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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로드라마 Oct 23. 2023

 어느 날, 공황

나를 더욱 사랑해야겠다

 나는 나를 사랑할까? 대답은 사랑한다, 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공황장애 같은 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내게 공황이 찾아왔다.


 작년 9월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힘들어  응급실에 가게 되었다. 혹시 코로나 백신 부작용인가 의심되기도 했다. 몇 가지 검사를 하고 내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이 의사의  소견이었다.


 "혹시 땅 속 깊이 들어가는 느낌? 죽을 거 같은 느낌은 없었나요?"

 의사가 물었다. 맞다. 이러다 곧 죽는 거 아닐까,라는 공포에 무서웠다. 의사에게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공황장애일 수 있으니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받아보라며 약 처방도 없이 진료를 끝냈다.


 3일 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을 받았다. 공황장애가 맞았다.

 "뇌는 그때에 힘들었던, 불편했던 기억을 찾아내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뇌가 불러온 기억에 몸이 갑자기 이상해지죠. 그런데 사실 아무 일도 아니에요. 괜찮아요."

  의사의 괜찮다는  말 한마디에 나는 뜬금없이 눈물을 흘렸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건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스러웠다.


 "힘든 일 있어요?"

의사의 질문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고, 몇 분의 정적이 흘러갔다. 선생님은 내 말을, 내 마음을 천천히 기다려주었다.

 

 공황의 시작이 어디서부터 왔을까. 불편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가 그랬다.

  첫째를 낳을 때 조산끼가 있어 고위험군 산모병동에 입원을 했었다.  이후 출산 전까지 매일 누워만 있었다. 26시간의 진통 끝에 큰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기쁨도 컸지만 몸이 지쳤다. 그 트라우마로 둘째는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큰아이가 27개월 때 둘째가 찾아왔다. 둘째라 그런지 배가  유난히 많이 나오는 느낌이 들었고 배의 무게에 짓눌려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다.  침실은 좁게 느껴졌고 어딘가에 갇힌 기분이 들어  새벽이 되면 거실 소파에서 잠이 들곤 했다. 배가 조금씩 나오면서  낮은 승용차는 타지 못했고, 내 차 또한 운전하기 벅찼다.

임신 6개월까지 프리랜서 강사일하고 중단했다. 그 이후로는 늘 집에 누워서만 있었다. 만삭이 될수록 뱃속의  아기가 뚝 떨어질 듯 걷기가 힘들었다. 35주 이틀 째가 되던 날 난 느꼈다. 아기가 태어날 거라는. 그렇게 그날 둘째가 태어났고, 난 갇힌 기분에서 해방된 듯 평안을 되찾았다.


  작년에 갑작스러운 공황발작에 많이 놀랐지만, 나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공황발작은 둘째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압박처럼  우울증에 걸린 친정엄마를 지켜보는 일은 내게 압박이었을지 모른다.

1년, 2년이 지났어도 엄마의 우울증은  완벽하게 나아지지 않았다. 늘 제자리만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답답했다. 멍하니 앉아 있는 엄마의 모습에 화가 났다가도 슬프기도 했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어서 괜스레 아이들에게 짜증을 냈었고,  그런 모습의 내가 싫어졌고 엄마를 보살피는 일에 싫증도 났었다.   

  '나아질 거야'라는  희망도 힘을 잃어갔다. 엄마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전처럼 잘 웃고 딸을 챙겨줄 수 없는 친정엄마가 되길 바랐다. 하지만 엄마는 다양한 치료와 약으로도 소용없었다. 엄마의 우울증을 온전히 인정해야 하는  그 오래될 시간이 나는 답답했다.


 코로나와 함께 거의 2년을 두 아이와 친정엄마까지 챙겨야 했기에 몸이 지쳤었다. 더욱이 엄마는 약부작용으로 뇌파치료를 받고 계셔서 이틀에 한번 병원에 모시고 가야 했는데 병원주차며 기다리는 시간까지. 한여름에 시작된 치료는 희망을 바라는 효심보다는 내게 짜증과 원망의 날들이었다. 


 누군가 사랑의 다른 이름은 기다림이라고 했던가. 나는 그 기다림에 지쳐 공황발작이 왔다. 그렇다면  엄마를 기다려주지 못하고 병이 났으니, 내겐 엄마에 대한 사랑이 없는 걸까. 아니 난 엄마를 사랑하지만, 나를 더 사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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