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를 가르친다는 것은
4월 1일의 만우절은 소소한 장난으로 재미 삼아 이야기하고 지나갈 수 있는 날이지만 4월 3일은 그렇지 못하다. 형체도 없는 이념을 명분삼아 양극단으로 사람들을 내몰고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으로 규정했던 시기에 일어난 비참한 일을 아이들에게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집계된 사망자만 10,249명이고 그중 10세 이하 어린이가 679명이었다는 사실을 만 9세 아이의 수준에 맞춰 전하는 일은 어렵다. 이제 큰 수 덧셈을 할 줄 알게 된 아이에게는 너무나 큰 죽음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제주에서 일어난 잔인한 일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는 일은 외면할 수 없는 나의 몫일 테지.
기후위기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요즘 맞이하는 4월 5일은 나들이를 위한 날이 아니라 나무 한 그루의 소중함에 대해 꼭 알고 지나가야 하는 날이 되었다. 대기오염이 일상이 되고 물에는 플라스틱이 둥둥 떠다니는 세상을 과거에는 ‘디스토피아’라 불렀을 텐데 지금보다 더한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감도 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내일을 위해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어른인 나는 가르쳐야겠지.
'국민 안전의 날'이라는 웃지 못할 이름이 붙은 4월 16일은 2014년에 발생한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있었던 날이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는 방송사를 통해 아이들이 생매장당하는 순간이 생중계되며 많은 사람들에게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겼다.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4월이 되면 배가 서서히 가라앉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른다. 바다로 간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대통령은 파면되었다. 눈을 감는 순간이 두렵지 않은 아이들에게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함께 슬퍼해야 하는 일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기에 함께 추모공간을 찾고 관련 작품을 보며 노란 리본의 의미를 복기한다. 어른의 삶을 맞이하지도 못한 고등학생들이 평생 눈을 뜰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밝고 고운 노란빛의 리본을 앞에 두고도 아이들에게 슬픔을 가르치게 만든다. 아이들은 가장 예쁜 노란색으로 꽃피는 4월에 있었던 슬픈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이 슬픔을 잊지 말고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는 함께 슬퍼하고 기억해야 한다고 몇 번이고 아이들에게 되뇐다.
박근혜 씨의 탄핵만을 경험한 아이들에게 이승만 씨의 하야가 있었던 419는 꼭 설명해야 하는 날이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용기 있게 희생을 선택했는지 알아야 성인이 되었을 때 주저 없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테니까. 타락해 보이는 사회가 그나마 지탱되고 있는 이유는 무수히 많은 용기 있는 자들이 어깨를 맞대고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
사지가 멀쩡한 아이들에게 연대를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장애인의 날인 4월 20일을 빠뜨려서는 안 된다. 사회의 공공시설이 절대다수를 위해서만 만들어진다면 불가피하게 소수의 삶으로 떠밀리게 되는 순간 너의 세상은 어떻게 되겠느냐고. 아이들에게 소수가 누려야 할 권리는 무시되어도 좋은 것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효율만을 추구하는 사회와 상생을 통한 성장을 중요시 여기는 사회에 대한 고민을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할 수 있도록 말이다.
불필요했던 죽음과 희생을 가르쳐야 하는 4월은 정말이지 너무 바쁜 달이다. 가정의 달이라고 하는 5월에 가족과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추모하는 달이 4월이 되었다는 사실에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