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능동적인 상황에 두기
멕시코 사람들이 자주 쓰는 문장이 하나 있다. Mi casa es tu casa. 우리집이 네 집이다, 우리집을 너의 집처럼 편안하게 생각해도 된다는 뜻으로 멕시코 사람들이 아주 자주 쓰는 말이다. 멕시코 사람들은 대부분 타인에게 친절하고 외향적인 편이다. 적어도 20년 간 내가 만나본 멕시코 사람들 대부분은 그랬다. 가족이나 직장 동료,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하는 걸 좋아하고 손님방을 준비해둔 집들이 꽤 많은 나라다.
나도 모르게 펠리파 할머니도 '대부분의 멕시코 사람들'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나보다. 할머니는 학교를 다니거나 다른 직장을 다니거나 하는 사회 생활을 딱히 해보신 적이 없고 호세 아버지(동료의 아버지) 본가와 지금의 집이 평생 다녀본 직장의 전부인 분이다. 동양 사람을 근거리에서 만나본 게 내가 처음이라 했고 직접 대화를 나누어본 외국인도 내가 처음이라 했다. 집에 손님도 아니고 가족도 아닌 불청객이 나타나 기거를 '이리 오래' 하는 것도 처음이라 했다.
할머니는 할머니 나름대로의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있을테고 할머니의 일하는 공간에 침입한 낯선 사람을 '인지하는 시간'도 필요할테고 나로 인해 어쨌거나 일거리가 더 늘었을텐데 거기에 대한 불평도 있으셨을 게다.
이유 모르게 미움 받은 상황에 놓인 '억울함'에서 수십 년 동안 지내온 내 영역에 등장한 낯선 사람으로 인해 펠리파 할머니가 잔뜩 느끼고 있으실 '불편함'으로 감정의 중심점이 이동했다. 왠지 모르게 처량하기까지 했던 다크다크 감정 상태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할머니의 불편함이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미움 받는다'는 생각에서 '불편함을 끼쳤다'는 생각으로 갈아타자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불편함을 덜어드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과 같이 지내는 동안 미움 받는 상황, 있을 수 있다. 나는 아무 것도 안 했는데 내 의도와 관계 없이 미움 받는 상황, 있을 수 있다. 도대체 이런 거까지 일일히 신경 쓰고 살아야 해? 신경 안 써도 된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내가 조금 더 편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혹은 그 상황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려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내 나름의 해결 방법은 '나를 능동적인 상황에 두기'다. 피행위자보다 어떤 행위를 직접 수행하는 사람의 위치에 나를 놓아두고 생각해보면 답이 전혀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희미하게나마 답이 보인다.
내 스스로를, 펠리파 할머니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자'의 위치에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러고는 작은 부분에서부터 내가 조심할 수 있는 것들, 할머니를 내 선에서 배려해드릴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조금씩 시도해보았다. 시간이 제법 걸리긴 했지만 효과가 있었다.
우선 할머니가 귀찮을 정도로 질문을 자주 했다.
“제가 이거 치워도 될까요?”
“주방을 좀 쓰고 싶은데 혹시 주방 쓸 일 있으세요?”
“이 접시는 어디에다 두면 될까요?”
펠리파 할머니는 처음에는 퉁명스럽게 아주 짧고 간단한 대답만 하시다가 조금씩 단어가 길어지기 시작했고 단어와 단어 사이의 어조가 엷게나마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그 다음,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 인사 세례를 드렸다. 최대한 웃으면서 티나게 감사 인사를 연거푸 드렸다. 영혼이 덜 담겨 있어서인지 이건 그리 효과가 없었다.
방향을 조금 바꾸어 칭찬 샤워를 해보았다.
“이거 너무 맛있어요!”
“방 안에서 좋은 냄새가 나요”
“머리를 어떻게 땋으신 거예요? 처음 보는 스타일인데 잘 어울리시는 거 같아요”
“물건 하나하나 제 자리를 어떻게 다 기억하시는 거예요? 대단하시다”
처음에는 멋쩍게 어색하게 불편해 하시다가 조금씩 반응을 보여 주셨다. 칭찬 샤워는 다른 것보다 결과가 괜찮은 편이었다.
이번에는 조언을 구하면서 같이 해보자고 청해 보았다.
“이거 만들어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 스프는 재료가 뭐 뭐 들어가는 거예요? 저도 한 번 해봐도 될까요”
“바닥에 뭐가 묻은 거 같은데 이런 건 어떻게 지우면 될까요? 제가 한 번 해볼까요?”
“다림질도 안 했는데 블라우스에 주름이 안 잡혀 있어요. 어떻게 하신 거예요? 저도 해볼 수 있어요?”
이 방법이 제일 좋았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뭔가 적극적이게 많이 한 것 같은데 펠리파 할머니가 불편하지 않게 천천히 시간을 두고 느리게 느리게 여러 방법을 시도해보았다. 그런데 처음에는 전략적으로 무어라도 해야겠다 라는 마음이었는데 할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대화하는 횟수도 잦아지다보니 자연스럽게 할머니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가 내 인생의 모토 중의 하나라 불편한 상황이 생기면 나는 주로 굴러 나가버리는 돌에 가까운 편이었다. 굳이 힘들고 불편함을 꾸역꾸역 참아가며 이 아름다운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라고 합리화를 했다. 그런데 알 수 없게 미움 받는 상황에서도, 교과서 같은 말이긴 하지만 억울한 마음을 조금만 덜어내고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면 그 나름의 솔루션이 있긴 하다. (해결 방법이 절대 없는 상황이다? 그럼 얼른 도망치시라!) 펠리파 할머니는 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조금씩 조금씩 나를 덜 미워하시기 시작했고 미움이 덜어진 자리는 관심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볕이 따뜻한 날이었다. 머리를 말리다 말고 주방으로 내려가서 냉장고에서 요거트 하나를 꺼내서는 식탁 테이블에 앉았다. 부스럭 거리를 소리를 들었는지 펠리파 할머니가 회오리 계단을 타고 내려오셨다.
“딸기 썰어 줄까?”
“아뇨, 괜찮아요. 그냥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할머니는 다시 올라가는 대신에 내 맞은 편에 앉았다.
“머리가 꽤 많이 긴 것 같아. 근데 네 머리색이 내 머리처럼 검은색이네.”
할머니는 그 말을 남기고는 회오리 계단으로 올라가셨다. 뭔가 얘기가 중간에 뚝 끊어진 것 같더니만 할머니는 곧 다시 거실로 돌아오셨다. 손에 나무 빗을 하나 들고서. 말없이 내 뒷편으로 스윽 가서 서시더니 나무 빗으로 내 머리를 빗겨 주셨다.
“머릿결도 내 머리와 비슷하네.”
조심조심 부드럽게 빗질을 몇 번 더 하시다가 빗을 내려 놓고 내 머리를 땋기 시작했다. 할머니와 나 사이에 따뜻한 침묵이 흘렀다. 뭔가 마음이 찡했다.
“다 됐다.”
할머니는 옆으로 나를 돌려 세우더니 머리를 쓰담쓰담 해주셨다. 그러고는 다시 회오리 계단으로 올라가셨다. 이 날부터 나도 왠지 할머니의 가족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그랬다. 이 날 이후로 펠리파 할머니는 가위로 채소를 썰고 다시다로 육수를 만들고 빵과 또르띠야 중 무엇을 먹을 건지 물어보지 않으시고 그냥 바로 또르띠야를 데워 주셨다.
이렇게 우리는 한 지붕 아래에 같이 사는 가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