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출세주의를 지나 소신으로」를 쓰며 — 내 마음이 머문 자리 2
…
에리히 프롬은 전했다.
‘소유의 삶은 마음의 공허를 낳고,
존재의 삶이야말로 진정한 충만함’이라고.
쌓을수록 덜 느끼고,
가질수록 덜 행복해지는 이상한 법칙—
우리는 이미 그 안에 살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
그 대본을 접고 조금씩 배워가야 할지도 모른다.
단단한 혼자의 시간 속에서
나를 다시 써 내려가야 하는 법을.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 안의 온도로 따뜻해지는 법을.
그렇게 외로움이 아닌 충만함으로
혼자의 품격을 다시 써 내려가다 보면,
체면이라는 허상,
비교로 둘러싸인 껍질.
소리 없이 그 소유를 벗겨낸 자리에—
비로소 단단한 존재의 결이 드러날지도 모른다.
…
— 『존재의 온도: 혼자여도 괜찮은 나』 1장, 첫 에피소드에 대한 소회 2
지난 글 『존재의 온도』 1장,
「출세주의를 지나 소신으로」에 대한 첫 번째 소회에서는,
타인의 질서와 기준 속에서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다
조금씩 나를 잃어가던 시간을 돌아보았다.
이번 글은 그 연장선에 있다.
다만 그 시선은 바깥이 아니라,
‘가짐’이라는 내부의 구조로 향한다.
그리고 그 길의 이름은,
‘소유의 법칙을 벗고 존재로 돌아가기’이다.
위의 소회는 『존재의 온도』 첫 장,
「출세주의를 지나 소신으로」를
세 갈래로 나누어 바라본 기록 중 두 번째 사유의 자리다.
당시 내 마음에 오래 머물러 있던 단어는
‘소유’였다.
정확히 말하면,
소유가 약속한다고 믿어왔던 안정과
그 끝에서 마주하게 된 공허였다.
우리는 종종 ‘가지는 것’으로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더 많은 성취,
더 높은 자리,
더 큰 무언가,
혹은
조금 더 확실해 보이는 무언가로.
채웠다고 생각했는데,
채워질수록 더 또렷해지는 빈자리처럼.
하지만 손에 쥔 것이 늘어날수록
이상하게도 마음 한켠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공백이 남는다.
그런 이야기들이
더 이상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을 때,
어느새 내 안에서도
질문은 다른 방향을 향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더 가지려는가?”
“그리고 그 끝에서,
내 손에—
혹은 내 마음에—
과연 무엇이 남게 될 것인가.”
이 질문은
어느 날 문득 떠오른 생각이 아니라,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던 의문이었다.
이번 기록은
바로 그 질문에서부터
조용히 출발한다.
『존재의 온도』의 첫 장,
「출세주의를 지나 소신으로」를
세 갈래로 읽어가는 두 번째 기록이기도 하다.
이 글은
‘소유의 삶’이 만들어낸 공허를
그대로 통과해 보려는 시도이며,
그 이후에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존재의 삶’이라는 다른 결을
조심스럽게 더듬어보는 과정이다.
아직 답을 내리기보다는,
다만 묻고,
머물고,
조금 늦게 걸어가 보기 위해.
이어질 글에서는
이 장의 세 번째 기록,
비교 없는 충만함, 나만의 기준으로 사는 삶으로
이 사유를 조금 더 걸어가 보려 한다.
소유와 성취,
비교와 경쟁이라는
오래 익숙했던 질서에서
한 걸음 물러선 자리에서
내게 끝내 남은 질문은 이것이었다.
'나는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고 싶은가',
그리고 '그 기준은
얼마나 나의 것이었는가'.
그 기록에서는
타인의 속도와 시선에서 벗어난 자리에서
나만의 기준을 세운다는 일이
삶의 온도를 어떻게 바꾸는지,
비교하지 않기에
오히려 더 충만해지는 삶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이미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내보낸
『존재의 온도』 속 문장들에
다시 머물러 보며,
그 사유의 결을
조심스럽게 되짚어 보고 싶다.
혼자라는 감각을 존재의 중심으로 바꾸는 감성 인문 에세이, 『존재의 온도』
빠른 속도와 비교의 시대, 혼자라는 감각을 새롭게 해석하는 조용한 안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