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가족을 위해 헌신했고, 그 모양새는 대리 노동이었다.
엄마는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엄마의 표현에 따르자면, 그래서 그런 넓은 마음이 없었다. 남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할 수는 있었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느끼지는 못했다.
말하자면 남존여비 사상 같은 것들이었다. 남존여비 사상이 잘못됐다고 늘 말했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항상 아들에게 더 손을 내밀었다.
동생이 퇴원하고 몸이 조금씩 회복되자, 동생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누워 TV만 보고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동생이 설거지라도 하도록 시키라고 했다. 엄마는 남자아이가 설거지를 하면, 나가서 자존심이 죽는다며 한사코 사양했다.
내게 항상 남녀 차이가 없다고 가르쳤지만, 사실 엄마의 선입견 속에 살림은 여자의 몫이었다. 그리고 본인이 선입견을 가졌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에, 나에게는 여자라도 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누누이 말했다.
덕분에 전공을 선택할 때나, 흔히 남성들이 많이 하는 스포츠를 할 때에도 잔소리는 없었다. 하지만 막상 술을 먹고 늦어지면, 엄마가 데리러 나와 자리를 파투 내거나, 동생 보고 데리러 나가라고 시켰다.
혼자 하는 여행은 절대 안 되니 동생을 보호자로 데려가라고 했다. 공대에서의 오티를 갈 때면, 다른 모든 이들의 전화번호를 두고 가게 했다.
나는 아빠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될 때까지, 아빠 성격의 문제라고 치부해왔다.
동생이 아프지 않을 때조차, 자기 식사 한 끼 챙기는 것을 엄마가 도맡아 하는 것을 보고 엄마가 가족들을 길들인 이유도 있겠구나 싶었다. 엄마는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한 가족들이니 스스로의 에너지를 소진해가면서라도 베풀고 싶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보살핌이 썩 그렇게 좋은 작용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아빠는 만성적으로 역류성 식도염이 앓았다. 식도염에는 술과 커피가 크게 영향을 끼친다. 동생이 퇴원한 어느 날도, 식도염 때문에 고생하길래 커피 대신 다른 음료를 시도해보라고 했을 때, 아빠는 엄마가 사다 주지 않아서 못 먹는다고 대답했다. 엄마는 직장을 다니고, 집안 살림을 다 하는데도.
아빠는 젊은 날에 10년 정도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의 돈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엄마의 노동으로 교환해 온 월급으로 생활했다. 말하자면, 노동을 해서 그 대가를 얻어본 적이 거의 없다.
엄마는 아빠가 일하지 않는 동안, 가장 기를 죽이면 밖에 나가서 할 일도 못한다며, 한 번도 재촉하지 않았다. 묵묵히 집안일을 했다. 심지어는 아빠가 애정이나 즐거움이라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동안에도. 아빠 본인은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쟁취해야 할 무언가가 없었던 것이다.
흔히 말하는 결핍이 결핍된 상태였다. 큰 것을 바라지도 않았고, 바라는 모든 것은 엄마의 대리 노동으로 얻을 수 있었다.
자라는 동안 나는 그런 엄마가 고마웠다. 엄마는 나를 위해서도 많은 부분 대리 노동으로 채워주었다. 할아버지가 슈퍼를 닫으면서, 오토바이로 등하교를 시켜줄 수 없게 되면서부터 엄마가 등하교를 시켜주었다.
친구들을 사귀지 못할 것이 걱정이 되어 녹색어머니회에 가입해서, 그 엄마의 딸들과 친구가 되도록 독려해주기도 하였다. 먼 거리에 있는 대학을 갔음에도, 밑반찬을 해서 가져다주었다. 하물며 내 대학 동기들의 끼니까지 신경 쓰는 엄마였다.
자라고 나니, 내가 생선뼈 하나 제대로 바르지 못해서 식사 메뉴로 생선구이를 고르지 못할 때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된 사람이구나, 나는.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 그렇게 만들었구나.
엄마야 애정으로 한 일들이었으며, 엄마의 시간과 건강을 깎아내려가며 한 행동이었다. 그런 행동들이 가족들에게 별로 생산적인 도움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보고 자란 것이 그런 모습이라 그걸 인지한 상태의 나 조차도 그렇게 행동하고 있었다. 건강한 편의 몸은 아니라, 늘 쉽게 지치는 편이었다. 나의 회사생활이 아무리 피곤했어도, 남편이 해달라는 음식을 하기 위해 새벽녘에 눈을 떴다. 나는 구겨진 옷을 입더라도, 남편의 옷은 다렸다.
다행인 것은 나의 남편은 아빠와 다르게, 내가 그렇게 하는 걸 포기시키려고 애썼다. 다 마른빨래를 본인이 개고, 내가 먹은 음식의 설거지도 해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비슷한 비용을 들여 결혼했고, 비슷한 월급을 받는 서로의 입장을 생각했을 때 당연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남편의 모습이 때때로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동생의 집안일까지 만류하는 엄마를 보며, 아빠가 처음부터 집안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을지 의문이 생겼다. 비록 지금의 남편이 나를 많이 배려하는 사람이지만, 내가 지속적으로 불편해한다면 먼 훗날에는 나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나에게 대리 노동을 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나는 지금 학습의 기로에 있다. 남편이 하는 살림에 감사하고, 그가 필요로 하는 수준의 노동만 제공하는 걸 연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지고 있는 거다. 지금을 놓치면 아빠 같은 사람과 살게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