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응급실에 입원하다
동생은 응급실에 입원했다.
할아버지가 계실 때, 할머니는 엄마를 자주 호출하는 편은 아니었다. 말동무가 있었고 손발처럼 부릴 수 있어서였을까. 밤에 청소하는 일을 하는 엄마를 자주 부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안 계신 후부터는 더 자주 전화했고, 오지 않는 날에는 오라고 성화였다.
엄마가 가는 날에는 밀린 심부름을 시켰다. 많은 부모 자식 관계에서 도드라지듯이, 장녀는 엄마에게 또 다른 남편이자 친구였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그런 존재였다. 남편이 없는 할머니는 더욱더 장녀에게 의존했다.
밀린 심부름 중에는 생수 사 오기도 있었는데, 노인 혼자 뜨거운 물을 끓이기도 생수를 나르기도 힘들어서였다. 할머니는 요양보호사에게 집 밖의 일을 부탁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형제들에게 필터형 정수기는 감당하기에 비쌌고, 큰 생수통을 꽂아 넣는 정수기는 할머니도 요양보호사도 물통을 교체할 수 없었다.
그 덕에 엄마는 전보다 엄마의 가정에 비해 할머니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를 보며, 아빠와 싸울 때마다, 동생이 아플 때마다 전화하는 엄마를 연상했다. 엄마는 좋은 일이 생겼다고 내게 전화하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에만 내게 전화했다.
엄마는 내게 보호의 대상이었다. 그게 내가 엄마와 매일 통화했던 이유였다. 대학교를 입학한 뒤로는 엉망진창인 집에 엄마를 두고 나 혼자 독립했다는 죄책감과 함께.
통화를 할 때는 즐거운 이야기만 전달하려고 했는데, 엄마는 거기에 양가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베풀어줄 것이 없어서 미안한 상황에도 아이가 잘 되어서 다행이라는 한편, 너에게는 주어진 기회가 많고 스스로 같은 엄마가 있어 그런 기회를 누릴 수 있다는 질투의 감정.
내가 눈치가 빨라 알아챈 감정이 아니었다. 엄마는 그런 감정을 숨기지 않고 얘기했다.
할머니 역시도, 엄마에게 그런 양가감정을 느꼈다. 너는 죽네 사네 해도 함께 하는 남편이 있지 않느냐는.
엄마가 할머니에게 시간을 할애할수록, 할머니의 의존도는 더 높아졌다. 엄마의 마음과 시간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동생에게서 할머니로 옮겨갔다. 예민한 동생은 바로 알아차렸다.
동생의 인간관계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엄마와의 관계가 조각나자, 동생의 몸이 반응했다. COVID-19 확진자가 한창인 시기였다. 동생은 취약군으로 분류되어 이미 백신도 두 차례 접종한 후였다.
밥맛이 없다며 한 끼도 하지 않은 채 일주일 동안 기침만 해대었다. 엄마는 심장에 무리가 간 것 같으니 원래 다니던 병원 응급실을 가보라고 성화였다. 동생은 그마저도 채혈이 싫어 버텼다. 혈관이 도드라지지 않아 항상 채혈에 곤욕을 겪었다. 동생에게는 병원 치료를 거부할 만큼의 고통이었다.
더 이상 기침할 기운도 없을 지경이 되자 아빠가 응급실로 끌고 갔다.
COVID-19 검사 결과가 채 나오기도 전에, 심장박동을 잃어 코드 레드 상황이 되었다. 다행히 제세동기를 이용해 곧 깨어났지만 중환자실로 입원해야 했다. 명절 일주일 전이었다. 꼬박 3일을 중환자실에 있었다. 중환자실에는 휴대폰 반입이 안되니,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잠을 자겠거니 추측할 뿐.
이것이 명절 일주일 전의 상황이었다.
동생이 중환자실에서 나오자, 아빠는 다시 한번 PCR 검사를 하고, 보호자를 자처했다. 보호자를 바꿀 수 없었기에 일이 없는 상황에서 직장이 없는 사람이 그 책임을 도맡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온 신경은 동생에게 있었다.
밤에 일을 하는 특성상 낮에는 자야 했음에도 동생의 일거수일투족에 핸드폰이 향해 있었다. 쪽잠으로 지낸 얼굴은 당연히 티가 났다. 할머니는 자식이 그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는 상황이 되자, 아차 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명절을 앞둔 일주일을 보내자, 명절에 나를 두고 혼자 갔다며 할아버지를 원망하며 한탄했다
나에게는 할머니의 한탄보다는, 동생이 퇴원하는 것이 중요했다. 동생은 신장이 제 기능을 못하면서 몸에 축적된 칼륨 때문에 심장이 무리가 왔다고 했다. 심장에 무리가 가면, 흔히 먹지를 못한다고 하는데, 동생은 일주일 가량 곡기를 끊고 링거로만 영양분을 섭취하고 있었다.
심장질환자의 병원식은 다른 병원식에 비해서도 특히 간이 없다. 동생은 맛이 없어서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