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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로드라마 Oct 23. 2023

 믹스커피를 마시느냐, 마시지 않느냐

 오늘의 기분은 괜찮다 안 괜찮다? 그것은 믹스커피가 결정한다

 엄마는 믹스커피 마니아였다. 아침 먹고 한 잔, 손님이 오면 또 한 잔, 수다 떨면서 그렇게도 한 잔. 믹스커피에 알맞은 물의 양과 온도, 어울리는 커피잔까지 믹스커피에 대한 철학적 이해랄까? 아무튼 엄마는 믹스커피 애착론자였다.

엄마는 밀크커피를 좋아한다

 그런 엄마가 우울증이 심각했을 때는 그렇게 좋아하던 믹스커피를 한 입도 대지 않았었다. 참 이상했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좋아하던 커피를 마시지 않을 수 있지. 무언가 매일 먹던 것이나 취향, 반복된 일과를  하루아침에 끊는다는 게 보통의 결단력이 아니고서는 힘들기 때문이다. 


 엄마는 2019년 오른쪽 무릎을 인공관절로 수술하셨다. 늘 시골일을 하시느라 엄마는 무릎수술을 하고도 충분한 재활을 못하셨다. 전처럼 걷는 건 욕심이었다. 그 와중에 엉덩방아까지 찧어 허리뼈까지 골절. 간단한 시술을 했지만 엄마의 허리는 더 아파졌다.  엄마가 드셔야 할 약이 더 추가돼도 엄마의 관절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고, 의지도 사라진 듯 보였다. 엄마는 그렇게 2년 정도 누워 지내는 시간이 늘어났고 난 더 애가 탔다.


 설상가상으로 2020년부터는 코로나펜데믹. 모든 게 멘붕이었다. 아이들도 집에서 줌수업으로 대체되었고,  1년 동안 채워져 있던 나의 강의스케줄도 모두 취소되었다. 하루종일 누워계시는 엄마와 나의 돌봄이 필요한 두 아이들.  내가 책임져야   사람의 시간들은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무언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게 이렇게 무거운 마음일 줄이야. 그리고 엄마의 우울증은 어느 날 불쑥 찾아온 불청객 같았다. 미웠다.

 

  불청객은 엄마를 3년 동안이나 믹스커피를 끊게 했다. 그런데 2023년이 되면서 차차 믹스커피를 마시기 시작해, 이젠 전처럼 아침 먹고 꼭 드신다. 커피를 마시며 먼 하늘을 바라보고, 기분이 좋은 날에는  옛 일을 추억하신다. 이제 좀 편안해지셨나 보다.


 믹스커피를 마시느냐 마시지 않느냐로 엄마의 기분을 알 수 있다니. 참, 재미있다.  엄마가 우울증 약을 먹은 지 4년이 되어가고, 4년째 우리 집에 계신다. 


 이제 믹스커피를 드시는 걸 보니,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실 것 같아 희망이 생긴다. 슬슬 고향집으로 돌아가실 때가 된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나도 엄마를 제자리에 돌려보내야 한다. 그러면 우울증도 다 나으실까. 믹스커피를 계속 드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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