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계절을 준비하다.

선풍기를 넣고, 커텐을 걸다.

by 올망

할머니 댁에는 꽤 오랜만에 방문했다.

할머니는 여전히 쟁쟁한 목소리로 불만을 쏟아냈다.


전화하지 않는 손주들,

와서 누워있는 삼촌들,

설거지 하지 않는 숙모들,

자주 안오는 엄마와 이모들,

닳고 닳은 지갑에 머무를 날 없는 돈들.


열 손주들이 아무도 전화를 하지 않는데

걔 중에 당신이 길러온 손주라고 전화하는 녀석은 맨 힘들다고 전화한다고.

직장이 안힘든게 어딨냐며 불평이었다.


그 직장 힘든건 업계에서도 원체 유명하니,

나는 "할머니, 그나마도 안받아주면 그 손주마저도 전화안해요"라고 대꾸하며,


"올 여름 선풍기 안쓰실거면 닦아서 넣을까요"하고 묻는다.

"아유, 오랜만에 와서 뭘 힘들게 해~ 건너방에 하나 더 있어."라는 답에

"할 거 있음 빨리 내놓으셔요. 또 누가 안한다고 투덜거리지 말고."하고 툭 내뱉었다.


할머니는 또, 한껏 움츠려들어 "없어" 하신다.


그래도 요양치료사 분이 움직이기 힘든 것들도 분명 있을터라

기왕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거 집을 한바퀴 둘러본다.


"할머니 커텐 빨아서 달아야 될 것 같음 말하셔요"

"그걸 니가 뺄 수 있냐?"

"하고 싶은지를 말씀하셔요. 알아서 빼놓을테니"

"할 수 있음 좀 빨아놔라"


빼면서 보니 언제 빨았을지도 모르겠다.

"언제 빨았어요?"

"몰라~ 기억도 안나"

"안 빨고 싶었던거예요?"

"아니"

"그런데 왜 말을 안해~"


할머니는 빽하고 소리치며, 삼촌들은 집에 오면 누워있기 바쁘단다.

누워있어도 시키면 돼지 않냐는 말에,

그걸 또 어떻게 시키냔다.


할머니는, 집에 오는 삼촌들이 고맙지도 않지만,

막상 또 무언가를 시키기는 귀한 모양이다.

당신이 먼지가 그득한 커텐과 사는 한이 있어도..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고 했더니

그렇게 아들만 귀하다고 딸은 차치하고 키우더니, 본인 딸까지 막 대한다며 서운해했다.

심지어는 손주도 아니고 막내 딸같이 대하는 거 같아 속상하다고.


자라는 중간에 할머니 손 많이 탔으니, 그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또 엄마 나름의 서운함이 쌓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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