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비데를 설치했다.

아빠가 할머니 댁을 방문해서 비데를 설치했다.

by 올망



엄마는 할머니가 입원할 당시에 신우신염으로 인한 염증이 전신으로 번졌다고 했다.


할머니는 등이 굽은 전형적인 노인이었다. 문득 생각하니, 큰일을 보고 나면 뒤로 닦아내는 것이 어렵겠다 싶었다. 할머니에게 혹시 앞으로 닦아 내시는지 여쭤봤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손이 뒤로 닿겠냐 안 닿겠냐로 한참을 역정 내셨다.


앉아서 뒷물을 하시는 것도 힘들겠다 싶어, 엄마에게 할머니 신우신염이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는 비데가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엄마보다 덜 방문하는 나는, 엄마에게 비데는 잘못 연결하면 물이 세기도 하니 되도록이면 공임비를 주고서라도 설치를 하기를 당부했다. 그다음에 방문하니 깨끗하게 비데가 설치되어 있었다.


"할머니, 비데는 누가 사줬어?"

"누가 사긴 누가 사, 너희 이모 삼촌들이 모으는 생활비로 내가 샀다."

"공임비도 할머니가 냈어?"

"웬일로 너희 아버지가 와서 설치했어"


할머니와 함께 살다가 독립한 이후에, 어느 명절에도 아빠는 할머니 댁을 가지 않았다.


본인 스스로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에게 천대를 받았다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변변한 직업을 가지지 못한 것에 부끄러웠던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아빠는 친할머니와 고모들에게 실망하여 본가에 가지 않았고, 그와 비례하여 처가에도 발길을 끊었다. 부인과 자식들이 본인의 본가에 가는 것은 금지했지만, 처가에 가는 것은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 조금 다를 뿐.


그랬기에, 나는 아빠가 할머니 댁에 가서 비데를 설치했다는 것이 할머니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할머니 치매기가 있는 거 아냐?"

"왜 갑자기?"

"아빠가 비데를 설치해줬다고 그러시던데?"

"아빠가 설치한 것 맞아. 네 남편도 처 할머니를 그렇게 병간호를 하니, 너희 아버지도 반성을 조금 하기 시작했나 봐."


나의 남편은 나의 자라온 환경과 재정상태에 대하여 모두 이해한 상태로 결혼했다. 이런 가정환경도 보듬겠다는 마음을 표현해왔었다. 남편은 표현뿐만 아니라 나의 할머니, 장인과 장모에게, 그리고 처남에게 나보다 더 넓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아빠는 자신의 사위를 통해 비단 선물이 아니더라도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 있는 것들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내 남편은 명절이면 엄마 아빠보다 먼저 할머니에게 들렸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만두를 꼭 챙겨가자고 했다. 그리고, 용돈을 챙겨가는 날에는, 할머니가 다시 다른 손주들에게 나눠줄 수 있도록 만원이나 오천 원 단위로 돈을 찾아가도록 신신당부했다.


그런 사위를 보며, 아빠도 무언가는 느꼈으리라.




엄마와 통화를 끝내고 나니, '할머니가 치매가 아닌 것이 어찌나 다행인지'라는 생각보다 아빠가 철들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 아빠가 이제서 철드려나 봐. 환갑 먹고 조금 늦기는 했지만"

할머니는 호탕하게 웃으며,

"그래, 철드나 보다.

너희 아버지랑 같이 살 때 병원 한 번을 같이 안 가고, 따로 살면서는 엄마랑 한 번을 같이 안 오더라. 그러더니, 요즘은 엄마 올 때 데려다주는 거 같더라. 같이 집안으로 들어오진 않아도 밖에 서있는 모양이야. 요즘은 병원에도 같이 가고 그래." 했다.


나는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잠들어 보지 못했던 것도 말해주었다. 아빠는 밤늦게 작은 이모부와 작은 삼촌을 데리고 술을 마셨다. 나는 장인어른 상가에서도 술 마시는 모습이 싫어 들어 가버렸다. 할머니 말에 따르자면, 아빠는 술을 마시다 말고 한참을 울었단다.


"아버님, 아니었으면 오갈 데 없는 식솔들 길거리에 나앉을 뻔했어요. 덕분에 큰 자식 번듯한 직장도 다니고 작은 자식 병치레도 했어요. 평생을 죄송했는데, 표현을 못했어요." 하며.


아빠는 생전에 할아버지 식습관을 닮아 동생이 당뇨라며, 가족력에 대한 원망을 했다. 당신을 찍어낸 듯이 닮은 내가 부신이 안 좋다고 진단받기 전까지. 동생의 신장이 약한 가족력에 양가의 유전지기 같이 작용했을 텐데, 마치 좋지 않은 건 상대의 흠결 인양 헐뜯었다.


그랬던 사람이 할아버지 영정 앞에서 울었다는 건 덩그러니 앉아있던 엄마와 처연하게 앉아있었던 할머니와는 또 상반되는 일이었다.


그러고는 할마니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할아버지도 평생에 사위가 자신을 원망하는 걸 아셨다고.

살아생전에 그 얘기를 듣고 가셨으면 마음에 돌덩이 하나 덜고 가셨을 텐데, 그게 아쉽다고. 그나마 가시는 길에라도 듣고 가신 것이. 당신은 살아생전에 들으신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남들은 너희 아버지 백수 놈팡이라고 해도, 너는 너희 아버지가 느려도 철이 드는 걸 알아봐야 한다며. 바라건대 친할머니 살아계시는 동안 철이 들었으면 한다고. 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접어두고, 치매가 더 심해지기 전에 아쉬운 마음 나누었으면 한다고.


분명 할머니도 사위에게 서운했을 것이다. 그 시절 집안 밑천이던 큰딸을 임신 씩이나 시켜 결혼했으면 잘 살일이지. 반지하 전전하다, 아파트라도 구해 조금 마음 내려놓나 싶더니 사업을 쫄딱 해먹고도 그 시절 좋은 집에 살던 시댁 식구 누수 하나도 받아주는 사람이 없어 처가도 들어왔으니. 그러고도 변변한 일자리도 없이, 집안일도 하지 않은 채 술이나 마시던 사위가 예뻤을 리가 만무했다.


그럼에도 할머니 보기에는 환갑을 갓 넘은 사위가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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