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국 출산기 9

1일실을 쓰다!

by 링고빙고 LingoBingo

나의 아기는 잠을 정말 잘 자는 편이라 병실에서도 거의 울지 않고 평화롭게 누워 있었다.

문제는… 우리 아기가 아니라, 다른 아기들이었다.
잘 자고 있는데 옆에서 누가 울면 따라 울다가 깨는 것이 반복되었다.
바로 앞 침대에 있던 엄마는 새벽 내내 해외에 있는 친정과 통화를 하는지 꽤 크게 떠들었다.

회음부 절개로 몸도 아픈데, 잠은 모자라지, 유축은 생각보다 잘 안되지, 아기는 깨지, 앞 침대의 전화통화는 끊기지 않지…

하루 만에 몸과 정신이 동시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미드와이프가 “밤에 잘 지냈나요?”라고 묻는 순간, 웬 낯선 감정선이 예고 없이 올라오더니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호르몬이 날뛰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상태를 본 미드와이프는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바로 1인실로 옮겨주었다.


내가 있던 산부인과 병동의 리셉션에는 분유 회사들이 홍보용으로 가져다 놓은 액상 분유 샘플들이 있었다. (병원마다 다를 수 있다)

1인실에서 걸어가면 20걸음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라 아기를 품에 안고 천천히 걸어가 샘플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멀리서 미드와이프가 빠르게 다가오더니 거의 반사적으로 말했다.

“아기는 절대로 안고 걸어 다니면 안 돼요!”

혹시 내가 미끄러지거나 누군가 갑자기 와서 부딪히면 아기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라 아차 싶었고, 그 이후로는 아기를 어디에 데리고 갈 때든 무조건 바퀴 달린 아기 침대에 태우고 이동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더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인실에서는 이틀 정도 지내면서 조금씩 모유수유에도 자신감이 생겼고 몸도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아기가 배부르게 먹고 잠드는 모습을 보니 ‘그래, 이제 집에 가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원을 결정하면 소아과 의사가 와서 아기의 상태를 꼼꼼히 점검한다.

이상이 없다는 확인이 떨어지면 아기를 카시트에 태워 산부인과 리셉션 앞으로 이동하는데, 그곳에서 아기가 카시트에 제대로 태워져 있는지 확인 절차를 거친다.

말로만 그렇겠지라고 싶었는데, 미드와의프가 정말 리셉션 파티션 밖으로 나와서 직접 확인을 한다.

그렇게 눈물겨운 모유수유를 성공시켜 퇴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돈을 안 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서야 영국의 출산 비용이 무료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임신 전 5년 동안 병원에 갈 일이 거의 없어서 잊고 있었다. (참고로 임신 기간 중 및 출산 후 일년 동안은 치과가 무료이다!)

잠깐은 ‘무료라서 무통주사를 적극적으로 권하지 않았던 건가?’ 하는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집으로 데려온 아기는 어느덧 키가 나보다 커진 12살이 되었고, 지금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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