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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온도, ‘너, 보는 눈 있잖아.’

1장 「출세주의를 지나 소신으로」에 대한 첫 에피소드 공개

by 린결
_『존재의 온도』의 첫 번째 에피소드를 열기에 앞서, 책이 품은 온도를 영상으로 먼저 건네드립니다_






eye-6926034_1280.jpg Image by Victoria from Pixabay



1장. ‘출세주의’를 지나 ‘소신’으로, 그 첫 에피소드

세상의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기준으로 길을 세우는 연습




너, 보는 눈 있잖아

안목은 스펙보다 먼저다




눈은 언제나 먼저 알아챈다.

말보다 빠르게, 머리보다 정직하게.


하지만 그 눈의 감각을
누구나 곧바로 이해하는 건 아니다.
논리로만 세상을 재단하는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결은 아무 말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난, 우연히 알게 됐다.

그 눈빛에 담긴 따스함과 깊이,

논리만 좇는 세계에선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온기와 통찰.


흔들리는 날마다 말없이
내 등을 지켜준 그 따뜻한 기척,
그걸 조용히 품고 있던 오빠를 통해.


논리보다 감각이 먼저 반응하던 사람,
눈치채기 어려운 내 기색에도
말없이 컵을 건네거나,
질문 대신 조용히 곁을 내어주던 존재.



몇 해 전, 그 오빠를 만나러 오빠 집에 갔다.

손에는 따끈한 겉바속촉 달달한 핫도그를 들고서.


그건 단순한 간식이 아니었다.


이제 오빠만의 집이 아닌,

오빠와 언니, 그리고 조카들이 함께 있는 공간.

그 집의 조용한 평화를 위한

작은 협정서 같은 것이었다.



현관문을 연 건 조카였다.


오빠의 감각을 타고난 아이.
그 감각을 자기 기준으로 다듬어가는 아이.


“헬로, 고모!”

그 아이가 쏜살같이 거실로 뛰어들었다.


거실 안 풍경엔 낯익은 온기가 흘렀다.

게임을 끄라며 조카를 다그치는 언니,
끝까지 유튜버가 될 거라며 맞서는 조카.


그 기세, 말보다 앞서 흐르던 공기.

그건 오래된 가족극의 익숙한 장면 같았다.



그때 문득 <미생>의 장그래가 떠올랐다.

스펙 없이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사람.


그리고 한 사람 더,

번역하며 오래 머물던 그 아이.

에놀라 홈즈.


셜록의 동생이지만 그 이름에 갇히지 않던 아이.

금박 입힌 틀 속 억압이 조건이던 빅토리아 시대,

자기만의 리듬을 지켜낸 아이.


말에 앞서 소신이 흐르던

그 둘의 얼굴 위로 조카가 겹쳤다.



조카는 그런 아이였다.

“너, 보는 눈 있잖아.”


어느 날 귓가에 꽂힌, 광고 속 그 한마디처럼—

다른 이가 칭찬을 기준 삼을 때

스스로 동기 부여할 줄 알던 아이.

자기 기준으로 세상을 감지할 줄 알던 아이.

모두가 논리로만 해석할 때 결을 읽던 아이.


상대적 충족에 흔들리지 않고,
‘내가 무엇을 보는가’에 집중할 줄 알던 아이.


스펙보다 먼저 필요한 건,

어쩌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먼저 감지하는 그런 눈이었다.


그리고 소신이란,

바로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이 지켜낸 결이었다.



많은 이가 누군가의 시선을 안심이라 믿는다.

그러다 뒤늦게 박수보다 먼저인 숨결을 깨닫는다.


하지만 조카는 달랐다.


누구의 기준도 아닌 자기 눈으로

어른들이 놓치는 걸 스스로 감지했다.


지금도 문득,

그런 조카를 생각할 때—

그 온도의 숨결이 어디쯤 피어나 머물고 있을지

그걸 조용히 기다리던

내 마음의 시간이 떠오른다.


그리고 지금도 조카는

훌쩍 커버린 모습 뒤로

여전히 소신의 결을

하루씩 살아내고 있다.



그런 조카를 위해

내 작은 바람을 건네본다.


모두가 지나치는 자리에서

혼자 멈춰 묻는 사람이 되기를.


박수보다 숨결, 정답보다 온도.


그 결을, 그 온도를
어디서든 잃지 않기를.



— 『존재의 온도: 혼자여도 괜찮은 나』 1장, 첫 에피소드 中에서







이 글은 『존재의 온도: 혼자여도 괜찮은 나』 첫 장

「출세주의를 지나 소신으로」의 첫 번째 꼭지이다.

책에서 건네온 그 한 부분을

여기서 조심스레 꺼내어 나누고자 한다.


세상이 정한 ‘성공 방정식’에 맞추며 살던 어느 날,
나는 문득 그 기준 속에서 점점 작아지는 나를 보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모두가 오르는 길’에서 살짝 벗어나
내 안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된 순간의 기록이다.


누군가에겐 ‘다 내려놓고 떠난 이야기’로 보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처음으로 나에게 돌아온 순간’이었다.







mountain-climbing-4767088_1280.jpg Image by Kanenori from Pixabay




이 이야기를 쓸 때, 마음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던 순간이 있다.
“이제는 나를 잃지 않겠다고.”


오랫동안 타인의 기준 안에서 살아오며

‘성과’, ‘결과’, ‘속도’로 나를 증명하려 들던 시절.


하지만 그런 날들이 쌓일수록

나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안에서 이런 물음이 일어났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지?”


돌아보면, 그 질문이 『존재의 온도』 1장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출세는 높이 올라가는 일이 아니라,
제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천천히 내려앉는 일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난,
‘경쟁의 언어’가 아니라 ‘소신의 언어’로

나 자신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 글은 성공을 부정하려는 기록이 아니다.

그보단, 진짜 나로 살아가기 위해

‘성공’이라는 단어의 온도를

조금 바꿔 놓은 기록에 가깝다.


‘나만의 온도’, ‘나만의 기준’으로 서 있을 때,
비로소 혼자여도 괜찮다는 마음이 자란다는 걸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으로 서는 순간—
‘혼자여도 괜찮은 나’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약 10개의 에피소드 중 첫 시작점에 놓인 이번 첫 에피소드를 디딤돌 삼아,
1장 「출세주의를 지나 소신으로」가 품은 주제를
그 에피소드가 건축물처럼 층층이 확장되며 드러내는 여정을 따라

세 갈래의 기록으로 천천히 들여다보려 한다.



sea-2563389_1280.jpg Image by StockSnap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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