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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Apr 24. 2021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쓰는 무기력증에 대한 이야기.

가볍게 살자 뭐 어때 tlqkf.

오늘은 클라이언트와 정기 주간 화상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오후 12시에 시작해 3시가 넘어서야 끝난 기나긴 회의. 끝날  같으면서도 다시  말의 물꼬가 트고, 마무리가   같으면서도 얇은  줄기가 사라지지 않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자연스레 북마 탭에 놓인 브런치를 눌렀다.


 언젠가 하루를 꼬박 무기력증에 빠져 밥도 일도 미루고 어둠이 올 때까지 캄캄한 방에 누워있었던 날이 있었다. 그 와중에도 종일 쉬었던 덕분인지 밤이 되니 정신이 말똥 해지고 몸도 가벼워져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브런치에 무기력에 대한 내 소견을 이러쿵저러쿵 적어두고 (대충 무기력증을 해소하겠다는 다짐) 서랍에 고이 모셔두었다. 당시 내 감정을 뱉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글이었지만 발행을 누르기까진 한참 모자란 멋짐이었다.


내 글 서랍엔 당시 쓰고 싶었던 이런저런 소재의 쓰다만 글과 정리안 된 단상의 조각들이 여럿 있었다. 왜 딴짓할 땐 집중도가 향상되는 걸까? 오늘 중 서랍 속 글 하나는 무조건 정리한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고 어서 회의가 끝나기만 기다렸다.






어느덧 회사 밖에서 일한 지 2년 3개월이 지났다. 아무튼 난 요즘 머리도 마음도 골고루 쓰며 바쁘게 보내는 중이다. 여전히 재택근무 기반이라 혼자 일하는 시간이 많지만 2년 내 가장 큰 변화라 함은 함께하는 팀원이 2분이나 생겼다는 점이다. 덕분에 숙원사업이었던 개인 쇼핑몰도 오픈했고, 무엇보다 본업을 더욱 잘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2년 전 꽤나 긴 시간 동안 심한 우울감에 빠졌었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나의 하루는 많이 밝아졌다. 괜한 것에 슬프지 않고 하루 중 불안감을 느끼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참 좋은 나날이다.


참, 2019년 아늑한 우울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 문득 내 뇌리에 박힌 강한 깨달음이 있었는데.

'내가 느끼는 이 어두운 감정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고, 다신 아무 걱정 없이 밝았던 이 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였다. 물론 당시 상황으로 보아, 한 쪽으로 치우친 감정을 인지했음에도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나쁘지만은 않은 깨달음이었다. 실제로 위 사실을 받아들인 후 나는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현실을 직면하고 기대치를 낮추었기 때문이다. 현 능력에서 이루어낼 수 있는 작은 허들을 세워 나가며 2년 동안 작고 귀여운 장애물을 많이 넘겨왔고 지금도 나의 그릇에 적당한 허들을 넘는 중이다.


그리고 2년 전 느꼈던 강한 충격은 여전히 내 삶 속 구석구석에서 숨 쉬고 있다. 이는 때때로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주기도 하지만 간혹 '무기력'이라는 것으로 나타나 나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무기력' 이거 단어 자체가 너무 거창한 거 아니야?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지 감이 안 올 정도로 처음 겪는 상황을 마주할 때에 무력함을 느끼곤 한다. 보통 여러 집단에서 발현되는 작고 큰 인간관계서 부터 내 집 마련 또는 그 달 수입에 관계없이 빠져나가는 고정비 지출 따위까지.


내게는 무기력이 찾아올 때 늘 가위를 눌리기 바로 직전처럼 싸한 느낌의 징조가 있다.

대게 늦은 아침. 더 세밀하게 말하자면 늑장을 부리는 아침 시간이다. 분명 어젯밤 잠들기 전, 업무 시작 2시간 전에 일어나 내가 이끄는 하루를 만들자 다짐해놓고 결국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시간에 억지로 몸을 세운다.

사실상 피곤에 절어 잠을 푹 잔 것도, 또 2시간 전에 분명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혼수상태에 빠진 것도 아니었다. 침대 위에서 시간을 개겨보낸 오전은 이불 위를 덮는 따사로운 햇살에도 불구하고 땅 밑으로 꺼져버리는 기분이다.


"아 몰라 짜증 나, 다 끝났어."

내 문제는 꼬라지를 쓸데없는 것에 부리는 것이다. 눈도 떴고 더 이상 졸리지 않지만, 여전히 저 밑 폐 혹은 간 즈음 고인 짜증 때문에 몸을 일으켜 세우지 않는다.


핸드폰을 쥐고 밤 사이 업데이트된 피드를 멍한 눈을 한 채 엄지손가락을 올려대거나 넷플릭스를 켜 아무 콘텐츠나 본다. 그렇게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면 어김없이 현실 자각 타임이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나는 2시간 전에 일어나지도 못하는 못난 인간이야. 내 꼬라지로 또 쓸데없이 핸드폰만 보다가 2시간을 날렸어. 엄지손가락만 아프고 정말 화가 난다.. "


그니깐 나처럼 하고싶은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많은 인간은, 나 자신이 뜻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괜한 승을 내곤 한다.

그냥 포기하던가 아니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던가 이도 저도 안되고 회로가 막혀버리는 순간엔 꼭 무기력감이 찾아온다. 그리고 흘려버린 시간에 하지 못했던 '계획'에 미련을 두어 열망을 키우곤 한다. 대게 운동, 독서, 그림, 글쓰기와 같은 자기 계발이다.


나는.. 유튜브 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n년째 안 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 다이어트해야지라고 다짐하고 떡볶이 시켜먹는 부류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어이가 없는 건 무기력 무드가 깨지는 순간이다.

어둠속으로 꺼지던 찰나 우리 집 강아지의 심한 코골이 소리에 놀라 실소를 퍼트리거나,

갑자기 어제저녁으로 먹다 남은 치킨을 데워먹고 싶은 기분이 들거나,

어제 온 택배가 생각나 빨리 옷을 입어보고 싶다거나,

또 가끔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정말 자신이 안타깝고 슬퍼서 눈물이 나기도 하는데 눈물을 흘리는 나 자신이 너무 웃겨서 웃음이 터지며 무기력 타임이 펑하고 끝난다.


하.. 정말 하찮지 않은가? 저렇게 작고 하찮은 이유를 '무기력'이라는 거창한 단어로 부풀렸다.

잘 브랜딩 된 '무기력감'은 쓸데없는 책을 구매하게 하거나 무엇에 의존하지 않으면 치유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을 준다.


가볍게 여기자. 뭐 어때 tlqkf

무기력 무드가 깨지면 다음일은 일사천리다. 발로 이불을 펑차고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침대를 정리한다. 거실로 나가 좋아하는 BGM을 깔고, 강아지 배변패드를 치우고 빨래를 널거나 설거지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커피를 한 잔 내려 책상 앞에 앉은 후 열심히 일한다 또 일한다.


 나를 너무 사랑해서 그랬는지 내 문제 하나하나를 너무 깊고 무겁게 대했다. 작은 것에도 쉽게 실망하고 더 잘하고 싶었다.

가벼운 사람이 되자는 것이 아니다. 일상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가벼워질 필요가 있다.


좀 대충 대답해도 되고, 좀 게으르고, 좀 안 멋지면 뭐 어때요. 나처럼 게으른 완벽주의자라 스스로 책망을 자주 하는 사람이라면 가끔은 '아 몰랑' 하자.


부담감을 느끼며 마음을 무겁게 해야만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실수를 저지르거나 일을 그르치게 될 것이라 의심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거나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허들을 넘어야 할 때, 그것이 무엇이든 내 일상에 자리잡기까지 예민해하고 불안감을 느끼도록 스스로 부추기곤 한다.


그래, 성격이다. 반은 못 고치고 반은 고쳤다.

요즘은 의미 부여하지 않고 가볍게 대하려고 한다. '아 몰랑'의 가벼운 마음은 불쾌한 무드를 금방이고 깰 수 있고 괜한 걱정을 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환기된 기분은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하고 가짜와 진짜 문제를 가려내 주기도 한다. 그러면 어느새 기분이 좋아져 나는 다시 또 내일 아침을 미라클 모닝을 약속한다..

 “나 내일은 정말 일찍 일어날 테다. 하지만 혹여나 또 내 자신을 실망시키는 일을 범한다면 그땐 '아몰랑'시전으로 이불을 박차고 나와야지. “


매거진의 이전글 아니 근데. 그럼 나는 누가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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