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행을 해야 할까? 여행의 기능은 완벽하게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1) 뒤돌아보고 싶지 않은 일상에서 탈출하기 (그리고 도축당하는 소처럼 다시 끌려 돌아가기) 2) 일상에서 더 잘 기능하기 위해.
내 일상은 그다지 돌아가고싶은 나날이 아니지 않기 때문에 - 작은 불만과 어려움은 많지만, 대체적으로 만족하고 앞으로도 행복하게 만들어갈 수 있다 믿기 때문에 - 내게 여행은 1) 보다는 2)의 목적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여행의 어떤 측면이 날 더 잘 기능하게 만들까.
기능하게 만든다는 표현은 조금 이상한 말이다. 인간이 기능하기위해 생긴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니, 기능한다라는 표현을 쓰도록 하자. 최근에 사피엔스를 읽었지만, 사실 사피엔스를 읽기 전에도, 내가 생각하는 잘 기능하는 인간의 본질은 좋은 생각을 만들고 실행해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보아라 이 문장에도 생각한다는 단어가 몇 번이나 나왔나. 따라서 잘 기능하는 인간에게는 새롭고 좋은 생각을 떠올릴 기회나, 그것을 빠르게 떠올릴 수 있고 실행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정말로 그 힘을 갖는 것을 방해한다. 우리의 일상은 대부분 익숙한 공간과 시간의 반복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람의 머리는 스스로 프로세싱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한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발견했기 때문에 인류는 번성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자신의 것과 섞어 완전히 새로운 생각을 만들 수 있다.
한편 여행은 일상과 완전히 반대의 존재다. 내 일상과 완전히 다른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그곳에는 새로운 생각이 지천으로 널려있고, 그것을 주워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과 조합하기만한다면 나는 완전히 새로운 것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한가지 재미있는 지점이 있다. 내가 떠올리는 완전히 새로운 생각들은 사실은 일상의 생각들에 기준한다. 즉, 새롭게 내놓는다고 하는 생각들은 기존에 머리속에 있던 것을 발전시킨것이다. 따라서 여행에서 일상으로 돌아갔을때 그것들은 정말로 새로운 역할을 해낸다.
이 모든 생각은 갑자기 중간에 멈춰버린 버스 덕에 구경하게 된 유대인 거리에서 출발한다. 사피엔스를 쓴 하리리 아저씨도 유대인이라는 점에서 매우 우연찮은 재미라고 생각한다. 버스에 내리고 처음 본 사람은 머리에 비닐봉지를 엊어놓았다. 비가와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뒤의 남자도, 그 뒤의 남자 어린이도, 그 뒤의 할아버지도 머리에 비닐봉지를 쓰고 있었다. 어떤 봉지는 그냥 까만비닐봉다리였지만, 어떤 사람은 뽁뽁이를 쓰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아주 정교하게 내용물을 감싸고 있는 봉지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봉지를 쓰지 않은 남자들의 머리에는 하나같이 모자가 얹혀있었다. 그 봉지는 모자였다. 그냥 모자가 아니고, 모자를 비에서 보호하기 위해 감싼 것이었다. 왜일까. 이들은 비가 오면 왜 모자를 벗지 않고, 모자에 비닐을 씌우는 것일까? 그리고 왜 구렛나룻비슷한 머리를 곤봉 모양으로 달고 있는걸까. 사피엔스 책 껍질에서 본 하리리 아저씨는 그런 모자를 쓰지 않았던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