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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교생 Jun 23. 2022

드디어 대학원으로

2년의 고민, 그리고 다시 자대 대학원으로.

대학원 진학 두고서 고민을 한 지만 벌써 햇수로 2년이 지났다. 교직 첫해 때부터 대학원 진학은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따지고 보면 사립에서 공립으로의 이직도 향후 커리어에 대한 고민의 연장이었다. 교직 첫 해, 대학원 진학을 생각 중이란 말을 했을 때, 모교의 한 교수님은 내게 친절히 일러주셨다.


선생님, 왜 굳이 대학원을 가시려고 하는 거예요?
도대체 대학원을 나와서 무엇을 하시려고요?


나는'왜 대학원을 가려고 하냐'는 질문에 선 답하지 못했다. 내가 학생들에게 '너희가 공부해야 할 이유'를 읊는 것과는 반대로, '내가 공부해야 할 이유'는 명확히 말하기가 어려웠다. 늦은 반성이건대, 아마도 남들이 가니까 가야 한다는 마음 반에, 그저 어딘가 '있어 보이는' 타이틀 하나를 따러 간다는 건방진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처음엔 교원대 파견을 생각했었다. 학부 때부터 그랬고 그것이 퍽이나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대학원 고민이 있을 때마다 나는 모교 교수님들의 여러 연구실을 드나들었다. 대학의 일이니 교수와 논의하는 게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매번 교수님들은 나의 충동에 제동을 걸곤 하셨다. 단 한 번도 속시원히 '그래 대학원 가거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2년 차 때, 사립에서는 교원대 파견을 사실상 허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낙심할 무렵이었다. 인근에서 차로 1시간 이내의 거리에 있는 지거국 대학원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관심 있어하는 분야가 국어학이었기에 언어학 쪽으로 최근 연구성과가 꾸준히 나오는 교수에게 컨택을 시도하기도 했었다. 다행히 교과교육 전공은 일반대학원임에도 현장교사 중심으로 재학 중이었고 학교를 근무하며 다니기에 충분한 스케줄로 수업이 잡혀있었다.


그러던 중, 공립으로 이동하며 진학을 염두하던 대학과 물리적으로 상당히 먼 곳에 발령받게 되면서 이 조차 쉽지 않게 되었다. 진학하고자 했던 대학원은 광역시 소재였고 나의 근무지는 도지역이었기에 이동에만 두 시간이 넘었다. 두 시간이나 걸린다면 진학할 수 없다. 평일 수업을 듣기도 벅찼기 때문이다.


홀로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결국, 대학원 진학을 두고 내게는 철학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철학까지의 거창한 말은 아니더라도 나름의 기준은 필요했다. 대학원은 학부와 달리 내가 공부를 한다고 하더라도 주변의 지지를 받기가 어려운 일이다. 공부에도 '가성비'가 있다면 이공계열이나 전문대학원이 아닌 이상, 그건 어디까지나 학부까지에 해당되는 일일 것이다. '가성비'가 없는 일을 하려면 '가심비'라도 있어야 한다. 나는 무엇을 바라서 더 공부를 하고자 하는 것이었을까.


이런 까닭에, 오랜 고민을 거치며 아래 정도의 생각을 간추릴 수 있었다.


1.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 '학사'로서 멈춘다면 어딘가 불안하다. 학위를 더 진행한다고 한들, 불안함은 스스로 채우고 해결해야 할 문제이겠으나, 최소한 '제대로 채우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2. 아주 오래전부터 막연히 궁금해하고 동경하던 '연구'가 무엇인지 알고싶다. 거창한 연구를 할 능력이 있는지는 아직 해보지를 않아서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해서 궁금하다. 안 하고 참는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


내가 학위를 석사에서 멈출지, 박사까지 할 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의욕이 앞선다고 모든 일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수없는 수험생활 중에 온몸으로 배웠다. 가장 원하는 것은 '제대로 연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가까운 곳에서 나에 대하여 잘 아는 분 밑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고 손에 쥔 것이 늘어날수록 열정만으로 먼 곳까지 수학하기에는 부담이 커졌다.


생각이 여물고 연차가 쌓일수록 모교의 연구실을 드나들 이런 고민을 털어놓을 때마다 교수님들은 점차 여러 가지 옵션을 제시해주셨다. 그리고 내심 자대로의 진학도 권유하셨었다. 마땅한 대학원생이 없어서 연구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한탄도 간혹 들을 수 있었다. 비수도권 대학원이 겪는 현실 문제는 교수에게나 학생에게나 녹록지 않다. 문득, 학부시절 그 똑똑하던 선배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궁금해졌다. SNS로 찾아본 그들은 대부분 교직에 들어서고 나서 학업을 멈췄다. 그리고 평범한 아버지이자 어머니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여러 조건을 따지기만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 그렇게 살아가지 않을까. 그 삶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와는 다른 방법으로도 내 삶을 빛내보고 싶었다. 지방민이 자기 지역 대학에 진학하여 자기 지역에서 교사를 하고, 그 지역에서 연구를 이어나가 전국을 한 번 울려보고 싶다는 욕심도 끝끝내 버리질 못했다.


이런 고민을 수없이 하다가 지난주 무렵, 생각이 제법 선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학교 홈페이지를 뒤적였다. 일반대학원 후기 추가모집 기한이 곧 시작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나는 서류를 꾸몄고, 우편으로 접수를 마쳤다. 갈지 말 지를 고민하기가 어려웠지 한 번 결심을 하고나니 연구계획서는 일사천리로 써낼 수 있었다. 수없이 오랫동안 고민했던 주제들이었기 때문이리라.


많은 고민과 힘든 결심 끝에 대학원으로 첫 발을 내딛는다.

과연 나는 어떤 연구자가 될까.

아니, '연구'다운 '연구'를 해낼 수는 있을까.


고민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오랜 시간 느꼈으니, 부딪쳐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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