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설명회/상담회를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
필자가 어렸을 때, '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마라.' 라는 책이 있었다. 어떤 내용의 책이었을까? 대충 예상하겠지만 당연히 영어공부에 대한 책이었다. 눈치챘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이 글도 제목은 저렇게 썼지만 진짜로 채용설명회 가지 마라는 글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덮어두고 무조건 가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정리하자면, '채용설명회를 제대로 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에 대한 이야기다.
9월이되면 수 많은 기업들의 채용설명회, 상담회가 열리지만 이것들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취준생들은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가서 설명도 듣고 질문도 하고는 하지만, 몇 번 가다보면 '늘 하는 뻔한 이야기다.'는 반응들이 나오며 크게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들을 하고는 한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굉장히 아이러니한 일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사실 채용설명회는 그다지 수지 맞는 장사는 아니다. 회사에 필요한 '인재들이 속해 있을지도 모르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 을 모으기 위해 시간과 인력과 비용을 투입해야 하니까. 그런데 이렇게 노력을 기울이는데도 그 효용성에는 의문이 있는 현실이라니.. 왜 이런 것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고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필자는 이것이 서로가 그리는 '채용설명회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에게 있어 채용설명회의 의미, 즉 채용설명회를 여는 이유는 무엇일까? 잠재적인 지원자들이 회사에 관심을 가지고, 몰랐던 회사에 대해 알게 되어서, 본인들의 회사에 많이 지원하도록 만드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 채용설명회의 의미는 무엇일까?
"당연히 정보를 얻으러 가죠!"
필자가 채용설명회/상담회의 의미, 즉 우리는 채용설명회/상담회에 왜 가는지 묻는다면, 아마 저 대답이 가장 많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라면 사실 문제될것이 없다. 그런데 사실,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우리는 채용설명회에 정보를 얻으러 가지 않는다. 사실은 위안을 받으려고 간다. 다른 말로 불안감을 잠재우러 간다. 또 다른 말로, 실낱같은 희망을 얻으려고 간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우리는 채용설명회에 가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한다.
-스펙 많이 보나요?
-자소서는 읽나요?
-몇 명이나 뽑나요?
- 합격배수는 어떻게 되나요?
그리고 나의 방식으로 이것을 해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스펙 많이 보나요? → 제 생각에 저는 스펙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합격할 수 있을까요?
-자소서는 읽나요? → 저는 스펙이 좀 떨어지지만 열심히 할 수 있으니 제 자소서를 꼭 읽어주세요
-몇 명이나 뽑나요? → 많이 뽑으면 그래도 내 자리가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합격배수는 어떻게 되나요? → (위와 동일)
필자의 해석이 맞다면, 우리는 채용설명회에 정보를 얻으러 가는 것이 아니다. 불안을 잠재우러 간다. 만약 이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면, 본인은 이미 잘 하고 있는 것이니 걱정할 것이 없다. 반대로, 동의한다면, 그 또한 걱정할 것은 없다. 나 또한 저렇게 불안과 걱정이 많았고, 조금이라도 희망을 얻으러 이 학교 저학교에 설명회를 들으러 다녔으니까.
사실 위의 질문들이 그렇게까지 나쁜 것은 아니다. 취준생 입장에서 당연히 궁금한 것들이니까. 다만 저런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늘 뻔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진짜 문제다. 채용설명회/상담회는 보통 인사팀이 기획하고 준비하지만, 질문을 받는 사람 - 특히 상담회 부스에서 질문을 받는 직원들은 대부분 차출되어 지원을 나온 신입사원이나 저연차 직원들이 많다. 즉, 채용규모나 기타 질문들에 대해 깊게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인사팀장이나 여타 다른 사람들이지라도, 저런 질문들에 냉정하고 솔직하게 말하기는 힘들다. 예를 들어, 실제로 학력이나 토익점수에서 커트라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회사의 이미지와 고용법에 문제가 될 수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솔직하게 할 수 있을까?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취준생들이 궁금해하는 질문들에는 언제나 이런 답변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모든 기회는 열려있으니, 열정을 가지고 도전해보세요."
궁금한 것들에 대해 언제나 늘 저렇게 뻔한 답변만 듣다보면, 당연히 채용설명회/상담회에 시간을 들이는 것이 의미 없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한창 설명회가 많이 열리는 때는 자소서 쓸 시간도 부족한 시즌이니까.
그렇다면, 어짜피 뻔한 답변을 들을 수 밖에 없으니 그냥 안 가는 것이 답일까? 이미 회사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고,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면 그 또한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취준생 입장에서 실무를 해보기전에는 모르는 회사에 대한 정보를 접해볼 수 있기에, 채용설명회/상담회는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운 면이 있다. 인터넷에 모든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라지만, 모든 회사가 모든 정보를 가공해서 인터넷에 올리지는 않는다. 그런 부분까지 시간과 비용을 들일 여력이 있는 회사만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또한 취업한 지인이 많지 않은 학생들의 경우, 취업상담회는 유일하게 현직자들을 만나볼 수 있는 귀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결국, 무조건 채용설명회를 갈지 말지 고민하기보다는 가뜩이나 부족한 우리의 '시간'을 좀 더 알차게 쓰기 위해, 채용설명회/상담회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물어보고 싶은 것만 물어봤다면, 지금부터는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이 대답해줄 수 있는 것을 물어보는 것이다. 수 없이 많은 정보들이 있겠지만,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1. 산업/기업에 대해서
회사가 속해있는 산업군의 현황이 어떠한지, 그 산업군 내에서 현재 회사의 위상은 어떠한지, 어떤 차별점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해볼 수 있다. 이렇게 모은 정보들은 자소서나 면접에서 좋은 소스로 활용할 수 있으며, 또한 나와 회사의 궁합을 미리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원래 해당 회사는 국내 사업만 하고 있었는데, 최근 중국쪽의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면, 중국어를 잘하거나 중국 경험이 있는 지원자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홈페이지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업계에서 자주쓰이는 용어, CEO의 최근 관심사 등의 키워드를 듣고 이를 자소서와 면접에서 녹여낸다면 준비된 지원자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만약 회사에 최근에 특정 사업부를 신설하는 등의 조직개편이 있었다면, 주요하게 체크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최근에 유통/소비재 회사들 중 이커머스 사업부를 신설하거나 확장하는 회사들이 많은데 이는 최근 급성장하는 이커머스 시장을 겨냥한 것으로, 당연히 이쪽 분야에 인력 수요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 분야에 대해 대략적으로 질문리스트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산업적으로 주요 이슈, 여기에 대처하는 회사의 방안
-최근 회사의 경영 화두는?
-회사의 비젼과 이를 실행하기 위한 현재 경영전략
-최근 회사에서 실제로 하고 계시는 일. 사업부/팀의 핵심 프로젝트나 업무
-업계에서 쓰는 핵심적인 용어, 특수한 용어가 있다면?
-최근 회사 CEO또는 경영진이 자주 말하는 것은?
-최근 회사에서 중점적으로 키우고 있는 사업이 있다면? 신설하고 키우는 조직이 있다면?
2. 직무와 커리어패스에 관하여
아무리 해당 산업이 전도유망하고 그 안에서 회사가 뛰어나도 결국 내가 다니는 회사가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이 내가 일할 만한 곳인지, 내가 가진 역량을 좋아할 것인지, 그리고 이 회사에 만약 들어간다면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볼 수 있는 정보를 얻어내야 한다. 또한, 같은 직무여도 산업군별로 업무의 특성과 필요로 하는 역량이 다르므로, 이에 대하여 직무와 연관에서 물어보는 것 또한 꼭 필요한 작업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항상 자소서에서 어려워하는 입사 후 포부를 쓰기 위해 대놓고 가이드를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직무가 하는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직무자체가 가진 특징, 회사나 산업에서 가지는 특징적인 요소
-실제 하루 일과, 진행중인 프로젝트
-업무 수행을 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경험, 성향이 있다면?
-업무를 하다가 가장 보람있었던 경험
-업무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 극복한 방법
-회사의 간단한 조직도를 알려주실 수 있는지
-신입사원, 3년차, 5년차, 10년 차 정도되면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업무를 하게 되는지?
-현재 직무에서 이후 어떤 방향으로 커리어패스를 설계하고 계신지
3. 지원여부 결정에 참고하기
마지막으로, 우리가 진짜 궁금한 질문, "나는 합격할 수 있을것인가?"의 측면에서 이를 우회적으로 예측해볼만한 방법도 있다. 해당 회사/해당 직무에서 일하는 현재 직원들의 전공이나 주요 경력, 베이스가 대충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또한 대략적인 회사 사람들의 성향이나 분위기등을 물어보고 나에게 잘 맞는 회사일지 미리 한번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회사의 직원들의 전공과 경력 베이스는 어떠한지, 어떤 성향의 사람들이 많은지
-저는 이러이러한 능력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지 해당 직무에 어필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떤 점을 중심으로 공략하면 좋을지
-회사의 대체적인 분위기는 어떠한지?
4. 채용프로세스 파악
이 부분은 대부분 홈페이지나 채용공고에 나와있지만, 보다 자세한 정보가 필요할 경우 물어보면 된다.
-인적성의 유형 (우수자 뽑기 vs 하위자 필터)
-면접방식의 구성 (토론 인성 피티 등, 다대다 vs 다대일, 면접관의 특성)
-질문은 주로 어떤 것을 물어보는지
-면접에 압박적인 요소가 있는지?
-면접을 어떤 식으로 준비하면 좋을지 (보수적인 느낌/창의적인 느낌)
사실, 위의 모든 질문을 다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실제로 다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단순히 위안을 얻기 위해 채용설명회/상담회를 가는 것과, 이런 정보들의 필요성을 알고 이를 조금이라도 파악하겠다고 마음 먹고 가는 것은 전혀 다를 것이다. 시간이 있다면 설명회에 가기전에 저런 정보들을 미리 파악해서 현직자들에게는 미처 파악하지 못한 정보만 물어봐도 좋을 것이고, 그것이 어렵다면 반대로 설명회/상담회에서는 대략적인 내용만 파악한 후, 인터넷 등을 통해 세부적인 정보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필자는 미드 Timeless(2016)을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여기서 현대 마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술사 해리 후디니가 나온 적이 있다. 주인공 루시가 탈출마술을 할때 공포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묻자 이에 대해 해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공포는 현실사건이 아니라, 사건이 만들어낸 반응일 뿐이죠. 저는 마음을 비우고 한 가지만 생각해요."
"어떤 생각이요?"
"탈출, 어떻게 탈출할 것인지, 그것만 생각해요."
조금 생뚱맞지만, 취업설명회/상담회를 대하는 우리의 관점도 이와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에 대한 불안감과 여러가지 고민들이 겹치지만, 이런 생각들을 접어두고, 필요한 단 한가지-정보 모으기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런 노력들이 모인다면 귀중한 시간을 조금 더 의미있게 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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