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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고래 Mar 01. 2019

30대꼰대가 말하는 문과생의 자소서

#암묵지를 표현할 거의 유일한 수단

 학생! 이런 단어는 잊은지 오래, 아저씨로 불리는게 더 익숙한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고 나니, 문득문득 "나도 꼰대가 된걸까?" 싶은 순간들이 있다.

 최근에 어떤 e커머스 회사에서 MD채용을 진행했었는데, 이와 관련해서 나에게 자소서 쓰기가 너무 어렵다며 문의를 한 분이 있었다. 그 분의 말인즉, 단순한 자소서가 아니고 제품을 정해서 영업전략과 목표도 수립해야하고, 카테고리를 정해서 잘 하고 있는 곳이 어딘지 분석하고 의견도 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 어려운 것도 있고, 회사가 합격도 안 시켜줄거면서 아이디어만 빼가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해당 채용의 경우 합격이후 바로 채용이 아니고, 인턴으로 꽤 오랜 시간 일하고 성과를 내야 정규직 전환이 되는 형태였다. 개인적으로 취준생들에게 가장 귀중한 자원인 '시간'을 가져가면서 그에 상응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 이런 채용은 정말 별로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과거에 인턴십을 하느라 참석하지 못한 면접들을 생각하면 많이 아쉽다) 하지만 회사의 채용 정책과의 별개로 위와 같은 자소서 양식만 보면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준생 입장에서 또 하나의 기회가 생긴 셈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회사 경험이 없는 취준생들 입장-그중에서 특히 문과생들에게, 한국의 공채 시스템은 자신을 드러내기 너무나 어려운 구조다. 아무리 열심히 살았던 문과생들이라도, 막상 이력서를 쓰려하면 뾰족하게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 이유는 그들이 그동안 쌓았던 것이 수치화/객관화 되기 어려운 '암묵지'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문학을 전공하고 소설을 정말 좋아해서 시중에 수 많은 소설을 읽었던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런 사람의 경우 본인이 취업을 하고자 한다면, 정형화된 이력서에서 자신을 표현하기 쉽지 않다. 일단 소설 읽었던 것이 이력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테니 서류에 기재하지도 않을테고, 그렇게되면 이력서가 비어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1차원적으로 생각해서 출판사나 책 관련된 분야로만 취업하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이 사람의 잠재력은 거기까지인 것일까?

 결론적으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갈수록 컨텐츠와 진정성 있는 메시지가 중요해지는 세상에서 이 사람은 엄청난 스토리텔링 능력을 갖춘 마케터가 될수도 있고, 업무 경험을 쌓으면 훌륭한 컨텐츠 기획자가 될 수도 있다. 사교적인 성격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추가로 가지고 있다면 정서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다양한 클라이언트나 내부 이해관계자를 조율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잠재력과 갖췄다고 하더라도, 틀이 정해져 있는 이력서에 이를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채용을 결정짓는 첫번째 Key는 이력서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소서가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나의 잠재력을 한편의 글을 통해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이 가진 암묵지는 무엇일까?


 하지만 자소서로 나의 잠재력을 표현하려고 해도, 정해진 자소서 문항들 (성장과정, 성격 장단점, 지원동기 등등) 만으로 자신의 강점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문과생들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렇게 표현한들, 나의 채용에 도움이 된다고 확실할 수 있을까? 만약 항목구성이 뻔하디 뻔한 자소서의 형식이라면, 회사는 애시당초 자소서를 읽을 의지가 별로 없을 수도 있다. 또한 취준생들 또한 자소서에서 큰 차별성을 보여주기 힘들것이고, 결국 결론은 모두가 알고 있듯이 스펙 줄세우기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나는 그래서 그 e커머스 회사의 매우 구체적인 자소서 문항이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자소서 문항이 구체적일수록, 해당 분야에 대해 많은 관심과 열의를 가졌던 사람은 자신을 표현하기 좋을 것이고, 회사 또한 그런 사람을 찾고 있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회사원들은 생각보다 정말 바쁘고, e커머스 회사들의 경우 안 바쁜 회사 찾기가 더 힘들다. 그런 회사에서 자소서 문항을 다르게 구성했다는 것은, 스펙 줄세우기보다는 자신들의 업무에 맞는 사람을 찾아보겠다는 나름의 열의를 보여준 것으로 나는 해석했다. 

 유사한 관점에서, 그 분의 의견-'회사가 아이디어만 빼가려고 한다.'-는 생각은 좀 앞서간것으로 보였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회사원들은 정말 바쁘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몇백 몇천개가 되는 자소서를 읽으면서 아이디어를 발굴할 사람은 없다. 하루하루 생각나는대로 일을 쳐내고 살기 바쁜 것이 MD들의 현실이다. 또한 취준생들의 아이디어는 상당히 참신하고 새로울 수는 있으나, 대부분 실무 기반이 없어 바로 실현가능성이 있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그냥 '아이디어' 수준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치열한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아이디어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으며 수 많은 과제들을 해결하여 그것을 실제 현실로 만들어내야만 의미가 있다. 


 이런 나의 생각을 그분에게 말하고 나니, 그 분 입장에서는 힘들고 어려워서 하소연을 한 것일텐데 철저히 비즈니스 관점에서만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내가 꼰대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취준생 생활을 한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정서적 공감대는 많이 떨어진 것 같다.

 취준 재수, 삼수를 시작할 때 가장 하기 싫었던 것이 자소서 쓰기였다. 답도 없는 글을 계속해서 쓰고 있으려니 정말 죽을 맛이었고, 몇시간동안 글이 안 나와서 손을 놓다가 결국 복사붙여넣기로 제출한 날들이 부지기수였다. 친구의 친구인 어느 공대생이 '임시저장된  [ㅋㅋㅋㅋㅋㅋ]로만 채워진 자소서를 실수로 제출했는데, 1차 면접에서 면접관이 발견했는데도 잘 넘어가고, 이후 최종면접 전에 인사팀에서 고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서 결국 최종합격까지 했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듣고나면 내가 쓰는 이 서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과 취준생들이 보다 열심히, 혼신을 다해서 이력서와 자소서를 썼으면 한다.

위에서 문과생들이 가진 역량은 대부분 암묵지라고 이야기 했었다. 그 말은 '내가 표현하지 않으면, 그리고 표현해내지 못하면 아무도 나의 잠재력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취업 멘토링을 하다보면, 어린 나이에 제대로된 생각을 가지고 많은 노력을 한 친구들을 자주 만난다. 이런 친구들이 취업이 안되는 것을 보면 정말 취업이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자극을 받는다.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또 노력하라고 말하기가 너무 미안하고 열정, 노력만 강조하는 꼰대가 된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취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노력해야한다. 개인적으로 취업은 운칠기삼이라고 생각해서, 운 70% 가 채워지는 그 순간이 되어야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순간만 기다리느라 30%를 채워놓지 않는다면, 결국 100%를 못 채워서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할 수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순간을 위해 항상 노력 30%을 채워놓고, 그래서 본인이 가진 잠재력을 제대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사실 이런글을 썻으면 그래서 어떻게 자소서를 써야하는지, 그런 암묵지는 어떻게 찾아내고 표현해야 하는지 함께 써줘야 되는 것인데, 글쓰기 능력의 부족으로 이번 칼럼에는 기재하지 못했다. 추후 다른 글을 통해서  이런 내용도 계속해서 풀어보려고 한다.


*이어지는 글 : 심리학으로 사업전략 자소서 쓰기

https://brunch.co.kr/@linkyspark/24


*문과로드 홈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yourcareer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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