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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로드라마 Oct 23. 2023

엄마에게 드리고 싶은 것

다음 생이 있으면  좋겠다

 작년 4월에 글 모임에 가입을 했었다. 4주 동안 4편의 글을 썼는데, 한 번은 주제가 '왜 우니?'였다. 무엇에 관해 쓸까 고민하고 있었다.

 나에게  주제를 듣고 떠오르는 사람은 엄마였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내게 어딘지 모르게 슬픈 존재, 눈물의 이미지로 각인된 듯하다.


 엄마는 우울증 초반에 말을 거의 하지 않았었다. 함께 아침을 먹으면서도 대답하는 것도 귀찮아했다. 그 좋아하던 믹스커피도 안 마셨다. 서서히 좋아지셨을 때대답은 간단하게 하고 필요한 말만 하셨다. 그런 엄마의 기분을 좋아지게 하려고 별 이야깃거리도 아닌 것에 열을 쏟아 말을 시켰었다. 또 괜한 질문을 늘어놓아 최대한 말을 시키려고 노력했었다. 특히 아침을 먹으면 곧바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엄마에게 최대한 말을 많이 붙여 보는 게 나의 임무라 여겼었다. 그때 엄마에게 글모임 숙제의 주제를 물어봤었다.  마침 엄마가 아침식사를 하고 거실 창 너머의 어느 곳을 멍하니 바라보고 계셨기에 이 때다 싶었다.


"엄만 언제 울어봤어?"


 팔십 년을 넘게 산 엄마의 인생은 참 가엾은데, 또 어떤 슬픔이 엄마의 가슴에 새겨져 있을까. 어떤 눈물이 엄마를 삼켜 우울의 늪에 빠져있는 걸까.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슬픔이 나에게도 닥칠까 겁이 났다. 나의 마음과 다르게 엄마는 건조하게 대답했다.


 "나? 언제 울긴 언제 울어. 너네 할머니가 나 아들 못 낳는다고 계집이라도 사서 아들 낳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을 때. 그때 많이 울었지."


 엄마는 말을 하면서도 허공을 바라보았다. 감정 하나 없이 남 이야기하듯 슬픔을 이야기하는 엄마. 나도 모르게 엄마의 손을 잡았다.

 가수 진성의 '보릿고개'란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그 시절을 어찌 사셨소?'

 딱 그 가사에 어울리는 삶을 살았다. 우리 엄마는.


 "엄마, 진짜 고생 많았다."


 엄마의 손에 내 손을 얹었다. 엄마가 날 위로할 때면 손등을 쓰다듬어주곤 했었다. 나도 늘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플 땐 손등을 만져주었다. 이번엔 내가 엄마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손가락 마디마디 관절이 휘어서 투박하고 두툼한 엄마 손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온기가 여전했다. 어쩌면 엄마의 우울증이 할머니가 된 후 나타난 건 기적이다. 만약 내가 엄마의 삶처럼 살았다면 난 아마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삼십 대의 삶을 온전히 시골 농사를 짓기 위해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허리를 펼 날이 없었던 여인. 그 중간중간 출산과 육아, 시어머니의 질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힘이 약했던 엄마는 혼자 우는 날이 많았다고 했다. 농사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시집온 스물네 살의 새색시는 곱디고운 말 한마디 듣지 못하며 농사일을 배웠단다.


 엄마는 열네 살부터 스물네 살까지 인주공장('인견'을 엄마 인주라고 말한다)의 여공이었다. 명주실을 베틀로 짜면 인견이 만들어진다. 엄마는 인견을 만들며  십 대를 보냈다. 공장 옆에 달린 숙소에서 십 대의 소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잠을 자고 밥을 먹고 공장에서 일했다. 소녀들은 월급을 타면 고스란히 시골 부모님 댁에 보냈다고 한다. 그 돈으로 동생들 학비나 집안 살림을 꾸렸다고. 엄마는 그렇게 살림에 보탬이 되는 딸이었고 내가 누린 십 대의 것들을 한 번도 누린 적이 없었다. 그 시대의 여자라면 다 그랬다고는 하지만, 내 엄마의 고단했던 십 대가 나는 슬프다.

엄마에게 나의 십 대를 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교복도 입고 학교 끝나고 떡볶이도 사 먹고 친구들이랑 노래방도 가고, 깔깔 거리며 만화책도 읽고. 또 아플 때마다 닭백숙을 끓여주는 엄마도 있었다면. 엄마는 더 눈이 부셨을 텐데. 나에게 엄마 같은 딸이 있다면


 "넌 마음도 고와서 더 예쁘다."

라고 어여쁘다고 하루에도 수십 번 안아주었을 거다.  


-하나님, 다음 생 같은 건 믿지 않지만 엄마를 위해 다음 생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음 생엔 제가 엄마의 엄마가 되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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