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는 날에 춤을 추는 것을 기대한다.
사람은 비를 피할 우비를 구매하고, 우산을 비축할 수 있다.
장화를 신고, 우비를 입더라도
폭풍우가 불어오는 날에 비에 젖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아무리 예보가 있더라도
매일 매일을 준비된 상태로 우산과 우비와 장화를 들고 살더라도
어느 날에는 고무가 다 삭아버리거나,
누군가의 우산과 부딪혀서 찢어지거나 해서 비에 젖을 수 있다.
예보가 없어서 놓고 나갔지만,
급작스럽게 변한 날씨에 대응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아무리 차로 이동을 하고, 실내에만 있더라도
나가야만 하는 날에
나의 준비물들이 비를 피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기꺼이 비를 맞아도 즐거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니면 내가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을 정하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비를 뚫고 해야 하는 일들을 잠시 뒤로 하고,
내리는 비가 멈출 때까지 잠시 기다리는 것이다.
물론 내가 매일매일을 비에 대비하여 살 수는 있다.
하지만 내 인생의 시련은 비 뿐이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시련은 내가 기꺼이 이겨내겠다고 다짐할 수도 있다.
아니면 누군가에게 시련인 어떤 도전들은 다짐 따위 필요 없을 정도로 그저 즐거울 수도 있다.
내가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감수할 수도 있는 어떤 시련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미 겪어본 시련이어서 어떻게 극복하는지
극복하는데 필요한 준비물도 알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시련은 이미 겪었고,
내가 그걸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고,
그 뒤에 필요성조차 공감할 수 없는 상태라면,
그 시련이 지나갈 때까지 그저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느 지난 날에는
그것이 포기인 것 같고,
그것이 패배한 것인 것 같아,
나가서 비를 맞아 감기에 걸릴 것을 알고,
그것을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소요된 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리하게 밖에 나갔다.
이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패배자의 변명일지라도
비를 맞고 싶어하지 않는 나를 존중하고,
감기에 걸리지 않고 마주할, 비가 멈춘 날에 하고 싶은 일이 많은 내가 기대된다.
오늘도
예상할 수 없는 비를 흩뿌리고 있는 누군가들에게.
기다림을 배울 수 있는 하루를 주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