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동이 힘든 어른에게의 효도는 더욱.
명절에 본 엄마의 얼굴에는
딸을 본다는 설레임보다,
딸에게 말할지 말지를 망설임이 잔뜩이었다.
대체로는 알아봐야 해결해줄 수도 없는 문제인데다가,
스스로 걱정과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는 엄마 개인의 성향도 있기에
굳이 캐묻지 않았다.
그리고는 찾아뵌 할머니 댁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할머니는
나가고 싶은데 자식들이 아무도 당신을 데리고 나가주지 않으니 이렇게 괘씸할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평상시에도 동네 20분을 채 걷지 못하는 어른을
집 안에서도 걷지 못하는 어른을 어쩌자고
차도 없는 자식들이 데리고 나갈 수 있는지는 괘념치 않았다.
이미 엄마의 환갑여행을 계획해본적이 있으니
당신을 데려갈 수 있지 않냐는 말과 함께.
엄마에게는 그때 네가 수술만 안했으면 여행 갔을 것 아니냐는 모진 소리까지 뱉어냈던 모양이었다
온 집안 식구들을 다 데리고 가면
할머니 한사람 못 들쳐업겠냐만,
나 혼자 할머니를 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엄마에게 다시 말하니
할머니가 나에게도 끝내 말했냐며 속상해했다.
엄미가 속끓이고 있는걸 마냥 보고 있을 수 없어
검색기만 한참 돌려보았다.
아무래도 계산하게 되고 어려운 점들만 보였다.
저지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일단 비행기표를 질러두고
항공사에 문의했다.
휠체어로 이동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하는지.
내가 각오해야 할 몇가지들을 읊어주는데,
머리가 지끈했다.
되도록 브릿지를 설치해두겠으나,
만에 하나 계단을 올라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며,
할 수 있다고 서약해야만 태워준다는 것이다.
내가 업는다고 하니,
노년에는 갈비뼈가 잘 부러지는데
그걸 알고 있는지를 물었다 .
할머니가 평상시에 보조기에 기대어 보행을 할 수 있지만
계단도 오르시지만,
유독 비행기 계단은 가파르지 않던가.
할머니는 내가 해내고야 말겠다고 큰 소리를 치시고,
나와 엄마는 그걸 믿을 수 없어 동네라도 가자고 했다.
너희 차는 낮아서 못탄다 하시며
비행기를 타봐야겠다고 하시는 통에
고민이 많아졌다.
당장 공항까지도 그 낮은 차를 타셔야 되는데,
그런 어려움은 보이지 않으시는 모양이다.
옆에 삼촌과 이모들도 거든다.
가신다 하는데 좀 도와주라며.
나는 20년전을 떠올리며 치밀어오르는 짜증을 삼킨다.
20년 전에 할아버지 살아생전에
내가 결혼하기 전에 대학시절 모은 용돈으로
두분 택시 투어 시켜드린다고 할 때
이모 삼촌들 왜 반대했으며
할머니는 그때도 내 나이 많아서
어딜 가냐고 하시지 않았느냐고
뱉어내고 싶었지만.
별로 현 상황을 타개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