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잘 보이려는 욕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나는 1월생으로 빠른 년생이다.
2018년 1월, 29살을 먼저 맞이한 만큼
마지막 20대를 꽉 채워 보내리라 다짐했었다.
그리고 보기 좋게 실수로 가득 채웠다.
실수 1. 서른이 되기 전엔 '꼭' 해외취업을 해야겠다.
대표적으로 ‘해외 살이’는 이십 대 초. 중반부터 세워둔 목표로 포장된 자존심이었다.
해외에서 멋지게 일하고 생활하는 상상은 나를 가슴 뛰게 만들었고, 한국에선 내세울만한 게 없는 나의 스펙이 어쩌면 해외 살이가 포장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실제로 수년간 꾸준히 영어공부도 열심히 했고, 실력이 향상되는 나를 볼 때마다 "난 말이야, 글로벌리 하게 일할 거야"라며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호언장담도 했었더랬다.
4월, 퇴사와 동시에 큰 맘먹고 거금을 들여 레주메 첨삭과 컨설팅을 받았다.
그렇게 완성된 정갈한 레쥬메와 커버레터를 품고 본격적인 해외취업에 열을 올리며 포부를 다졌다.
5~60개도 넘게 넣었지만 아무 연락이 없어 포기할까 할 때쯤 다행히도 홍콩의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리고 기특하게도 3차 면접까지 보았다.
서류와 스카이프 전화 면접을 거친 대면 영어 면접이었다.
그리고 두 시간이 넘는 인터뷰 동안 시종일관 상냥했던 여자 면접관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홍콩에서 집을 구하지 못하면, 우리 집에서 한 두 달쯤 같이 살아도 돼! 내가 집 구하는 거 도와줄게”
그리고 생각했다. ‘아.. 난 붙었구나..’ 비행기를 태워주던 면접관의 말에 이미 나는 홍콩 주민이었다.
그리고 아무튼 난 결과적으로 최종 탈락했다.
돌아보면 타당하고 적절한 사유였지만 억울함은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억울함이란 감정은 자존감과 연결되어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고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지만 나는 숨었다.
실수 2. 아직 3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어! '서른 전 나를 돋보이게 할 시간'
2018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반기엔 나의 아홉수를 위해 제대로 된 인생의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르겠다.. 그 말 같지도 않은 다짐은 나를 다시 한번 미끄러지게 했다.
최종 통보를 받은 8월 넷째 주쯤이었다. 해외취업을 조금 더 준비할지, 아니면 그냥 한국에서 다시 경력을 쌓다가 재도전을 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실패는 했더라도 해외 기업에서 3차까지 인터뷰를 봤다는 자부심도 째금 있었던 터라 왠지 조금만 더 하면 감을 잡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고민도 잠시, 나는 한국에서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더 이상 시간을 끌며 2018년을 허무맹랑하게 보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급하게 들어간 회사생활은 평탄 할리가 없었다는 것을 난 알고있었을걸.
나의 마음 한편엔 늘 뜬구름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인데, 해외살이 환상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던 이유가 가장 크다.
결국 회사가 마음에 안 드는 수가지의 이유를 대며 나를 확실하게 대변해줄 수 있는 회사를 찾고 또 급하게 누구보다 빠르게 이직을 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어, 시간이"
실수 3. 해외취업도 못했으니, 나를 증명해 줄 회사를 들어가겠어!
2018년, 나의 29살 1년의 결과는 비참했다.
화려한 포트폴리오를 보고 이직을 감행했던 마지막 회사에서의 3개월간 내 모습은 처참하기까지 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살이 오는 편인데 3개월동안 수차례, 다양한 형태로, 심하게 아팠다.)
회사의 시기와 나의 운의 흐름이 잘 맞물리지 못했다고 하자.
잘 보이려는 욕심을(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일 때문에 인스타그램 앱을 삭제하진 못했지만 한 동안 나의 개인 피드를 의식적으로 보지 않으려 했다.
고대했던 나의 29살을 자잘한 실패로 물들였고,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며 무의식적으로 타인과 비교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떠밀리듯 2019년이 되었고 서른을 맞았다.
책도 많이 읽고, 여행을 다니면서 나를 진정시키며무엇이 문제였는지 파고 파고들었다.
사실 문제는 없었다. 내가 더 잘되고 싶어서 그렇게 애를 썼다는 마음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누구나 자신이 더 잘되길 바란다.
하지만, 나는 뭐든 급했다.
급해서 상황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조급해서 내 마음을 잘 읽지 못했다.
29살을 '잘' 마무리해야 한다는 목표만 보고 달렸더니 종종 나를 포장하기도 했다.
조금 더 차분했다면 상황을 더 명확하게 볼 수 있었을 것이고, 목표로 둔갑했었던 해외 살이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에 답부터 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떤 결과도 조금 더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책임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019년 9월, 프리랜서로 살아보기 9개월 차가 되었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일 앞에서 한계에 부딪치기도 하지만 프리랜서로의 삶은 나를 포장할 수 없어서 좋다.
포장할 수 없다는 것은 나의 민낯을 마주한다는 것인데, 실체를 보면 절대 급하게 결정하지 못한다.
내 실력에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 시간도 가져야 하고 정신을 차리고 솔루션을 찾아야 할 시간도, 또 진짜로 풀어내야 할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빨리빨리만 외쳤던 내 삶에서 꼭 필요했던 시점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를 대변해 줄 수 있는 것은 회사가 아니라 나의 실력밖에 없다는 냉정한 이치도 느리지만 깨달아가고 있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내 삶을 온전히 영위하고 누리며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니,
‘잘 보이려는 욕심을 조금은 내려놓는 연습’ 이 먼저인 것 같았다.
그리고 온전히 나를 위해 나의 행보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연습을 하나씩 해보려고 한다.