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빛이 있었고, 땅이 있었다. 사람들은 땅 위에 세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쌀을 키우고 가축을 길렀다. 집을 지었고 마을을 이루고 시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곧 땅이 모자르게 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섰고, 누군가 살던 땅을 빼앗아 세상을 넓혀갔다.
하지만 태초에 만들어진 땅은 무한하지 못했다. 대륙이라고 불리는 곳들 중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은 일부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땅을 층층이 쌓기 시작했다. 태초의 땅 위에 인간의 땅을 쌓고 쌓았다. 땅의 가치가 클 수록 빌딩은 더 높게 올라갔다.
인간의 땅도 무한히 높게 쌓을 수는 없었다. 기술도 없었거니와, 높게 쌓은 곳에 모두가 접근할 수는 없었다. 사람들에겐 새로운 대륙이 필요했다. 그 즈음 웹이 탄생한다. 처음의 웹은 그냥 통신이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였다. 하지만 그 매개들을 모두 연결하니 촘촘한 망이 생겼다. 그 망은 촘촘한 나머지 위에 사람들은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고, 시장을 만들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 땅에서 물건을 사고 팔았다. 웹 위에 세상을 만들고 살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주머니에서 손바닥만한 검은 기계를 꺼냈다. 그 다음부터 사람들은 웹을 들고다닐 수 있게 되었다. 웹이 움직이니 새로운 망이 생겼다. 새로운 망은 새로운 땅이었고,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편, 새롭지 못한 세상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땅의 넓이가 제한되었다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다. 사람이 해낼 수 없는 일을 하는 것. 처음엔 무거운 것들을 쌓는 기계였다. 기계는 사람의 힘을 대신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하는 능력을 넘어서는 것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기계들은 사람보다 무거운 것을 빠르게 옮기고, 많은 정보를 취득해 빠르게 답을 찾을 줄 알았다. 심지어 밥도 적게 먹었다.
그리고 늘 그래왔듯 새로운 대륙의 넓이도 한계에 다다르게 되었다. 사람들에게는 끊임 없는 생산의 결과물이 필요했다. 쉬운 방법은 옛 땅에 도입했던 로봇과 인공지능을 새로운 땅에 도입하는 것이었다. 다른 방법은 또 새로운 땅을 만드는 것이었다. 어떤 회사는 땅을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어떤 회사는 웹위에 쌓은 세상을 심화하는데 집중했다. 어떤 회사는 둘 다 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새로운 땅을 다른 별에서 찾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제 어디에 대륙을 만들고 새로운 세상을 쌓게 될까? 그런데 정말 이 질문이 중요할까?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긴 선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선위에 어디에 있을까. 선의 어느 방향을 보고 살아야 할까. 내가 선의 일부라면, 나는 무엇을 보고 살아야 할까. 이 문제에 답은 없는 것 같다. 답이 없는 문제에는 결정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