의사(Obstetrician)가 들어왔다.

회음부를 조금 절개한 뒤, 겸자 (forceps)를 사용해 아기를 꺼내겠다고 자세히 설명했다.

영국에서는 vacuum(흡입)이나 forceps 같은 보조 분만이 비교적 흔히 이뤄지며, 상황이 빨리 진행될 때 안전성을 위해 선택되곤 한다.

나는 아기의 머리가 충분히 내려오지 않아 겸자를 사용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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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꽤 빠르게 진행되었고 생각보다 수월하게 아기가 나왔다. 밤 11시 38분.

아기가 나오는 순간, 강력했던 통증은 연기처럼 완전히 사라졌다.

의사 선생님은 태반까지 정리해주었고, 옆에 있던 남편이 탯줄을 잘랐다.
아기는 미드와이프가 데려가 아프가(APGAR) 검사와 기본 처치를 했다. 점수는 9점.

울음소리가 들리는 순간,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는 실감이 났다.
아기가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신기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쭈굴쭈굴하고 빨개서 귀엽다는 감정보다는 작은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겸자 때문에 이마에 자국이 있었지만 며칠이면 사라질 거라고 했다.


하루 종일 이어진 진통으로 땀을 비 오듯 흘렸고, 출산 후에는 온몸이 축 처진 상태였다.

분만이 끝나자마자 미드와이프가 “가능하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라”고 권했다.

위생 때문이기도 하지만, 따뜻한 물이 출산 직후의 긴장을 풀어주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분만실 안에 딸린 작은 화장실로 걸어 들어가 아주 따뜻한 샤워를 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미드와이프가 영국식 홍차와 따끈함이 살짝 남아 있는 토스트와 버터를 준비해주었다.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 못했지만, 그 순간에는 배가 거의 고프지 않았다.
그래도 출산 직후 체력을 회복하려면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토스트에 버터를 얇게 발라 홍차와 함께 천천히 씹어 삼켰다.

버터 토스트와 홍차라니—참 영국다운 산후 첫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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