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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로드라마 Oct 23. 2023

 엄마에게 감사한 것

내 몸을 챙기게 되었다

 우리 엄마는 일평생 농사를 지으신 분이다. 출산을 하고 일주일도 안돼 밭일을 했다고 하니 그 고생이야 안 봐도 그려진다. 홀시어머니와 시동생 둘, 시누이 하나. 하루 세끼 밥 차리는 것도 모자라 빨래에 농사일까지. 몇 가지 일을 해야 했을까. 나였다면, 야반도주하고도 남았을 텐데....


 엄마표현 대로 엄마는 참 미련 맞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딸과 엄마가 싸울  나오는 단골대사가 있다.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한 문장은  딸들이 엄마를 바라보는 삶의 관점이 담겨 있고 감정이 섞여있다. 나 또한 아픈 엄마를 보며 다짐하곤 한다.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나에게 있어 '난 엄마처럼 살지 않는다'

"나는 엄마처럼 내 몸 망가져라 일도 안 하고, 아프면 바로 병원 갈 거고, 나는 나를 잘 보살펴 줄 거고, 그래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 거야."라는 의미다.

그래, 난 엄마처럼 못 산다.


 엄마는 2018년 인공무릎관절수술을 하셨다. 그 이후 자신의 텃밭을 마음대로 농사지을 수 없고, 잔디밭 풀도 뽑기 힘들어지자 자존감이 바닥으로 내려가셨다. 자신의 존재이유가 없으셨는지 엄마의 일상은 멈춰졌다. 먹는 거 씻는 거 자는 거, 눈의 초점까지 잃은 엄마는 전원 off가  그 무엇처럼 보였다.

 엄마는 자신이 아프면 농사일을 쉬어야 해서 치료도 안 받고 무릎관절수술도 미루기만 하셨다. 그러다 보니 적기의 치료시기를 놓치게 되었고 진통제에 의존하는 날이 늘어났다.  그런 엄마를 보면 안 됐다가도 답답했었다. 


 "아니, 아프면 일을 하지 마!"

내가 엄마에게 자주 하던 말이었다. 자신의 몸이 아픈데도 농사일이 먼저였던 엄마, 그때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저 답답했었다. 그런데 엄마가 치료를 미룬  순전히 자식들 때문이란 것을 깨닫게 됐다. 


 TV프로그램 중 피디가 시골어르신의 사연을 듣고 엄마가  만든 음식을 배달해 주는 내용이 있다. 친정 엄마가 오신이후 그 프로를 함께 자주 보게 됐다. 한 번은 그 프로에서 허리가 구부러져서 밭일을  하는 할머니가 나왔었다. 할머니는 허리가 아프니까 엎드려 누운 채 풀을 뽑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피디가 아픈데도 왜 농사일을 손에서 못 놓으시냐고 묻자

"자식들 하나라도 더 챙겨줄라고"

 하며 웃는다.

옆에 앉아 있는 엄마에게

"엄마도 그랬어?"

라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하신다.


 밭일 못하면 쪽파며, 마늘, 고춧가루에 김치까지 자신이 못해주니 얼마나 속상했을까. 엄마는 자신보다 자식이 먼저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게 되니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까. 엄마한테 퉁명을 떨었던 내 말들을 모두 주워 담고 싶었다.


 2022년 여름휴가 때부터 나에게 디리 통증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오래 앉아 있다 일어나면 왼쪽 골반이 쑤셔서 발을 딛기 힘들었다. 통증은 일어나서 앉을 때, 운전하고 차에서 내릴 때 일상생활에서 통증이 자주 느껴졌다. 혹 큰 문제일까 싶어 정형외과에 갔다. 엑스레이를 찍고 선생님께 결과를 들었다. 골반이 비대칭, 한마디로 한쪽 골반이 틀어져서 치료를 받아야 한단다. 치료도 좋지만 집에서 할 수 있는 스트레칭을 가르쳐 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으로 골반에 좋은 운동을 검색했더니 필라테스를 권하는 내용이 많았다. '난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라고 큰소리쳤으니  당장 필라테스에 등록을 했다.


  고백하자면  나도 엄마를 닮았다. 아프면 잘 참는다. 혹시 큰 병일까 무서워서 병원 가는 것을 미루다 못 참겠으면 그때 가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아픈 엄마를 지켜보니 무서워졌다. 어떻게 보면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건 나 자신에게 오기를 주려는 나만의 주문과 같은 것이다.


  엄마를 보며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이 무서워졌다. 마음이 병드는 것도, 몸이 아파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아 삶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도, 우리들의 삶이 마냥 쉬운 게 아니구나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운동을 한 달 이상 해본 적 없었다. 요가수업도 3개월 접수하고 2번 간 것이 고작이다.  그랬던 내가 필라테스를 6개월 이상 꾸준히 하는 걸 보니 엄마께 감사할 일 아닐까.

  엄마에게 내가 골반이 아프단 얘기를 했더니 걱정을 하신다. 어떻게 하냐고.

"어떻게 하긴, 열심히 운동해서 이겨내면 되지."


  엄마는 아파도 자기 자신을 위로해 줄 사랑이 없었을까. 자신이 없을까? 엄마 자신을 더욱 사랑했더라면 어땠을까. 시대를 잘못 타고나서? 그 시절엔 다 그랬다.... 고 알고는 있지만 엄마가 엄마를 사랑했으면 좋겠다. 할머니가 된 지금이라도 자신감을 찾았으면 한다.

'참 잘 살아왔어. 이만하면 괜찮은 삶이었어.'

엄마가 자신을 다독여주길 읊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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