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출세주의를 지나 소신으로」를 쓰며 — 내 마음이 머문 자리 1
혼자라는 감각을 존재의 중심으로 바꾸는 감성 인문 에세이 『존재의 온도』 출간
우리는 너무 오래,
남이 써준 대본을 외워 오기만 했다.
대본 속 세상은 늘 속삭인다.
더 많이, 더 높이, 더 빨리.
하지만 그렇게
출세의 질서에 나를 정렬해 가며,
하루에도 몇 번씩,
남의 속도에 나를 맞추는 사이,
좋다고 말했지만,
늘 더 좋은 것이 곁에 남는다.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비어 있는 마음은 커진다.
칭찬은 잠깐이고,
비교는 오래 남는다.
나는 나일 수 없고, 늘 누군가의 그림자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잃어간다.
그리고 그제야
그 대본엔 출세, 체면, 학벌, 서열, 소유 같은—
남들이 하니 나도 따랐던 상대적 충족이란 법칙이
슬며시 작동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
— 『존재의 온도: 혼자여도 괜찮은 나』 1장, 첫 에피소드에 대한 소회 1
지난 글에선,
‘너, 보는 눈 있잖아’라는 책 속 첫 에피소드를 살포시 나누며
소신이란 결국 자신의 결을 지켜내는 감각임을 돌아보았다.
그 짧았던 에피소드 하나가, 생각보다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누군가의 말 한 줄이 나의 결을 일깨우고,
그 일깨움이 삶의 방향을 바꿔놓는 순간이 있다는 것.
아마 그건,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할 터다.
각 이야기가 서로의 벽돌이 되어,
후반으로 갈수록 하나의 사유의 건축물처럼 완성되어 간 『존재의 온도』의 장들.
어떤 장은 쓰다 보면 스스로 방향을 잡아갔지만,
오히려 내 안의 과거를 천천히 건져 올려야만 형태가 잡히던 장들.
그중에서도 유독 ‘시작’이 오래 걸렸던 것이 바로 이 1장이었다.
위의 소회는, 그 마음이 깃든 『존재의 온도』 첫 장
「출세주의를 지나 소신으로」를 세 갈래로 바라본 기록 중,
그 첫 번째 기록이다.
지금 와서 그 기록을 다시 꺼내보면,
그 문장들이 태어나던 당시 내 마음속에 깃들어 있던 사유가 떠오른다.
"남이 써준 대본을 따라 말하던 날들,
당시 내 안의 목소리는 언제나 가장 뒷자리에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쉽게 옅어지지 않던 사유,
지금도 그 문장을 떠올릴 때면 내 마음에 묘한 쓸쓸함을 심어놓던 사유.
이 깨달음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가슴속에 오래 묵혀 있던 질문들이
뒤늦게 표면 위로 떠오르며 나를 천천히 흔들어놓은 것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왔을까’라는 회한과 함께 찾아온 그 순간을 지나며
비로소 나는 내 안의 언어를 조금씩 다시 듣기 시작했다.
…
그렇게 나를 돌아보게 된 사유의 흐름 속에서 아주 미세한 변화들이 나타났다.
어떤 순간엔, 남의 목소리에 가려졌던 내 말이
아주 희미하게나마 들려오는 듯했다.
그리고 어디선가부터 조금씩,
내 언어가 다시 나를 향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비록 느리더라도,
내 언어로 내 삶을 써 내려가며 살아갈 힘을 얻어가게 됐다.
돌아보면 그 미세한 회복의 움직임들이
바로 이 장의 시작을 이루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느린 회복의 과정은 아직도 완성형이 아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해서 흔들리고, 수정되고,
때로는 지워졌다 다시 쓰이는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내가 살아 있다는 어떤 조용한 증거일 테니,
이제는 그 또한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지도.
첫 에피소드가 열어젖힌 사유의 문턱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다 보면,
‘2️⃣ 소유의 법칙을 벗고 존재로 돌아가기’라는 두 번째 기록이 자연스레 모습을 드러낸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그 두 번째 갈래에 남겨진 발자국들을 따라,
내가 발견했던 것들, 오래 묵혀져 있던 물음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조금씩 켜져 나갔던 시선들을
차분히 펼쳐 보려 한다.
그 여정은, ‘가짐’의 세계가 요구하는 속도와 기준을 하나씩 내려놓으며
내가 어떤 상태일 때 비로소 나라는 존재가 온전히 드러나는지를
조심스럽게 더듬어가던 과정이었지 싶다.
무엇이 나를 가리며, 무엇이 나를 드러내는지.
어떤 욕망은 나를 단단하게 하고, 어떤 소유는 나를 흐릿하게 만드는지.
그 질문들을 통과해가며,
서서히 ‘존재의 결’이라는 더 깊은 자리로 돌아가던 그 과정.
다음엔 그 과정을 조용히 살피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혼자라는 감각을 존재의 중심으로 바꾸는 감성 인문 에세이, 『존재의 온도』
빠른 속도와 비교의 시대, 혼자라는 감각을 새롭게 해석하는 조용한 안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