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와 살아야 즐거운 사람인가
누구와 같이 살 것인가는 참 중요한 고민이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나는 누구와 살아야 즐거운 사람인가'이다. 비슷한 질문 같지만 다르다. 내가 같이 살게 될 상대방, 퍽 중요하다. 하지만 이 상대방과 같이 살게 될 '내'가 어떤 사람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떤 사람과 무엇을 할 때 즐거움을 느끼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 얼마나 있을까? 여기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참 많지만 오늘 여기에서는 '나는 누구와 살아야 즐거운 사람인가'에 대해서만 얘기해보자.
사랑하는 사람과 예쁜 집에 산다는 건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일이고 마음 맞는 친구와 같이 산다는 건 야호 야호 으아아아 신나는 일이다. 하지만 연인과 친구와 배우자와 한 집에 살게 되면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세계로 발을 디디게 되는데 누군가는 지옥을 경험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인간의 존재 자체에 실망을 하기도 하고 지금 알고 있는 걸 예전에 알았더라면, 하고 후회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못 견디고 집을 뛰쳐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어떤 사람들은 같이 사는 상대방이 더욱 좋아지기도 하고 혼자 살 때보다 훨씬 더 일상이 행복하고 같이 사는 것에 대한 만족도가 아주 높다고 느끼기도 한다.
왜일까? 이유가 뭘까? 어떤 사람들이길래 어떻게 살길래 그들은 서로 부대끼며 사는 그 일상이 평화롭고 즐겁고 행복한 걸까? 그냥 말 그대로 운이 좋은 사람들인가? 아니면 너무 사랑해서일까? 아니면 경제적으로 넉넉해서? 성격이 좋아서? 서로 너무 잘 맞아서?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단순히 생각해보면 '나와 대화 코드/취미 생활/가치관/성격이 잘 맞는 사람과 호감이나 애정을 바탕으로 서로 잘 맞춰가며 건강하게, 경제적으로 심각한 문제없이 살 때' 가장 이상적으로 즐거운 동거가 가능하다. 너무 당연한 말인가.
여기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나와 잘 맞는 사람'이다. 나는 누구와 살아야 즐거운 사람인가에 대해 충분히 생각을 해보고 또 생각을 해보고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정리해두면 나와 잘 맞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조금 더 빨리 알아볼 수 있고 나와 잘 안 맞는 사람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정신이 혼미해지는 사람으로 나타났을 때 훗날 아름답지 못한 순간들을 만나게 되기 전 여러 준비가 가능하다.
나의 동거 스토리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2012년, 오랜 준비 끝에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학교에 합격을 했다. 프랑스 퐁텐블로에 있는 학교와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학교 사이에 깊은 고민을 하긴 했지만 고민 끝의 결정은 마드리드였다. 두 종류의 시험을 준비하면서 주말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학원을 다니기도 하고 브라질과 멕시코 출장 중에 틈틈이 에세이를 쓰고 전날 회사에서 밤을 새우다시피 한 다음날 입학 담당자와 인터뷰를 하기도 하면서 입학을 준비했다.
출장이 잦은 직장을 다니면서 유학 준비를 한다는 게 힘에 부칠 때가 있기도 했지만 30대에 공부를 다시 시작한다는 설렘, 90개국에서 온 450명과 함께 수업을 듣는다는 것에 대한 기대, 준비 단계 단계 속 목표를 하나씩 해치워 나가는 성취감, 흥미로운 수업 커리큘럼에 대한 호기심, 새로운 곳에서의 살아보기 전에 느끼는 묘한 흥분감이 뒤섞여 만들어 내는 에너지 덕분에 도중에 접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다.
마드리드로 출발하기 몇 주 전 입학을 앞둔 한국 학생들 모임이 있었다. 출국 전에 인사 나누고 얼굴 익히자는 자리였다. 어색한 소개가 오가고 함께 식사를 하고 차 한 잔 하는 동안 내내 내 옆에 예쁘장하게 생긴 친구가 앉아 있었다. 두어 시간 같이 시간을 보내며 여러 이야기들이 오가는 동안 내 동거인 감지 안테나가 여러 번 울렸다. 나와 잘 맞는 사람 등장, 등장, 등장.
물론 나는 이미 여러 번의 동거 경험이 있는 상태이긴 했다. 20년째 주민등록상 동거인을 유지하고 있는 친구와, 멕시코에서, 콜롬비아에서, 온두라스에서, 캐나다에서 기타 등등. 경험의 횟수와 시간과 동거인을 감지하는 안테나의 성능이 정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여러 명의 동거인들과 함께 보낸 시간을 통해 나와 잘 맞는 사람들에 대한 데이터 베이스가 쌓여 있기도 했고 나는 누구와 살 때 즐거운 사람인가에 대해서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아주 진지하게 생각해두기도 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만난 지 반나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내게 맞는 동거인임을 알아본다? 이 예쁘장하게 생긴 친구의 경우는 말이 된다. 식사 한 끼와 차 한 잔 하는 두어 시간 동안 어떤 모습에 내 안테나가 신호를 마구마구 울려댔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장에서 자세히 다루어 보겠다.
안테나가 여러 번 정확하게 신호를 보냈다. 나는 모임이 끝나가기 전 평소 잘하지 않던 나이 묻기와 그럼 우리 말 놓을까 세트를 실행하고 언니라 부를래 부록까지 늘어놓았다. 그러곤 과감하게 직진했다.
"언니랑 같이 살자"
이미 큰 눈이 더 커졌다.
"네?"
"집 구했어?"
"아뇨, 아직 안 구했어요."
"혼자 살 계획이야?"
"아직 잘 모르겠어요."
미국에서 초중고대학교를 졸업한 이 친구는 적잖게 당황한 거 같았다. 오래 떠나 있는 사이에 한국 문화가 많이 바뀐 걸까 고민했을 수도 있겠다. 더 커진 눈에 긴장과 걱정과 황당함이 그득 했지만 나는 보았다, 그 틈 사이에 호기심과 흥미로운 감정선 하나가 쉬익 지나가는 걸. 내 안테나가 신호를 다시 보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능한 한 모든 좋은 말들과 그 친구가 혹할만한 이야기들을 최대한 빠른 시간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끄집어내서 막 던졌다.
"스페인 가서 연락 주시면 생각해볼게요"
으흐흐. 우리는 결국 같이 살게 되었다.
꼬맹이(한국어가 서툴러서 그렇잖아도 어려 보이는 말투가 더 어리게 느껴지는 친구니 편의상 꼬맹이 친구라 부르겠다) 친구와 나는 죽이 잘 맞았다. 이때만 해도 남미에서의 생활 방식과 약간 외국인스러운 사고방식이 부지불식간에 내 몸 여기저기에 진하게 붙어 있을 때라 집안에서의 내 공간에 대한 선이 분명했다. 같이 살긴 하지만 따로 사는 것 같은 '따로 또 같이 방식'의 라이프 스타일이 익숙했다. 각자 장을 봐와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음식을 해 먹고 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때는 그날그날 먹고 싶은 음식 위주로 어느 한 명이 중점적으로 요리를 해서 즐겁게 같이 먹고 다른 한 명은 능동적으로 정리를 하고 식사 시간이 다를 때는 즐겁게 혼자 먹고. 각자의 일정이 있고 약속이 있는 상태에서 시간 맞는 날이 있으면 같이 어울리고. 적당히 거리가 있는 듯하지만 꽤 가깝고 가까운 듯 하지만 선이 분명한.
꼬맹이 친구와는 이 생활 방식이 아주 잘 맞는 편이었다. 스페인으로 가기 전 나도 친구도 여러 명의 동거인들을 거치면서 '타인과의 동거'에 대한 각자의 방식이 있었고 그녀와 나의 방식의 교집합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다.
우리가 살았던 아파트는 학교에서 뛰면 3분 걸으면 5분이 채 안 걸리는 곳에 있었다. 문을 열면 주방으로 통하는 복도가 있고 복도 왼편으로 가면 방이 오른편으로 가면 거실이 있는 구조였다. 방 두 개가 벽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었다. 수업이 가장 많이 몰려 있던 첫 학기 평일에는 아침 9시에 등교해서 새벽 3시까지 학교에 있는 날이 많았는데 푹 쉴 수 있는 주말이면 배가 고파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까지 자곤 했다. 쉬크하고 말수가 적은 꼬맹이 친구는 무심한 듯 신경 그리 안 쓰는 듯했지만 내가 늦잠을 자고 있을 때면 조금조금 슬그머니 방에서 나와 내 방에서 멀리 떨어진 거실 소파에서 시간을 보내더라. 꼬맹이 어머니가 한국에서 먹을거리를 챙겨서 보내주시곤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상자 가득 담겨 있는 여러 음식들 중 내가 잘 먹는 음식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늘어나더라.
나는 잔정이 많은 편도 아니고 은근 자기중심적인 데다 개인적인 면도 많고 까다롭기가 하늘을 찌르고 설상가상으로 예민하기까지 하다. 나는 술을 전혀 못하고 커피를 못 마시며 탄수화물류의 음식은 양이 꽤 적은 편이고 집먼지 진드기 알레르기가 있어서 이불이나 수건 세탁을 자주 해야 한다. 운동을 좋아해서 몸을 많이 움직이는 활동들로 여가 시간을 보내는 편이나 한 번 마음먹고 쉬어야겠다 할 때면 며칠을 집 밖으로 전혀 나가지 않고 미국/영국 드라마 시즌 몇 개를 정주행 하기도 한다. 내성적이면서 적극적이고 낯가림이 분명히 있으나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순하고 착한 구석이 있어 보이지만 날카롭고 못된 면이 적잖게 있고 이야기를 술술 늘어놓다가도 말수가 적어지기도 하는 '다중이'스러운 면도 있다.
마음 단단히 먹고 얼굴 붉어지는 거 꾹 참아가며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에서 '동거인'으로서의 나를 평가하자면 '같이 맞춰가며 살기 난이도 상'인 유형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과 살아야 즐거운 사람인지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고민해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언제 신나 하는지 언제 무엇을 할 때 기분이 좋은지, 내가 견뎌낼 수 있는 상대방의 단점은 어디까지인지, 나와 잘 맞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가며 정리를 해두는 게 더 필요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나와 잘 맞는 꼬맹이 친구를 예상치 못한 타이밍(그녀를 모임에서 만나기 전 나는 이미 마드리드에서 혼자 지낼 준비를 끝내 둔 상태였다)에 기대하지 않았던 장소(나와 같은 과정에 입학 예정인 동기들은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남자들이었고 대부분의 입학 준비생들이 남자들이었다. 아 물론, 남자 중에 꼬맹이 친구처럼 한눈에 이 사람이다 할만한 사람이 있었더라면 더욱 적극적으로 더 강렬하게! 직진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남자였더라면 알아보는 데에 시간이 조금 더 걸렸을 게다. 여기에 대해서도 다른 장에서 이야기 풀어보겠다)에서 만나 그녀를 알아보고 제안하고 같이 살게 되고 같이 살았고 즐겁게 헤어졌다. 학위를 따는 과정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는데 그녀가 많은 부분 힘이 되어주고 의지가 되었고 때로는 깊은 휴식을 주었다.
누구와 살아야 즐거운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에 쏟았던 시간과 에너지가 빛을 발하고도 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