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한껏 찬란했다.

늘 어둡기만 하지는 않았다. 그런 시절도 분명 있었다.

by 올망


이윽고 크리스마스가 왔다. 남편은 트리를 집 밖에서만 봐서, 집안에서 반짝이는 트리에 환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새 집에는 한껏 큰 트리를 설치했다. 지난 여행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을 들려 사온 장식품들은 이제야 햇빛을 보았다.


반짝거리는 트리를 보고 있자니, 빚쟁이들에게 쫓겨나다시피 할머니 댁으로 이사 가기 직전의 크리스마스가 기억이 났다. 우리 집에 둔 큰 트리를 구경하겠다고 고종사촌들이 놀러 왔고, 모두가 고깔 모자를 쓰고 캐럴 메들리를 틀어놨다. 아빠는 캠코더를 들고 그 모습을 촬영하겠다고 돌아다녔다.


어린 동생은 닭다리를 하나 부여잡고 케이크를 어떻게 먹어볼까 궁리하고, 사촌오빠는 아빠에게 캠코더를 뺏어 영상을 찍어보겠다고 실랑이했다.


그날 밤이 얼마나 길었는지, 무슨 얘기를 했는지, 얼마나 즐거웠는지는 기억에 없다. 내가 국민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던 것 같으니까. 하지만 그 잔영이 일렁이면, 흐뭇하게 미소가 떠올라서 참 찬란했구나 싶은 순간의 기억이다.


국민학교 입학 이후로 이렇다 할 학원이나 과외도 없이 대학을 가고, 유학이나 어학연수도 없이 취업을 했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았으나 사람들을 만나 소통을 했고, 내가 잘 듣지 못하는 것을 모르는 채로도 나와 대화하는 걸 즐기는 사람들도 제법 생겼다. 누군가는 인생이 다난했다고 주저앉아 울었을만한 사연 인지도 모른다.


아빠가 밥벌이를 하던 시절에조차 엄마는 내가 장애를 두려워할까 봐 걱정했다. 그래서인지 장애를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들려주었다. 내가 더 나이를 먹고서는 오체불만족을 쓴 오토다케 히로타나 스티븐 호킹 박사의 이야기에 눈이 가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스티븐 호킹 박사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무엇이든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해도 되지 않는 시간의 역사 같은 책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공백들은 누군가의 노력과 시간들로, 대부분은 그것이 엄마의 노력과 시간으로 채워졌다. 그래서 누군가가 보기에 어렵다 하는 환경에서 자랐어도, 어디 내놔도 사회성 좋고, 적응력 있는 어른으로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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