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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절은 시식입니다

부디 시험에 들어 통과해주세요

by 올망

저는 친절한 사람이예요.

그리고 동시에 아주 싸가지가 없는 사람입니다.


대체적으로 공짜인 저의 호의를

맡겨둔양 지속적으로 내놓으라는 사람들에게 가차없습니다.


누군가는 저에게 물어요.

그럴거면 처음부터 친절하지 않는 편이 낫지 않느냐고.

내가 친절했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그렇게 행동해도 된다는 여지를 주었으니

상대는 허락을 받았다고 느꼈을지 모른다고.


저는 되묻습니다.

길 가는 이의 가방 지퍼가 열려서

돈이 떨어지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내 돈을 가져가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를.


저는 제가 가진 친절함과 상냥함의 계좌에서

꺼내쓰고 있습니다.

다시 채워지지 않는다면 저는 언젠가 포악해지겠지요.

그래서 저는 제가 지출한 상냥함에

등가교환을 해주거나 이자를 쳐서 돌려주거나 할 사람을 찾는 것 뿐입니다.


하지만 시식처럼

우선적으로 친절함을 베푸는 것은

누군가의 친절에는 마중물이 필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모든 상황에 상냥함도 불친절함도 없는 방식으로

반응하는 누군가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친절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을

여러차례 목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그런 이들은

여태까지 분출하지 못했던 친절함을 배로 되갚아줍니다.

저로써는 그 마중물이 크게 돌아오는 경험도 하는 거지요.


저는 처음부터 기꺼이 그리고 앞으로도 친절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최선을 다해서

심지어는 지금이 아닌 언젠가일지라도

그 친절에 보답해줄 것을 믿을 수 있다면요.

그러니 부디 나의 시험을 통과하여

나의 계좌에 당신의 친절함을 입금하여 주세요.


당신에게 되돌려드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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