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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고래 Oct 03. 2019

회사생활 암흑기가 지나고 남은 것(上)

역할과 자율성이 생각보다 중요한 이유

 모든 직장인에게는 회사 생활의 암흑기가 있다. 지난 시절을 돌아보며 그땐 정말 끔찍했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불행히도 그 암흑기가 지금일 수도 있다. (그런 분들이 있다면 건투를 빕니다) 

 나의 경우는 2년 차 상반기가 가장 어둡고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수없이 많은 막장 사례를 보거나, 와이프의 전 직장 이야기만 들어봐도 내 사례는 양호한 축에 속하긴 했으나, 세상 모든 고통은 상대적인 것이기에 그 시절 나는 정말 고민이 많고 스트레스가 극에 달에 있었다. 매일같이 퇴사를 생각했지만 힘들게 취업한 회사를 그만두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았고 나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에 집중했던 시절이었다. 


  문제의 암흑기가 닥치기 바로 직전이었던 그 전해 12월 말, 갑작스럽게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이루어졌고 50명 정도 되는 사업부의 거의 40%에 가까운 인원이 갑작스럽게 자신의 팀과 하는 업무를 바꿔야 했다. 그들 대부분은 거의 발령 당일이 돼서야 자신이 이동 대상자임을 알게 되었고, 당연히 그 발령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 투성이었다. 

 그리고 나의 경우는 원래 팀원들이 모두 바뀌고 완전히 새로운 선배들과 일하게 되었다. 팀장님 제외 정말로 한 사람도 안 남기고 모두 다른 팀으로 이동하고 기존 멤버는 나 혼자 남은 상황이었다. 12월 말에 이루어진 갑작스러운, 그리고 대규모의 이동 발령에 당연히 담당자들 간의 인수인계가 제대로 진행될 리 없었고 여기에 복잡하게 바뀐 조직개편으로 내부 IT시스템도 완전히 꼬인 상태로 1월 1일을 맞게 되었다.

 이렇게 꼬인 시스템은 1월 첫 영업일부터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 기존 업무를 진행하던 선배들의 인수인계도 거의 받지 못한 채로 이런 문제들을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해결해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회계팀 등 유관부서에 '절차도 무시하는 개념 없는 신입' 취급을 받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또 새해 첫 영업회의에 한 번도 다뤄본 적 없던 손익 데이터를 정리해서 제출해야 했는데, 이 오더 또한 그날 아침에 떨어졌던 지라 뭐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데이터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약 1~2시간 동안 뛰어다니면서 정리한 데이터는 당연히 엉망진창이었고, 마뜩지 않는 표정을 짓는 팀장님에게 또 머리를 숙이며, 그렇게 새해가 시작되었다.


어째 시작부터 심상치가 않다


 화려한 인트로만큼이나 그 해 상반기는 내내 모든 일이 쉽지 않았다. 팀 이름, 업무 내용 모든 것이 바뀌었기에 그에 따른 적응을 해야 했고 새로운 선배들과 합을 맞추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팀 멤버가 모두 남자로 바뀌면서 팀 분위기가 더욱 보수적으로 변했고, 당시 사업부의 경영 상황과 팀장님의 성향상 아무런 보상 없는 야근과 주말출근이 당연시되었다. 하루 종일 일한 후 반주를 겸한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팀장님의 좋은 말씀들을 듣고 다시 들어와서 10시, 11시까지 보고자료를 만들고 주말에도 회사에서 점심 저녁을 먹는 나날이 이어졌다.

 팀의 연차 1,2순위 선배들은 과거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앙숙이었는데 급작스럽게 한 팀이 된 후 서로를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들은 바로 옆자리에 있었지만 서로 할 말이 있으면 나를 불러서 전달시키고는 했다. (결국 둘 중 한 명은 중간에 다른 사업부로 이동을 했는데, 이때 팀 인원이 한 명 줄어드는 것인데도 중간 눈치보기를 그만해도 되어 오히려 안심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생활은 당연히 꿈도 꿀 수 없었고, 몇 주전에 말해놓은 하루 짜리 휴가를 코앞에서 취소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 휴가의 취소 사유였는데, 팀장님께서 고생하는 팀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워크숍을 진행하셨기 때문이었다. 예정됐던 가족 모임을 취소하고 6시간의 등산을 하고 먹지 못하는 술을 열심히 마시고 새벽까지 노래방에서 분위기를 띄우면서 직장 내 세대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들 세대에서는 이렇게 법인카드를 사용한 워크숍이나 회식이 일종의 복지고 회사의 아량이었기에 정말 선의로 나에게 베푼 것이겠지만, 우리 세대 - 특히 나의 입장에서는 포상이 아니라 또 하나의 극한 업무일 뿐이라는 것 말이다.


세대차이에 주의 부탁드립니다.


 과도한 업무시간과 개인의 삶이 없는 생활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업무와 관련된 것이었다. 당시 팀장님은 매우 혁신적인 업무 분장을 제안하여 우리 팀은 모든 담당이 모든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담당별로 특정한 업무를 지정하지 않으셨다. (근데 현실적으로 말은 안 되긴 하니 어쨌건 담당별로 자연스럽게? 일은 나눠서 하긴 했다.) 그리고 그분이 대외적으로 우리 팀원들을 소개할 때 나에게 부여한 담당명은 '경영회의 담당'이었다. 한마디로 생각하면 군대의 행정병 내지는 자료병 느낌이었다. 실제로 나는 대부분의 업무 시간을 엑셀과 PPT를 만지며 보고 자료를 만들고 다듬고 또 다듬고 다시 다듬고 그래프를 그리고 고치고 지우며고 다시 그리며 보냈다. 또는 다 만든 보고 자료의 글씨 폰트를 바꾼다거나 오타를 검열하는 것이 일상 업무였다. 

 바로 전 해였던 신입사원 시절도 모든 것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살갑지 못하고 술도 잘 못 먹는 신입사원이었기에 회사 내 선후배관계도 쉽지 않았고, 좌충우돌 부딪히는 업무와 야근 속에서 갈팡질팡 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을 더 좋게 기억하는 것은, 나라는 사람에게 주어졌던 명확한 역할과 작지만 나름대로의 권한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쩃든 내 업무에 한해서는 내 생각대로 무언가를 만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자료병'이 된 암흑기 시절에는 아무것도 정의된 역할이 없었고, 이는 곧 내 영역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윗선'의 지시대로 PPT를 이렇게 고치고 저렇게 고치면, 그때그때 닥치는 잡무들을 처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내가 무슨 일을 한다고 명확히 말할 수 없는 좌절감이 어떤 것인지 그 시절에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심각하게 퇴사를 고민했지만 이 또한 명확하지 못한 정체성이 발목을 잡았다. 채 2년도 안된 신입이나 다름없는 경력에 현재 업무 내역은 PPT 내지는 엑셀, 이러한 이력을 가지고는 이직이나 재취업은 커녕 다른 사업부로 이동하는 것조차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입사 2년 차 주니어에게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뾰족한 솔루션은 없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글을 쓰고 생각을 담는 모임, #쓰담 의 멤버로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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