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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로드라마 Nov 26. 2021

가을 호르몬

바람에, 열이 오른다

 을이 좋다. 바람에 묻어오는 가을 공기 냄새, 뜨거운 햇살에 시든 나뭇잎  냄새를 맡으면 부드러운 기분이 된다. 이렇듯 가을이 가진 것은 내게 위로를 준다.

 가을엔 추워도 옷은 얇게 입는다. 겨울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대한 피부에 닿는 가을의 숨을 느끼기 위해 섬유 간 조직이 치밀한 것보단 엉성한 짜임의 옷을 걸친다.


 어제 바람은 제법 찼다. 그렇지만 좋았다. 빼곡한 아파트만 보이는 대단지에 있어도, 바람을 맞는 순간은 넓은 들판에 있는 기분이다.  지난 토요일, 두 발 자전거를 익힌 작은 아이. 자전거 재미에 푹 빠진 아이는 한 시간이 넘도록 아파트 단지를 돌았고, 엄마인 난 졸졸졸 쫓아다녔다. 그 결과, 난 열이 나고 몸이 쑤신다. 아프다고 하는 내게 남편은 생리 때가 됐다며, 감기가 아닐 수 있단다. 늘 내 몸상태를 자신이 판단하는 버릇이 있다. 내 남편은. 


 아침 7시 10분. 내가 몸을 일으켜야만 하는 시간. 등교 준비를 위해  일어나니 몸이 무겁다. 작은 아이는 어제의 자랑스러운 라이더의 모습은 사라지고 기침을 하며  더 자고 싶단다. 큰아이는 벌써 일어나 레고를 한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내 손과 쉼 없는 말로 아이들은 학교로 어린이집으로 간다. 남편은 내게 생리 전 증후군이라며 타이레놀처럼 창백한 말을 던지고  출근했다. 큰아이는 어찌어찌 학교로 갔다.  분주히 등원 준비를 못해 작은 아이 담임선생님에게 결석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오전 9시 30분, 동네 의원을 갔다. 단순한 감기. 잠이 오는 분홍빛 약과 하얀색 알약을 처방받고 집에 왔다. 작은 아이와 난 각자의 약을 먹고 같은 침대에 누웠다. 어제의 우리는 가을바람을 제대로 만났던 거다.

  난 생리 전 증후군이 아니다. 감기다. 가을이 되면 오르는 호르몬 수치. 바람에 온 몸을 맡기고 잠들고 싶은 것뿐. 봄바람의 따뜻함도 아닌, 가을바람의 건조하고 차가운 느낌은 군더더기가 없다. 그래서 그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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