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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로드라마 Oct 23. 2023

엄마를 씻기면 엄마의 인생이 보인다

엄마를 보살피는 딸이 되어가는 중

 나에겐 두 아들이 있다. 올 2023년에 큰아이는 열세 살, 작은 아이는 열한 살이 됐다. 두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머리 샴푸부터 샤워까지  스스로 하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 부부는 샤워독립기가 되었다며 좋아했었다.  

 내 아이들도 이젠 씻기지 않는데, 엄마를 씻긴 지 4년이 되어 간다.

엄마의 머리를 말려드리고


 처음엔 엄마의 벗은 몸이 낯설었다. 우리 집은 어려서 대중목욕탕을 다니지 않았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평소 깔끔하던 엄마는 우울증에 걸리자  씻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내가 씻기게 되었는데, 문제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의 몸이었다. 엄마는 자신 스스로 속옷도 제대로 입지 못해 힘들어하셨다.  팬티 구멍에 한 발씩 넣을 때 무릎을 구부리는 것도 침대에 걸터앉아 일어서며 팬티를 올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엄마의 벗은 몸이 낯선 것도 사실이지만 나보다 키도 크고 몸무게도 10킬로는 더 차이가 나기에 등만 미는 것도 버거웠다. 처음부터 엄마의 온몸을 씻겨주진 않았다. 엄마의 몸이 이 정도로 망가져있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엄마 등만 밀어드리면 되지? 다 씻고 나 불러."

 엄마에게 때수건과 비누를 꺼내드리고 엄마가 부르면 그제야 욕실로 가서 등과 머리만 감겨주었었다.

 

  어느 날인가 엄마가 발을 닦으시는데 허리가 숙여지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마음이 따끔거렸다. 미안해서, 몇 분 내가 수고하면 되는 것을 귀찮아서 모른 척했던 것일까. 자책하면서도 짜증도 났다. 그렇게 엄마를 4년째 씻기고 있지만 엄마를 측은한 마음으로 제대로 씻긴 거는 불과 1년 전쯤이다.


  엄마를 온전하게 받아들이며 씻기자 엄마의 고단했던 지난 시간이 보였다. 허리 숙여서 발가락 사이사이를 못 닦는 엄마, 자신의 얼굴과 배를 제외하곤 그 어떤 부위도 손이 자유롭게 닿지 않는 굳은 근육들. 자식을 위해 뼈를 갈아 일했다는 표현처럼 엄마도 그렇게 일했던 거였다. 엄마는 고된 농사일로  어깨 인대도 끊어졌다. 창고에서 연장을 꺼내다 갈비뼈골절, 2021년엔 낙상으로 허리뼈 골절까지 되었었다. 엄마의 몸을 자신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엄마의 젊은 날은 나의 젊은 날과 달랐다. 내가 음악을 들으며 시험공부를 하던 십 대에 엄마는 공장에서 인주실을 짰고, 함께 일하던 열대명의 여공들과 한방에서 식구처럼 지냈다. 일 년에 두어 번 있는 명절에야 고향집에 왔고, 집에서도 편히 쉬지 못하고 동생들을 챙겨야 했다. 그렇게 스물한 살까지 일하고, 고향집에 내려가 집안일을 돕던 성실한 딸이었다.


 그러다  부잣집의 셋 째아들, 시어머니를 모시지 않아도 되고 결혼하면 분가를 시켜준다는 조건의 남자와 선을 보았다. 그 남자는 나의 아버지다. 엄마는 처음 선을 본 그 남자와 3년 뒤 결혼을 했다.

 두 분은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자식들 앞에서 잘 싸우지 않았지만 문제는 아들을 못 낳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엄마는 딸만 여섯을 낳았고, 홀시어머니를 모셨으며, 제사며  온갖 집안행사를 엄마가 맡았다.  딸만 낳았다는 송구스러움을 엄마는 궂은일 마다하지 않는 며느리와 아내살아온 것이다.

 스물네 살의 꽃다운 여자가 한 번도  해본 적도 없는 논일, 밭일, 과수원에 시어머니와 시동생들 끼니까지.... 생각만 해도 도망가고 싶은데 엄마는 그 시간을 잘 견뎌냈다. 엄마의 몸이 아니라 마음까지 참 잘 버텨왔는데, 좀 더 일찍 우울증이 터졌다면 몸은 편해졌을까.

 여전히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 말이 야속하다.

 '엄마가 착해서 그래'

  어릴 때부터 읽던 전래동화에서도 착하면 복 받고 악하면 벌 받는다고 했고, 어른들은 늘 착하게 살아라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착하게 살아서 우울증에 걸린 거라니. 화가 난다.


 착하게 살았으면 복을 줘야지,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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