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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은 Feb 26. 2022

엄마가 되기 전에 차부터 사는 게 어때?

2009

임산부로 살아가기


임산부가 버스를 타도 자리양보는 받지 못하던 여름이었다. 기름을 쓰며 차를 운전하는 것이나 차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쓰는 것 모두 싫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차 없으면 애 키우기 어렵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국제적으로도 대중교통 수준이 상위권에 해당하는 서울 한복판에 살고 있는데 말이다. 한 대는 기본이고 많으면 서너 대까지 두고 사는 사람들은 차가 없으면 많은 것이 힘들어질 테니 출산 전에 차부터 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놈의 차.

작게는 기천만원부터 많게는 억대의 차를 개인이 소유하는 비용과 주차 공간, 도로 위에서 소모되는 자원과 시간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냥 신생아를 데리고 나온 부모도 이용하기 편한 대중교통 시스템을 만들 수 있게 건의하고 기다리면 되는 거 아닌가.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나의 이런 이야기는 주변의 비웃음을 샀고, 택시 탈 돈을 모아서 어서 차부터 사라는 이야기를 예전보다 더 많이 듣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가 되었다.


어느 날 밤, 양수가 터져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남편은 아이가 태어난 후 다시 회사로 가야 했고, 나는 병원에서 며칠 있다가 혼자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과거의 나는 굉장한 살림 중독이었기 때문에 산후조리원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고 집에서 산후조리를 시작했다. 병원을 갈 때마다 택시를 이용했고, 아이가 좀 큰 다음부터는 유모차에 태워 저상버스를 타고 외출했다.

차가 없어도 살만한 세상이라 생각해서 왜 다른 사람들이 차를 사라고 난리를 쳤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대중교통 서비스가 부족하다 싶으면 민원을 넣으며 외출을 했다. 나를 힘들게 한 것은 자차가 없는 상황이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들이었다.
  

아기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네? 헐. 미친 엄마 아냐? '저 세금 냈는데요? 심지어 노약자 그림도 그려져 있는데 타면 미친 거예요?'


완전 개매너네. 어떻게 유모차를 끌고 버스를 타? '서울시에서 저상버스 만들어줘서 타는 거예요.'


요즘 엄마들은 아까운 줄 몰라. 유모차에 무슨 돈을 저렇게 써? 백만 원짜리 유모차 사지 말고 차라리 차를 사지. '제가 쓰는 유모차는 사륜구동이 되는 캐나다산 유모차고 백삼십만 원이에요. 차는 돈이 없어서 못 사는데, 이천만 원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아니 어떻게 이렇게 어린 아기를 데리고 나와? 집에 있어야지! '병원에 예방접종 가는 거예요. 정 걱정되시면 주소 알려드릴 테니까 의사 좀 불러주시겠어요?'


뒤에서 이야기하면 다가가서 다시 묻고 친절하게 답까지 해주고, 조언을 구하면서 아이와 함께 외출을 했다. 참고 사는 성향은 아니라서 그때그때 쌓인 스트레스를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대거리하며 풀었다.


차가 있어도 약자로 하향 평준화되는 삶


하지만 차마 입을 뗄 수 없는 순간도 많았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외출할 때마다 겪어야 했던 일이 있었다. 명동의 어느 백화점 가장자리에 있는 엘리베이터 4대 중 휠체어 그림이 그려진 약자 전용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던 중 문이 열렸다. 빈틈없이 꽉 들어찬 엘리베이터 안은 순간 정적이 흘렀다. 조용히 나와 유모차를 번갈아보던 수십 개의 눈알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기다렸지만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차마 닫힘 버튼까지 누를 용기는 나지 않았는지 당시 유행하던 노키아와 블랙베리 자판을 의미 없이 누르며 문이 닫히기를 기다리던 사람들 덩어리는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친구 차를 타고 백화점에 가기도 했었다. 차가 있는 친구나 차가 없는 나나 엘리베이터 앞에서는 평등했다.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기가 이렇게 힘든데, 문화센터, 영유아 제품 매장, 휴식공간, 식당, 갤러리 등 아기와 관련된 수많은 장소들은 모두 고층에 있었다. 심지어 수유실까지도 말이다. 백화점의 수익구조만을 생각한 매장 배치에 대해서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만큼 배려가 귀했던 시절이었다.

타지도 못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종종 상상했다. 아기 엄마들이 함께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사회적 교통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고 변화를 이끌어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 사회라면 처음부터 약자용 엘리베이터가 비어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 아이들이 성인이 될 무렵에는 차가 있어도 차가 없어도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가장 작고 여린 것에 시선이 머무는 사회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누가 양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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