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를 부르다
남에게 엄마를 맡겨도 괜찮았습니다
"엄마, 아침 드셔요"
엄마는 몇 번을 불러도 방에서 꿈쩍을 안 하셨다. 아이들을 모두 학교에 보내고, 엄마가 계신 방으로 가보았다.
"나 밥 못 먹어."
나는 순간 짜증이 났다. 왜 못 먹는데,라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나 어제 넘어져서 못 일어나."
헉, 이게 또 무슨 소리인지. 나와 남편이 어젯밤에 아이들과 산책을 나갔던 그 시간에 엄마는 엉덩방아를 찧었단다. 괜찮겠지, 싶었는데 밤새 화장실도 못 가고 너무 아파서 잠도 못 잤다고 말하는 엄마. 말 그대로 참을 만큼 참다, 죽을 것 같으니 내게 말한 것이다.
"어제 말을 했어야지!"
난 또 버럭 화를 냈다.
"너무 늦었잖아. 밤늦게 말하기 미안해서...."
엄마의 대답에 할 말이 없었다.
엄마는 허리도 아프지만 소변이 급하다고 했다. 엄마를 부축하여 간신히 볼 일을 보고 119를 불렀다. 구급대원들이 도착하자 엄마의 상황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큰일이다.
구급대원들은 신발을 신은채 엄마를 들것에 싣고, 체온을 쟀다. 그때는 코로나로 인해 병원진료를 보는 것이 까다로웠다. 코로나확진자와 접촉은 했었는지, 예방접종은 몇 차까지 맞았는지... 답해야 할 것이 많았다. 제일 중요한 건 열이 있으면 진료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인데 엄마는 미열이 있었다. 밤사이 고민하고 통증에 잠을 설쳤기에 체온이 올라간 것 같다고 말했지만 현재 열이 있으니 엄마는 코로나의심 환자로 구분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구급대원은 진료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응급환자가 진료를 못 받다니. 만약의 경우에 대비할 그 어떤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구급대원은 일단 엄마를 태우고 집 근처 응급실이 있는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들것에 실려 가면서 엄마는 "나 죽어요..." 하며 허리통증을 호소했다. 병원에 가자 안심이 되었는지 그제야 자신의 상황을 자세히 말하셨다.
평소에
"늙으면 빨리 죽어야 돼"
라고 말하더, 막상 아프니까 고통스러워 살고 싶은 엄마. 세상에 진짜 죽고 싶어서 죽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다행이다. 엄마가 살고 싶어 하는 걸 보니.
응급실 간호사는 코로나 검사를 진행했고, 결과는 음성이었다. 급하게 휴가를 낸 언니가 왔고 입원수속도 마쳤다. 엄마를 케어해 줄 간병인 이모님도 구하고, 그렇게 엄마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엄마는 뼈가 똑하고 부러진 게 아니라 부스러진 상황이었다. 입원 후 간단한 시술을 했고 경과를 지켜본 후 퇴원할 수 있다고 했다.
그곳에서 엄마는 기저귀를 해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 일면식도 없던 간병인에게 자신의 것을 보여주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엄마같이 평소 남에게 부탁하는 것, 싫은 소리 하는 걸 어려워하는 성격의 사람은 더욱 그럴 것이다. 간병인 이모님께 잘 부탁드린다 하면서도 신경이 쓰였다. 혹시 엄마에게 눈치를 주는 건 아닐까.
괜한 걱정에 과일이며 간식을 사다 이모님께 전해드렸다. 시술을 잘 마친 며칠 후 드디어 엄마는 기저귀에 적응을 했고 볼일도 잘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언니와 나는 안심했다. 기저귀에 대변본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이라니, 참 별일이다.
2주의 병원생활을 끝내는 날, 퇴원수속을 하러 병원에 갔다. 샤워를 말끔하게 한 엄마가 허리보호대를 하고 병원로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엄마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원무과에서 정산을 마치고 엄마를 차에 태우려고 하자 엄마는 간호를 해주었던 이모님을 불렀다. 이모님께 고맙다고 인사하며 안아주셨다. 이모님은 누가 안아주는 건 처음이라고 하시며 엄마한테 건강하시라고 다음에 또 불러달라고 한다. 다음에 그럴 일은 없어야죠,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엄마는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자신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밥도 먹여준 이모님께.
엄마는 다시 우리 집 끝방에서 누워계신다. 전과 달라진 점은 허리시술 후 누워계신 시간이 더 많아졌다는 것. 그래도 기저귀에 볼일 안 봐도 되는 것만으로 엄마는 행복해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