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만 쉬어도 미운 사람과의 동거 I

멕시코, 펠리파 할머니와 함께 살기

by 이정화

다른 사람과 같이 산다는 건 참 보통 일이 아니다. 집이라는 공간이 회사나 학교처럼 정리정돈된 차림으로 공간이 존재하는 목적을 알맞게 달성하고 난 후 신나게 나설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먹고 씻고 자고 쉬는 지극히 개인적인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보니 내 마음대로 흐트러질 수 있는 편안함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공간에 나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낸다는 건 예상하기 어려운 수많은 변수를 끌어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므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 살기 전 여러 가지를 충분히 살펴보고 알아보고 생각해보고 결심을 한다.


친구와도 살아보고 직장 동료와도 살아보고 일반 가정집에서 살아보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과 같이 사는 것 중 난이도가 가장 높은 건 '이미 가족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 틈'에 합류해서 사는 것인 듯하다. 이때 내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두 가지다. 잘 어울려 살거나 혹은 뛰쳐나오거나. 굴러온 돌은 선택을 해야 한다. 잘 맞춰가며 박혀 있을지 혹은 데구르르 굴러 나가버릴지.


오늘 소개하고 싶은 동거 전문가로서 내 경험담은 '미움 덩어리 굴러온 돌'이다.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더라. 내 의지와는 다르게, 나는 아무 것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존재만으로' 이미 불편한 사람이 되어 있거나 숨만 쉬어도 미움 받을 때.



2000년 중반 무렵, 멕시코 시티에서 지낼 때의 일이다.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던 현지인 동료가 초대한 연말 파티에서 너구리 라면 3개에 파와 달걀, 양파를 넣고 끓여 선보였다가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것을 계기로 주말이면 이 집 저 집 초대 받아 다니며 인스턴트 요리사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지금은 멕시코 내 대형마트에 멕시코식으로 현지화된 오뚜기 라면이 들어가 있고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음식이 잘 알려져 있는 편이지만 2000년 중반 즈음만 해도 멕시코 사람들에게 한국 음식은 꽤 낯선 음식이었다. 주말 장터에 가면 새끼손가락만한 고추에서부터 길이가 30cm는 족히 넘어 보이는 대형 고추까지 다양한 고추로 내는 매운 맛을 즐기는 멕시코 사람들에게 신라면이나 너구리 매운맛 같은 라면은 신세계였다.


어설픈 내 너구리 라면 요리로 시작된 '초청 릴레이'는 결국 동료들의 부모님 댁까지 퍼지게 되었는데 가장 가까이 지냈던 동료의 부모님 댁에 초대 받아 방문한 자리에서 뵙게 된 동료의 부모님과 대화 코드가 너무 잘 맞아 자주 뵙게 되었다가 그 분들의 감사한 제안으로 동료 부모님 댁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


4층으로 이루어진 건물 한 채에 부모님과 동료의 동생 한 명 그리고 집안 일을 봐주시는 할머니 한 분이 지내고 있으셨다. 동료는 같은 일을 하는 친구들과 회사 근처에서 독립해서 살고 있는 중인데다 같이 사시던 가족 중 한 분이 다른 곳으로 가셔서 방이 몇 개 남는 상태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주차장과 정원이 있고 1층은 벽난로가 있는 응접실이 있고 계단을 8칸 오르면 12인용 테이블이 있는 식사 공간이, 그 옆으로는 주방 그리고 주방 옆으로는 아담한 뒷마당 정원이 있었다. 주방에는 문이 두 개 있었는데 한 쪽문은 뒷마당으로 통하고 다른 문은 회오리 모양의 계단과 연결 돼 있었다. 그 계단을 빙글빙글 올라가면 작은 방 하나와 욕실이 나왔다. 식사 공간에서 몇 계단 오르면 왼편에 서재가 있었고 오른편으로는 욕실과 드레스룸이 딸린 마스터룸이, 여기서 계단을 더 올라 가면 욕실 2개와 방 몇 개가 더 있는 구조였다. 이 맨 위층에 있는 방 하나를 내가 쓰게 되었다.



부모님 두 분 다 아침저녁 출퇴근을 하시는 분들이고 같이 살고 있는 나랑 동갑내기 딸도 아침이면 회사로 나가고 나 역시 아침 8시 출근/오후 6시 쯤 귀가하는 패턴이어서 크게 불편할 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복병이 있었다. 이 집에서 40년 가까이 일하신 펠리파 할머니였다. 펠리파 할머니는 동료의 아버님 본가에서 집안 일을 시작하셨다가 아버님이 결혼을 하시고 이 집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하실 때 함께 들어와 그 때부터 지금까지 같이 지내시면서 집안 일을 해주시는 분이었다.


멕시코에는 출입문이 두 개 있는 아파트가 많다. 주 출입문은 현관으로 연결되어 있고 작은 출입문은 주방으로 이어져서 이 문은 '무차차'라 불리는 집안 일 도와주시는 분들이 주로 쓰는 문이다. 출입문이 두 개 있는 아파트 주방에는 보통 안쪽으로 문이 하나 더 있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방 하나와 작은 욕실이 연결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무차차'들이 이 공간을 쓴다.


처음에는 잘 몰랐다, 내가 미움을 받고 있다는 걸. 펠리파 할머니는 말수가 적고 다른 언어를 쓰시는 분이라(멕시코에는 공식적으로 68개의 언어가 있고 350여 개의 방언이 있다) 스페인어가 약간 서투셔서 가벼운 일상 대화 외에 길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딱히 없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차츰 가면서 미묘한 기류를 느끼게 되었다.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공기였다.


식사 후 내가 쓴 접시들을 씻고 있는데 할머니가 왠지 옆으로 더 커진 무서운 눈에 낮은 목소리로 설거지를 하지 마라 하셨다. 내가 쓴 사바나(본이불 아래에 덮고 자는 얇은 시트. 멕시코 시티는 일년 내내 기후가 온화한 편인데 밤에 잘 때 약간 서늘해서 약간 두툼한 이불 안에 얇은 사바나를 겁쳐서 덮고 자는 가정이 많다)와 베개 커버를 세탁기에 넣고 돌리고 있는데 옆으로 스윽 오셔서는 빨래를 하지 마라 하셨다. 샤워를 하고 난 후 욕실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며 바닥에 떨어진 물기를 닦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타나셔서는 욕실 바닥 청소를 하지 마라 하셨다. 이상했다. 뭐든 하지 마라 하셨다.



멕시코 일반 가정집에서 지내는 게 처음은 아니었고(90년대 후반에 멕시코 시티에서 차로 6시간 떨어진 과달라하라에서 몇 달 간 일반 가정집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내가 쓴 것들 내가 치우는 게 집안 일을 하시는 분으로서 혹시라도 불편하시면 당신이 하겠으니 안 해도 된다 하시면 될 일이라 생각했다. 적어도 나는 그리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 공기는 그게 아니었다. 할머니의 시선은 보이게 보이지 않게 나를 따라 다녔고 내가 무얼해도 못마땅해 하셨으며 내가 하는 것 중 할머니의 일과 겹치는 게 있을 때 마다 쏜살같이 바람 같이 날아와 폭풍 잔소리를 하셨다. 할머니에게 나는 숨만 쉬어도 미운 존재 같았다.


나는 뭔가 억울하기는 했는데 그 당시 회사 업무 강도가 높은 편이라 숨만 쉬어도 미움 받는 그 상황에 대해서 크게 집중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사건이 하나 터졌다.


어느 날 저녁 회사 일거리를 집으로 가져와 늦도록 노트북으로 자료를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출출함이 느껴져서 주방으로 내려가 냉장고에서 요깃거리를 찾아 먹었다. 접시 하나와 컵 하나 포크 하나를 썼는데 별 생각 없이 설거지를 하고 그릇 건조대에 올려 두곤 내 방으로 올라왔다. 그 다음 날 아침, 출근 전 간단히 아침을 먹고 나갈 생각에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있었는데 주방에서 루피타 어머니(동료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언성을 높이고 있으셨다.


"린밋(글의 흐름을 깨지 않기 위해 필명을 쓰겠다)이 어젯밤에 설거지를 하고 그릇을 제자리에 두지 않았어요! 지난 번에도 냄비와 그릇들을 쓰고는 제 자리에 두지 않았는데 한 두 번이 아니에욧!"


펠리파 할머니의 고성을 처음 들었다.


"린밋이 주방을 어떻게 쓰든지 그냥 두세요. 제자리에 안 두면 내가 정리를 할테니 주방 물건을 어떻게 쓰든 간에 그냥 두세요."


루피타 어머니의 고성도 처음 들었다.


"쟤는 가족도 아니고 손님도 아닌데 왜 우리집에 있어요? 나는 불편해요, 저 아이가"


그랬다. 나는 가족도 아니고 손님도 아닌 어정쩡한 어딘가에 있는 사람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나는 펠리파 할머니가 나를 '불편해 하고 있다'는 걸 몰랐다. 내가 미움 받고 있다는 건 어렴풋이 때로는 명확하게 알고는 있었는데 할머니가 나를 불편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 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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