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멜로드라마 Dec 23. 2021

꼭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2021년 아직까지 난 내가 바라던 그것은 못 되었다.

'인간실격'이란 드라마를 인상 깊게 보았다. 특히 여자 주인공 '부정'이가 써 놓았던 유서의 한 문장이 마치 나 자신 같아서 슬펐다.

 '아버지 마흔쯤 무엇이 되어 있을 줄 알았어요'라는 문장. 부정에게 그 무엇은 작가였다. 부정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책 한 권, 혹은 여러 권의 책이 마흔쯤엔  자신의 집 책장에 있으리라 믿었다. 적어도 꿈을 향해 첫 발을 내딛던 스무 살에는 확신했을지도 모른다. 나 또한 그랬었다. 마흔 무렵엔 나도 내가 그 무엇이 돼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마흔이 넘은 오늘의 나는  평범하다.  직업도 있고 결혼하여 엄마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바라던 건 되지 못했다.

 아침이면 두 아이를 깨운다. 아침밥을 차려주고, 황급히 인사를 하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다. 그리곤 설거지와 집안 청소를 한다. 11시까지 집안일이 끝나면 머리를 감는다. 11시 50분쯤 이른 점심을 먹고 출근한다.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에 퇴근하여 집에 오면, 거실 소파에 오후 햇살이 앉아 있다. 자유시간이다.  난 소파에 누워 30분의 짧은 낮잠을 잔다. 5시에 작은 아이가 온다. 검도를 배우는  큰 아이는 6시 30분에야 집에 돌아온다.


짧은 30분의 휴식이 끝난 5시, 작은 아이가 오면 현관문으로 마중을 나가, 꼭 안아준다.

 "오늘 즐거웠어?"

아이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저녁 준비를 한다. 큰 아이가 오면 우리 식구들은 식탁에 앉는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나의 하루는 늘 이런 패턴이다. 매일 똑같은 일은 아니지만, 비슷한 장면과 대화들이 오간다.


 내가 꿈꾸던 그 무엇은  사라져 버린 걸까. 잠시 잊은 걸까. 잘 모르겠다. 그래도 부정을 통해 나의 그 무엇을 다시 꺼내보고 싶어졌다. 나도 글을 쓰고 싶다. 나의 그 무엇도 부정과 같은 거였기에, 부정의 말에 잠시 눈물이 흘렀던 거다.  그렇다고 그 무엇이 못 된 지금이 불행하진 않다. 어느 랩 가사처럼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지도 않다. 그 누굴 원망도 안 한다.  내가 바라던 무엇이 되지 못했지만 지금의 삶도 충분히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모습에 웃고, 남편과도 여전히 온전한 관계다. 가까이에 친한 진구들도 산다. 아직 이른 아침 깨끗한 공기에 설레기도 하고, 무엇보다 사계절이 있다는 것에 안심한다.


 부정과 나의 차이라면 꿈에 대한 자세였을 거다. 부정은 온 맘을 다해 그것을 사랑했고, 나는 그 정도의 사랑은 아니었다.  

 

 무엇이 꼭 되지 못했더라도 나는 충분히 괜찮다. 앞으로 살아갈 무수히 많은 날들이 있다. 분명하진 않지만, 우리에게 꿈을 이루고픈 열정남아 있다면  내일, 혹은 쉰, 예순, 일흔이 넘은 나이에 부정과 나는 그 무엇이 되어있을지 모를 일이다.


  자살을 결심했었던 부정에게 말해주고 싶다. 무엇이 못 되었더라도 괜찮아. 너의 날들 어딘가에 그 무엇이 널 기다리고 있었을 거야. 그리고 넌 무엇이 되기 위해 성실했어. 그거면 됐어.

작가의 이전글 가을 호르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