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10개 회사 면접에 불합격한 비법
지난 8월에 야심차게 문과로드 칼럼을 시작했으나 채 몇편 쓰지 못하고 집필(?)을 중단한 채 몇개월이 흘러 버렸다. 이런저런 일들도 많았고 회사 생활을 병행하느라 시간이 부족했던 탓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글을 쓰면 쓸수록 '완벽하게 써야한다.'는 압박이 더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처음 의도는 내가 취업준비를 하며, 멘토링을 하며 느꼈던 Insight들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해보자는 것이었는데, 어느새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취업의 정석을 써야한다는 느낌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점점 더 키보드에 손을 대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다.
취준생 후배들을 만날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취업에 정답은 없다'이다. 내 입으로는 그렇게 말해놓고, 실상 나는 정석을 말해야 한다는 압박에 몇개월간 글 한편 쓰지 못했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리고 어차피 내가 문단에 등단할 정도로 대단한 작가도 아닌데, 완벽한 글을 쓰겠다고 미루는 것보다는 망작이라도 끄적이는게 여러모로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가볍게 문과로드 칼럼을 이어나가볼까 한다.
해마다 지금처럼 겨울이 되면, 취업 첫번째 시즌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집에 쳐박혔던 그 해 겨울이 생각난다. 공채 도전 첫 시즌에 나는 4학년 2학기 재학중이었는데, 문과생인데 토익 820점으로 대기업, 그 중에서도 해외영업 분야를 중심으로 지원하는 말도 안되는 짓을 저지른다. 그 해 여름에 K통신사에서 하계인턴을 하고 최종면접 티켓을 받아놓았기 때문에 근거없는 자신감이 넘쳤던 것이 첫번째 이유였을 것이고, 솔직히 토익 공부가 하기 싫었던 것이 두번째 이유였던 것 같다. 어쨌든 스펙준비도 부실했고, 지원전략도 잘못되었던 그 해 공채는 서류합격률부터 엉망이었고, 믿었던 K통신사 최종면접도 불합격하면서 백수로 겨울을 보내게 되었다.
당시 취업전선에 임하면서 내 가장 큰 컴플렉스는 영어였고, 내가 이렇게 된건 어학연수를 못 가서 그렇다는 지금 생각하면 참 찌질하고 바보같은 생각도 했었다. 어쨌든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었기에 그 해 겨울은 사람도 안 만나고 집에 틀어박혀서 토익공부만 했고, 그 결과 다음해 봄 상반기에는 지원서에 토익 940점을 기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정도 수정된 지원전략도 빛을 발했는지, 약 30% 정도의 서류합격률을 기록하며 꽤나 많은 기업에 면접 기회를 얻게 되었다.
대학시절부터 대부분의 발표를 도맡아하고, 온갖 모임의 리더 역할을 했었기에 말하는 것은 자신 있었고, 인턴 준비 때부터 면접에서 뒤지는 편은 아니었기에 이번엔 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최종 결과는? 두번째 시즌도 완전히 실패하고 취업 삼수를 하게 되었다.
열 몇개 회사의 면접을 보면서 어떻게 하나를 못 붙었을 수 있었을까? 사실 지금의 취업 시장에서 흔한 일이긴 하지만 그 당시 내가 느꼈던 충격은 꽤나 컸고 회복하는데도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 왜 실패했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내가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하나, 나는 취준생이 아니라 고시생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고시생처럼 집안에 틀어박혀 공부만 했던 것이 문제였다. 당시 나는 이미 대책도 없이 졸업까지 해버린 상태였다. 학교를 안가는 백수이다 보니 애당초 특별히 자리를 만들지 않으면 사람 만날 일 자체가 없었다. 또한 그 시절 누구나 그렇겠지만 당시 나는 취업을 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과 자괴감 때문에 이미 알던 사람들과도 거의 만나지 않았다. 취업에 성공하고 멋진 모습으로 쨘 하고 나타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다고 바깥에 아예 안 나간 것은 아니었지만, 서점에 가거나 박람회에 가서 관련 업계 동향을 공부하는 등 철저히 대인 커뮤니케이션 보다는 혼자 공부하는 지식 중심 활동 위주로 생활했었다. 어차피 취업준비를 하려면 회사에 대해 공부해야 하고 스펙도 많이 필요하니 열심히 공부하는것이 문제는 아니다. 다만 정확히 말하면 공부를 해서 문제였다기 보다 '공부만' 한 것이 문제였다.
연구직이나 기술직, 디자인 처럼 어느정도 전문지식이 있는 분야는 조금 다르겠지만, 그 외 분야에서 종사하는 직장인들끼리 모이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본인이 하는 일이 사실 중학교만 졸업해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약간의 겸손과 반복적인 업무에 대한 투정이 버무려진 푸념 같은 것이지만, 실제로 문과생들이 회사에서 주로 수행하게 되는 직무는 많은 전공지식이 필요하다기보다는 주로 글과 말을 활용한 커뮤니케이션 (이메일, 회의, 보고 등)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를 검증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가 결국 자소서(글), 면접(말) 이다.
면접에서 어떤 사람을 뽑을지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개입하지만 사실 핵심은 하나,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을 뽑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판별하기 위해 능력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인상' 이라는 것을 볼 수 밖에 없다. 표정이 밝고 대화가 통화는 사람을 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것이 바로 고시생과 취준생의 차이점이 아닐까 한다. 고시생도 면접을 보긴 하지만 우선은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중요하고, 정답을 맞출 수 있는 지식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취업시장은 어차피 정답이 있는 영역이 아니고, 지식도 중요하지만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때문에 접근법 또한 달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나를 돌이켜보면 취업에 대한 불안으로 항시 어두운 표정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만 보낸탓에 그렇게 자신있던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가끔 TV를 보면 외국 출신의 아이돌들이 한국어만 쓰다보니 본인의 모국어가 어색해지는 것을 보곤 하는데, 나도 내 모국어를 자주 쓰지 않으면 그렇게 될 수 있음을 당시에 뼈저리게 느꼈다. 마치 영어를 말할 때 단어가 생각이 안 나는 것처럼, 머리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있는데 적합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유려하게 말할수가 없었다. 생활하는데 쓰는 어휘야 문제 없었지만 면접에서는 그래도 나름 well-educated 한 느낌을 줘야하는데 그럴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말이 잘 나오지 않으니 자신감이 떨어져 표정이 더 어두워지는 악순환에 들어가고 말았다.
표정도 어둡고 말도 버벅되는, 더군다나 대답하는 내용에서도 부정적인 오라(aura)가 풍기는 지원자가 면접에서 줄줄이 탈락한 것은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다.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말과 글로 소통하는 활동을 포함한다. 물론 맡은 업무와 회사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르고, 우리 모두가 마당발, 청산유수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면접에서 어두운 인상, 다른 말로 다크포스를 풍기지는 않아야 하고, 묻는 말에 엉뚱한 대답을 하지 않는 정도의 대화 스킬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멘탈케어와 대화스킬은 방안에 쳐박혀 있기만 해서는 얻을 수 없다. 밖으로 나가고 사람을 만나야 한다.
밖으로 나가고 사람을 만나며, 내 멘탈을 케어해야 되는 것은 알겠는데, 그럼 어디서 어떻게 사람을 만나야 할까? 나에게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서 괜히 시간만 낭비하거나 오히려 자존감만 더 떨어질수도 있기에 사실 딱 맞는 솔루션을 찾기는 쉽지 않다. 굳이 답을 찾아보자면 진취적이고 성실한 사람들이 많이 모인곳?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각자의 선호와 상황이 다르겠지만 몇 가지 생각나는 대안들을 정리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1. 취업스터디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그래도 취준생에 가장 적합한 커뮤니티가 아닐까 한다. 같은 처지에 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도 도움이 많이 되고, 서류/인적성/면접등을 효율적으로 준비할 수 있다. 다만 본말이 전도되서 놀자판이 된 스터디나 '어차피 안될거야' 등 부정적인 에너지만 가득한 스터디라면 빨리 떠나는게 낫다.
2. 외국어/자격증/직무 관련 스터디
공동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만 잘 만난다면 좋은 커뮤니티가 될 수 있다.
3. 직장인모임
취업했다고 고민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보니 최근 많은 직장인들이 자기계발&소셜네트워킹 목적으로 다양한 모임에 참여하고는 한다. 이중에 독서모임이나 관련 업계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공부도 되고 관련 업계의 사람을 미리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취준생 입장에서 직장인들의 모임에 참석하는게 부담되겠지만 그들도 모두 취업전선을 겪은 사람들이기에 먼저 용기를 내어본다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트레바리 : 유료지만 퀄리티 좋기로 이름난 독서모임. 업계에서 이름난 사람들이 모임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
- 오픈컬리지 : 플랫폼 내에서 사람들이 하고싶은 프로젝트를 열고 참여하는 형태. 역시 유료지만 저렴한 편
- 그외 열정에 기름붓기 등 다양한 형태의 모임들이 있다.
4. 그냥 내 마음에 잘 맞는 친구들
아예 기분전환으로 마음에 잘 맞는, 취업을 못한 상태에서도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어쨌건 핵심은 취준생이라고 해서 너무 우울해지지 않는 것, 그리고 듣고 말할 기회를 많이 가지는 것이다.
5. 기타
최근에는 온오프믹스, 소모임이나 FRIP등 다양한 형태의 App이 있어서 조금의 의지와 노력만 있다면 내가 관심있는 분야의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또 그냥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시간낭비처럼 느껴진다면, 다양한 무료 강의나 컨퍼런스, 세미나 등에 참석하는 것도 좋다.
나의 경우는 해외영업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못해서 고용노동부-신문사-학교가 연계해서 방학동안 진행하는 *무역아카데미에 참여했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모인 취업스터디를 하면서 예전의 내모습을 찾고 정말 다행히 취업도 성공할 수 있었다.
*주)무역아카데미 : 이런걸 했다고 해서 해외영업을 하게되는 마법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다른 부분에서 도움은 많이 되었다
취업 준비 기간은 그 어떤 때보다 힘들고 자존감도 많이 하락하는 시기다. 가족이나 친구들 보기도 어렵고 혼자 있어도 온갖 생각들에 사로잡히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속 혼자 있거나 방 안에서 공부에만 몰두하게 되면, 정작 기회가 왔을 때 진짜 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다. 당장 영어점수등의 스펙이 급한 상황이라면 거기에 집중해야겠지만, 어느정도 스펙이 채워졌다면 밖으로 다니며 넓은 세상을 경험해보자. 우리는 결국 누군가와 함께 일해야하는 문과생이다.
*문과로드 홈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yourcareerro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