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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로드라마 Feb 21. 2023

내 것으로도 충분해

콤플렉스가 될뻔한 이야기

  8살 때쯤, 내가 살던 시골 동네에 한 아이가 이사를 왔었다. 강 근처 작은 집으로 이사 온 자영이. 얼굴이 하얬고, 시골 동네에 파마머리를 유행시킨 도시소녀였다.

 무엇보다 자영이의 것들과  내가 가진 것들은 늘 비교됐다. 자영이의 두 살 많은 오빠는 동네 남자애들에게서 들어보지 못했던 부드럽고 상냥한 말투를 지녔고, 동생의 친구 이름도 따뜻하게 불러주었다. 동네 남자애들 목소리는 유통기한이 지나 수분이 빠져 뻣뻣한 식빵 맛이라면 자영이 오빠의 목소리는 갗 구워  촉촉하게 결이 살아있는 크로와상 맛이랄까.  오빠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 부끄러우면서도 좋았다. 그래서 자영이 집에 자주 놀러 갔다.


언젠가 자영이는 '초대'라는 고급 어휘를 사용하며 자신의 생일파티에 초대했다. 빈손으로 갈 수 없던 나는 저금할 돈 천 원으로 지우개와 연필을 샀고, 남은 돈 800원은 학교 통장에 저금했다.( 이 사실은 엄마한테 들켜 종아리를 맞았었다.) 파티에 초대받은 손님으로써 선물을 가슴에 들고 당당히 자영이 집으로 갔다. 거실에 생일상이 차려졌고, 벽에는 생일 축하 장식이 돼 있고 빨간 딸기모양 젤리가 박힌 케이크가 웃고 있던 상. 부러웠다. 플라스틱 컵에 따라진 노란색 주스가 자영이처럼 예뻤다.

 나도 생일파티라는 것을 하고 내가 직접 만든 카드를 반친구들에게 나눠주는 장면을 상상했다. 나는 엄마에게 파티를 요구했고 엄마는 승낙했다. 난 기뻤고, 기대했다.


  드디어 내 생일날, 우리 집으로 자영이와 서너 명의 친구를 데리고 왔다. 아빠 생일과 같았던 나는 원 프러스원 행사처럼 치러지곤 했다. 파티라고 하기엔 우리 집은 정막 했고, 밭에 있던 엄마는 막내딸의 생일상을 차려줬다. 동그란 양은상에 조각낸 케이크 한 접시, 과자 두 봉지. 꽃이 그려진 플라스틱 컵에 예쁜 색을 띤 노란 주수는 없었다. 어린 나는 나의 것들의 누추함과 기쁨이 없는 생일날을 들킨 기분이었다. 다시는 생일파티는 안 한다, 다짐했다. 촛불이 없는 케이크에 생일 축하노래는 자연스레 생략됐다.  생일파티는 마침표 없는 문장처럼 어색하게 끝났다. 내가 가진 것들은 어딘지 제각각 바쁘고, 한데 모아놓기 힘들었다. 생일날 논으로 밭으로 봄 농사를 짓던 엄마는 딸의 친구들에게 반가운 인사 같은 건 없었다. (활짝 웃어주던 자영이의 엄마와는 비교하지 않겠다.)


  '영이의 눈코 입은 또 왜 이리 동그랗고 예쁜지, 그 아이는 또 얼마나 세련된 말투를 가졌는지'

 마음도 착해 감히 질투를 하며 미워할 수도 없었다.

 

 갑자기 자영이가  떠오른 건 미용실 거울 속 나를 바라보면서다. 나이 들고 수분기 없던 머리카락이  자영이의 부드러운 바비인형을 생각나게 했던 거다. 자영이의 바비인형을 처음 본 순간 반하고 말았었다. 무작정 인형이 갖고 싶어 옆동네 구멍가게까지 1시간을 걸어갔던 꼬마. 80년대 시골마을은 슈퍼도 없었고, 바비인형은 구경도 못했다. 그런데 옆 마을 구멍가게에서 마른 인형을 판다는 얘기에 귀가 솔깃.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시골 구멍가게에서 파는  500원짜리 마른 인형은 바비가 될 수 없었다. 무릎은 꺾이지 않았고, 빨간 립스틱은 번져 있었고, 머리카락은 이미 탈모가 진행됐는지 엉성하게 심겨 있었다. 하지만 나도 마른 인형을 가졌다는 만족감은 맛보았다. 그리고 돈을 모아야겠다는 목표와 목적이 생겼다. 돈을 모아 바비를 손에 넣는 일. 자영이가 가진 것과 비슷하거나 훨씬 좋은 것. 바비를 사기 위해 세뱃돈 1만 8천 원을 모았다. 드디어  드레스를 입고 활짝 웃고 있는 진짜 바비를 손에 넣었다. 기뻤다. 자영이 앞에서 당당할 수 있었다.

  나의 것  중 가장 예쁜 것을 손에 들고 자영이네를 갔다.  자영이는 곧 이사를 간단다. 나의 바비를 힐끔 보더니 자기는 이젠 바비는 시시하고 책이 좋다며 소파에 앉아 독서를 시작했다. '모래 소년 바람돌이'이었다. 뜬금없던 책제목에 어딘지 고급져 보였던 자영이가 달라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모래 소년 바람돌이는 아니었다.  안도했고 여유로워졌다.  자영이의 것이 처음으로 탐나지 않았다. 자영이의 독서 취향은 나와 맞지 않음을 어렸음에도 느꼈다. 나는 그때쯤 '말숙이와 꾸러기들'을 재미나게 읽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우스운 우주괴물 같은 녀석이라니. 바람돌이와 말숙이는 비교불가다. 말숙이는 성숙한 여학생에 유머가 있어 재미있는 초등학교 생활 중이었다. 바람돌이는 느닷없이 등장해 모래바람을 일으키는 노란 괴물? 아니었던가.

 자영인 내게 이사 가며 아쉬운지  그 책을 선물이라며 내밀었다. 아무리 예쁜 친구가 주는 책이라지만 읽지 않기로 했다. 난 그 책을 받지 않았다. 나름 고급 어휘를 사용하자면 정중하게 사양했다. 더 이상 자영이를 안 봐도 됐고, 난 다시 나의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사진출처:그림책'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의 일부분 입니다.  (찰시막커시  글그림,상상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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